눈먼 돈들에 대하여

 어느 대학원생

나는 박사과정 입학을 앞둔 대학원생이다. 나는 연구자로서의 삶에 대해 나름의 확신을 가진 사람이지만, 박사과정 입학은 내게 즐겁지만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학위논문을 쓰고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에 입학하게 되는 과정은 내게 있어서 분노의 과정이었다. 그 분노는 모두 눈먼 돈들 때문이었다.

등록금을 내라는 문자와 기부금과 교우회비를 요구하는 문자가 동시에 온 것도 나를 무척이나 짜증나게 했지만, 가장 화가 났던 일은 입학금을 또 낸 일이다. 석사과정에서 박사과정으로 갈 때는 소속이나 전공, 지도 교수까지도 바뀌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바뀌는 것은 학번과 학적뿐이다. 그런데 대체 왜 100만원이 넘는 돈을 입학하는 학생에게 요구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사실 박사 과정 입학할 때 입학금을 내지 않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리라고 생각했던 터라, 입학금을 내야한다는 사실이 내게는 더 충격적이고 비상식적인 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학사 입학부터 박사 입학까지 내가 고려대에 낸 입학금만 300만원이 넘는다. 이 돈은 학부생의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 돈이고, (보증금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면) 50만원짜리 월세방에 한 학기 동안 살 수 있는 돈이다. 학사 입학 때를 돌이켜 보면 대학 합격 기쁨에 입학금 내는 것마저도 기뻤던 것 같고 부모님도 기쁜 마음으로 금전적 지원을 해주셨던 것 같다. 석사 입학 때는 조금 억울한 심정으로 입학금을 냈는데, ‘자대생들에게도 이렇게 받아야 하나’ 하는 다소 이기적인 자대생 우선주의의 마음이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박사 과정 입학 때는 입학금을 내고 나니 정말 화가 났는데, 그게 정말 눈먼 돈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유독 화가 났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학사 때나 석사 때 아무런 분노도 느끼지 못하고 돈을 냈던 내 자신이 바보였나 싶다. 입학금은 산정 근거도 불분명하거니와 어디에 썼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비합리적인 돈이기 때문이다. 근거가 없는 돈을 학생에게 요구하는 학교에게 어떤 합리적인 답변을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석사에서 박사로 진학하며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왜 입학금을 내야하냐는 분노 섞인 질문은 애당초 의미가 없어진다.

입학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하는 과정에도 왜 내야하는지 알 수 없는 돈이 있었다. 나는 4학기에 졸업을 하지 못했고, 물론 수료생 등록을 해야 했다. 수료생 등록을 위해서는 등록금의 5%를 내야한다. 사실 이 돈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큰 불만은 없다. 수료생 등록을 하고 나면 도서관 이용이나 학교 시설물 이용 등을 재학생들과 같은 수준으로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왜 내야하는지 알 수 없었던 건, 논문 심사를 받는 학기라는 명목으로 재차 내야하는 2%의 돈이다. 즉, 나는 석사과정의 마지막 학기에 수료생 등록을 위해 등록금의 5%를 내고 거기에 더해 논문 심사를 받는 학기라는 이유만으로 등록금의 2%를 더 내야했다. 게다가 저 2%의 돈은 논문 심사비와는 또 별도다. 매우 억울했지만 그건 그렇다고 치자. 논문 심사를 받고 완제본을 제출하는 과정에서는 더욱 불합리한 일들이 있다. 논문 심사를 받고 완제본을 학교에 제출하는 과정에는, 논문 쓰기 이외에도 기타 처리해야할 잡다한 일들이 가득 차 있었다. 흔히 말하는 ‘논문러’들은 논문 쓰는 일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들을 해야만 한다. 예를 들면 공식적인 규격에 맞추어 논문 표지를 직접 만들거나 개인적으로 인준지에 도장을 받거나 각종 서류를 제출하는 일 등이다. 사실 그런 규격을 정확히 맞추려면 학과·대학원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쪽이 합당하고, 그건 안 되더라도 아주 구체적인 규격을 제시하거나 양식 파일을 제공해야 한다. 물론 현실은 논문을 쓰는 사람이 전부 알아서 해야 한다. 거기에 완제본 출력도 날짜를 알아서 맞춰서 복사집에 맡겨야 한다. 학교가 요구하는 완제본은 6부다. “정말이지 최소한 자기들이 요구하는 완제본 6부에 대한 출력비라도 지원해줘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완제본을 제출하면서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학위 논문을 쓰는 대학원생은 이처럼 논문을 쓰는 일과 이에 수반하는 형식적 사무를 처리하는 일 그리고 거기에 부과되는 경제적 부담까지 삼중고를 겪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눈먼 돈들이 나를 불쾌하게 하는 건 내 학문적 여정이 이런 눈먼 돈들로 인해 폄하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학위를 받는 건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되어야 한다. 학위 논문은 연구자가 오랜 시간 노력한 결과이자 상징이기 때문이다. 눈먼 돈은 나로 하여금 내가 학위를 받은 것인지 산 것인지를 알 수 없게 만든다. 나는 이게 가장 불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