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라는 기준에 던지는 질문

  작년 3월부터 방영된 EBS의 〈까칠남녀〉는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과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을 이야기하는 “국내 최초의 젠더 토크쇼”를 표방한 프로그램이었다.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 씨는 해당 프로그램의 몇 안 되는 고정 출연자였고, 커밍아웃한 바이섹슈얼로서 ‘젠더 토크쇼’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난 1월 13일, 종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EBS는 은하선 씨에게 하차를 통보했다. 〈까칠남녀〉의 CP(책임프로듀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은하선 씨가 “방송 출연자로서 부적절”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은하선 씨에 대한 하차 통보는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프로그램은 예정보다 2주 앞당긴 지난 5일 조기 종영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이번 호 본지에서는 사건의 당사자인 은하선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는 프로그램 조기 종영이 발표된 직후인 지난달 8일 진행되었다.

반反동성애 시위, 그리고 뒤늦게 ‘발명’된 은하선의 부적격성

  CP가 내세운 ‘출연자로서의 부적절성’은 크게 두 가지이다. ▲〈까칠남녀〉 PD의 번호라고 안내하며 퀴어 축제 후원 번호를 적시했다는 점 ▲십자가 모양의 딜도 사진을 SNS에 업로드해 특정 종교를 모욕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우선 첫 번째 내용과 관련해서 살펴야 할 맥락이 있죠. 작년 12월 25일에 성소수자 특집에 대한 예고편이 나가면서 반동성애 단체들을 중심으로 성명이 발표되고, PD님 개인 번호로 문자가 날아들기 시작했어요. PD님이 괴로워하면서 보여준 문자들의 내용은 대체로 ‘LGBT(Lesbian·Gay·Bisexual·Transgender)가 나라를 망하게 한다’, ‘생명을 해친다’ 등 성소수자 혐오가 주를 이루었죠.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저는 국가를 파괴하고 생명을 죽이는 존재가 된 거잖아요. 충격이 컸고, 고민하다가 더 이상 그런 혐오 문자를 보내지 말라는 뜻에서 올린 글이었어요. 누가 봐도 핸드폰 번호라 보기 어려운 번호였고 게다가 ‘#’이 붙어 있어서 당연히 무슨 뜻인지 알 것이라고 생각했죠. 이후 실제로 문자를 보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글을 내리고, 또 원치 않는 후원을 막기 위해 환불 절차 등을 공지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 내용은 제가 2016년에 ‘사랑의 주님’이라는 글과 함께 SNS에 올린 사진에 대한 것인데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딜도라더라’, 혹은 ‘이런 걸 만들어 판다더라’ 등 많은 이야기가 있었죠. 지금이야 제가 섹스 토이 사업을 하고 있지만, 그 때는 관련 사업을 하고 있지도 않을 때였고 이것저것 찾아보던 중에 ‘이런 것도 있네?’하고 그냥 올린 사진이었어요. 하물며 저는 모태신앙에 천주교 신자거든요. 저의 종교관이나 의도에 대해 물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어떻게 제 의도를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시기와 맥락을 고려할 때, 은하선 씨의 하차는 출연자 개인의 자질보다 성소수자 특집을 계기로 격화된 반동성애 시위가 더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내세웠던 주된 논리는 무엇일까. “반동성애기독교시민연대를 비롯한 몇몇 기독교 단체, 그리고 학부모 단체들이었어요. 기자회견이나 항의 시위를 하기도 하고, 또 조선일보에 ‘성인용품 판매상을 패널로 부른 EBS 이사장 사퇴하라’는 전면광고를 일주일 넘게 내기도 했고요. 시위에서도 주된 공격 대상은 저였고, 광고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제가 ‘음란하다’는 게 그 이유였죠. 사실 그 분들에게 뭐라 설명되지 않는 저를 공격하기 좋은 그림인 것 같아요. 여성 성소수자는 그 분들에게 아예 보이지도 않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존재가 드러나도 뭐라고 혐오하기도 되게 어려운 존재잖아요. 그런데 하필 제가 딜도를 팔고 있었던 거죠. 섹스에 대해 글도 쓰고. 표출하기 난감한 혐오를 표출하기에 딱 좋은 대상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 수많은 여성·시민·언론 단체가 비판의 목소리를 냈고 손아람, 손희정 작가 등 몇몇 출연자는 프로그램 출연을 보이콧하기도 했다. 그러나 EBS는 지난 6일, 〈까칠남녀〉가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는 사회 이슈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는 자평과 함께 프로그램 조기 종영을 결정했다.

진정 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앞서 살펴보았듯 반동성애 단체가 ‘성소수자가 교육방송에 나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의 근거는 ‘그들이 음란하다’는 데 있다. ‘섹스 토이 사업가는 음란한가’라는 질문은 차치하더라도 한 개인을 통해 성소수자 전체를 일반화하는 주장은 그 논리가 빈약해 보인다. 오히려 문제는 성소수자가 교육방송에 출연했다는 사실보다, 성소수자에게 그렇듯 공공연히 표출된 혐오가 공공기관이자 교육방송사인 EBS에서 아무 고민 없이 받아들여졌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을 심상히 넘기기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한국의 성소수자, 나아가 모든 소수자의 인권 실태와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감수성 및 인식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단 은하선 씨의 사례 외에도 최근 충남인권조례폐지안의 가결이나 여전히 폐지되지 않고 있는 군 형법 92조6항 등 그 수준을 가늠할 지표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교육방송으로서의 〈까칠남녀〉 종영이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때문이다. 〈까칠남녀〉가 그러한 성 인식 수준의 향상을 위해 일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았을까. “이 프로그램이 세상을 엄청나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에서 출연을 결심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보다 페미니즘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방송이 그러한 측면에서 의의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동성애 시위에 나온 문구 중에 ‘교육방송이냐 성교육방송이냐’, 혹은 ‘에로 방송이냐, 성에 대해서는 케이블에서 이야기해라’ 등이 있었는데, 굉장히 놀랐어요. 왜 ‘성교육방송’에서 바로 ‘에로 방송’을 떠올릴까. 사실 한국어에는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구별할 수 있는 단어가 없잖아요. 상대적으로 ‘젠더’보다 ‘성’이 익숙하니까 ‘성교육’이라고 불렀던 것이지, 성교육이 ‘섹스하는 법’에 대한 것만은 아니잖아요. 사실 그래서 더 이러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성별 이분법에 기초한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남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것, 또 성행위에 국한되지 않고 젠더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 등에 대한 교육이 너무나 필요하다고요.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실제로 더 많은 이야기로 확장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쉽다면 그 점이 아쉬워요.”

  유네스코는 2015 세계교육포럼을 통해 ‘2030 글로벌 교육의제’ 선언에 합의한 바 있다. 개최지의 이름을 따 ‘인천선언’이라 불리는 이 선언문의 8번 조항은 교육권 달성에서 “성평등(Gender Equality)의 중요성”과 “성에 기반한 차별과 폭력의 제거”를 강조한다. 여기에 동의한 회원국은 모두 이를 준수·이행할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 내용이 과연 지금 한국에서 얼마나 충실히 이행되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지만, 답하기는 쉽지 않다.

LGBT를 ‘안고 가기’, LGBT와 ‘같이 가기’

  최근 여성주의운동, 혹은 담론 투쟁 내부의 화두 중 하나는 ‘LGBT 없는 페미니즘’이다. 언제나 다종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온 여성주의의 다양한 조류 중에서도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주장이다. 끝으로 성소수자가 마주한 또 다른 차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지정 성별에만 주목하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가끔 ‘당신은 성소수자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잘렸을 수도 있어’라는 의견을 마주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게이는 TV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죠.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그건 남성으로서의 권력 때문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유행이랄까, 아무튼 수용 가능하게 된 게이의 이미지에 맞는 포지셔닝을 감수해야 가능한 것이죠. 만약 TV에 나온 게이 출연자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게이에 대한 이미지를 나에게 투영해 일반화시키지 마라’고 얘기한다면 그 분이 용인될 수 있을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봐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사람들 안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은 마치 ‘여성인권에 더해지는 어떤 것’ 정도로 바라보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간혹 저에게 ‘당신이 성소수자이지만 여자니까 돕겠다’는 식의 연대를 표방하는 분들도 있는데, ‘내 지정성별이 남성이면 어떻게 할 거냐’고 물은 적도 있어요. 저는 사실 젠더, 혹은 페미니즘이라는 것이 여성과 남성을 나누는 기준 자체가 얼마나 허깨비 같은 것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실에 머물지 않고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이 페미니즘의 역할이고 매력이죠. 중요한 건 애초에 그들이 말하는 ‘여성성’을 누가 부여했냐는 것이고, 거기에 매몰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성소수자는 페미니즘이 ‘안고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당연히 같이 가는 게 기본값이라고 봐요. 나아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물론 그 동안 여성들에게 씌워졌던 짐들을 벗는 것,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지금 이루어지는 노력들은 너무나 중요해요. 하지만 한편으로, 왜 누군가는 특정한 성별로 인정받기 위해 더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밖에 없는가를 봐야 한다고 봅니다.”

  〈까칠남녀〉의 CP는 “전 국민의 윤리적 정서를 감안해야 하는” 것이 교육방송의 책무임을 강조했다. 그렇다면 은하선 씨는 국민, 혹은 ‘정상’의 기준 바깥에 위치한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우리에게도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CP가 말한 ‘국민의 정서’, 은하선을 거부하는 바로 그 정서를 공유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인 정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새로운 기준을 세워 맞서야 하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존재를 재단하려는 ‘기준’ 자체를 없애는 것으로 맞설 것인가.

■ 문장원 기자 creep0927@korea.ac.kr

■ 이은솔 기자 eunsol15@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