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노동권’이 널리 인정되는 그날까지

“아침마다 교수님의 책상 위에 스타벅스 커피를 올려 둬야하고, 점심시간 무렵에는 교수님의 구두를 닦아 드려야 해요. 매일 구두를 들고 뛰어다니니까, 친구들이 저를 구두닦이 소년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어느 교수님의 자제분께서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제가 교수님 대신 유치원을 돌며 상담을 들으러 다녔어요.” “학과 행정조교인데 행정일 뿐 아니라 사실상 교수님들 의전도 해야 합니다. 24시간 상시대기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제 시급은 1000원도 안 될 것입니다.”

지난 해 어느 정당에서 대학원생 처우 실태 조사를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이 이야기들은 특별히 악랄한 어떤 대학원의 사례라기보다는 현재 우리 대학사회의 곳곳에 편재해있는 사례들이다. 교수가 학생에게 인분을 먹인 ‘인분교수 사건’이나 1년에 8만 장 복사를 시킨 ‘팔만대장경 사건’ 등은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한편으로는 사안의 극단성으로 말미암아 어느 한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앞선 사례들처럼 대학원생의 일상으로 묵인되어버리는 부당한 노동 환경 아래에서라면 언제든지 인분교수 사건이나 팔만대장경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어딘가에서는 제2, 제3의 인분교수 사건이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속속들이 터지고 있는 대학원 내 사건들은 명백하게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비롯된다.

그렇다면 그 ‘구조’의 실체는 무엇이며 어떤 프레임으로 사안에 접근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효과적일 수 있는가. 지금까지는 주로 교수와 대학원생의 위계 문제로 대학원생의 처우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려고 해왔다. 실제로 교수가 연구자로서 대학원생의 앞길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실을 염두에 둘 때, 이런 프레임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원생 문제를 교수와 학생 사이의 위계의 프레임만으로 한정할 경우, 문제의 해결이 요원해지는 측면이 있다. 권위주의에 기반한 구조를 없애기 위해서는 결국 대학원 내 관계의 재규정이 필요한데, 그 관계에 개입해서 문화를 바로잡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보다 현실적이며 효과적인 해결을 위한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이를 한축에 두는 한편으로 대학원생의 위치를 단순히 배움을 받아야할 학생이 아닌, 더 구체적인 기반 위에서 설명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 동국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장이 총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소한 것에 대해 지난 11월 12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동국대 총장을 검찰에 송치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조교의 ‘노동권’을 인정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대학원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으로서 ‘노동권’이 마련되는가 하면, 법적·제도적 싸움의 활로까지 열릴 수 있게 됐다. 변혁적인 투쟁의 방식을 모색하는 데에도 중요한 변곡점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힘입어 지난달 21일에는 노웅래 의원,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주관으로 <대학원생 조교 노동권 보장에 따른 교육부 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진행되기도 했다. 노조설립이나 여러 제도 마련 등 아직 갈 길은 멀고 속단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노동권’이라는 프레임 아래 새로운 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 본지는 이런 흐름에 연대와 지지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