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희정, 『페미니즘 리부트』, 나무연필, 2017.

‘혐오의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상상력을 읽다

『페미니즘 리부트』의 저자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영화를 전공하고,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페미니스트다. 책에 실린 아홉 편의 글 중 여덟 편은 저자가 “페미니즘이 리부트되었다”고 진단한 2015년부터 2017년 사이에 쓰였다. 저자는 이 짧은 시간동안 한국사회를 강렬하게 뒤흔들었던 페미니즘의 등장을 정동 이론을 통해 살펴보고 분석한다. 책의 1부의 글들은 ‘페미니즘 리부트’현상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를 조망하고, 2부는 보다 구체적으로 개별 문화 텍스트를 다루는 페미니즘 비평으로 구성되어있다. ‘혐오’라는 강력한 시대적 정동을 뚫고 나온 ‘지금,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페미니즘은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번 호에서는 손희정 문화평론가를 만나, 책의 안팎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Q. 『페미니즘 리부트』는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엮여진 책이었습니다. 첫 글인 ｢혐오의 시대｣에서 우리 시대의 ‘혐오’라는 정동이 어떤 시공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셨는데요. 책 전체의 논의를 시작하는 질문이라 생각됩니다.

A. 2014년 즈음부터 세월호 텐트 앞에서 벌어진 폭식투쟁이나 통일토크콘서트에 사제폭탄을 가져가는 일베 회원들 등의 이슈가 불거지며 한국사회에서 ‘혐오’나 ‘일베’라는 키워드에 대중적인 관심이 확 몰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혐오의 시대｣는 그러한 시기를 지나고 2015년에 발표한 글로, 책에 실린 글 중 가장 먼저 쓴 것입니다. 이 글에서 제가 혐오를 진단하는 방식은 저의 독창적 언어라기보다, 인문학계에서는 이 시대의 문제들을 분석할 때 많이 활용하는 프레임인데요. ｢혐오의 시대｣라는 글은 전체적으로 아주 새로운 내용을 말하는 것보다 󰡔페미니즘 리부트󰡕라는 논의를 열며 이 시대를 어떻게 볼 지에 대한 고민이 담긴 글입니다.

저는 2015년에 페미니즘이 ‘되돌아오게 된’ 맥락은 이 사회가 ‘헬조선’이라 이야기되는 맥락과 겹쳐져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2015년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핫 키워드가 ‘헬조선’이었다면, 2016년에는 ‘여성혐오’였죠. 『페미니즘 리부트』는 “왜 ‘헬조선’다음이 ‘여성혐오’였을까?”라는 질문을 탐색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사회 전체가 미래가 없다’, ‘청년세대는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가 불거졌는데, 그것을 ‘헬조선’이라는 담론으로 풀어냈지만 그 ‘헬조선’담론도 젠더화 되어있었죠. ‘페미니즘 리부트’는 청년의 얼굴이 늘 남성으로만 나타난 헬조선 담론에서 누락되어온 여성 청년들이 ‘페미니즘’, ‘여성혐오’라는 핫 키워드를 찾고, 거기에서 자신의 언어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고 봅니다. ｢혐오의 시대｣는 “너무 거대담론 안에서 한국사회를 다 포착하려는 야심을 부렸다”는 비판도 받긴 했습니다만, 저는 이 글에서 “왜 페미니즘이 튀어나왔을까?”에 대한 고민들을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Q. 이어지는 글에서 페미니즘이 물리적인 운동으로 이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으로 ‘강남역 페미사이드’를 지적하시는데요. 이때 여성들이 성폭력, 성차별 경험이라는 공통의 순수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을 디지털 미디어와 포스트잇의 매체적 특성에 주목하여 논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용하신 ‘아날로그를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미에 대해 조금 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A. 강남역 10번 출구의 포스트잇에 대한 논의는 매체에 대해 많이 고민하시는 조혜영 선생님의 글을 인용했습니다. 여기서 포스트잇은 아날로그 매체와 뉴미디어라는 디지털 매체의 융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재 매개하면서 미디어가 확장되는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사례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다른 공간이고, 오프라인이 진짜 현실이면 온라인은 가상의 공간이라 생각하지만 그런 구분은 사실 무의미하죠. 온라인은 오프라인을 참조하고, 오프라인에서는 온라인을 참조하는 융합으로 봐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요. 이를테면, 디지털이라는 매체만으로는 혁명의 속도를 빠르게 할 뿐, 그 매체만으로 혁명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강남역 10번 출구의 포스트잇과 그 매체적 성격을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혼용된 상태로서의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Q. ｢어용 시민의 탄생｣에서는 ‘포스트트루스post-truth’의 개념을 통해 일베, 나무위키 등의 반지성주의와, 엘리트주의의 폐기를 표방하며 동시에 ‘어용 지식인’이라는 위치를 선택하는 386세대와 ‘문빠’가 연결되는 지점을 지적하셨습니다. 교묘히 소수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정치성은 ‘아재’라는 386세대-남성의 감수성과 그 재현방식과도 연결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한국사회에서 87년 체제를 가능하게 했던 386이라는 세대는 시기상으로 많은 자원들을 취하기에 유리한 세대이기도 했습니다. 목숨을 바쳐 민주화를 가져온 세대이며 동시에 그 민주화를 이뤄낼 수 있는 정치적인 가능성도 있었고, 경제발전 가능성도 있었죠. 이처럼 많은 가능성을 누렸던 386세대에게는 ‘늘 죽이지 못했던 아버지’인 박정희라는 유령이 있고요. 이 ‘아버지’가 매우 중요한 알리바이로 작용하여, 이들 세대는 계속해서 성장하지 않은 채로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지속적으로 87년 체제를 이야기하게 되는데요. 97년의 IMF이든 2017년에 우리가 당면한 ‘헬조선’이라는 현실이든, 이것들을 설명하려면 386세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나 이들은 한국사회의 문제적인 면들을 그 이전세대의 몫으로 돌리면서, 자기들의 정치적 입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들 ‘성장하지 않는 아재’는 자신이 성장하지 못했고, 그렇기에 언제든 소수자의 위치에 있기를 자처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 소수자적 위치를 대입하고요. 청와대의 권력만 바뀌었을 뿐, ‘우리는 여전히 소수자다’라며 무조건적 지지를 요구합니다. 저에게는 “왜 권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계속 소수자라고 주장하는걸까?”가 가장 큰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늘 소수자고, 하지만 언제나 정의롭고, 그래서 끊임없이 지지를 받아야하고, 우리를 비판하는 당신들은 ’입진보‘에 불과하다’는 식이죠. 이는 왜곡된 자아상을 가진 나르시시즘이라 생각되는데요. 이들은 소수자를 자처하는 것이 자신들의 입지에 대한 탈 맥락적인 태도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는 반지성주의적인, 일베식 ‘팩트’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여 논의가 연결되었습니다.

‘자라지 않는 아재’에 대한 제 논의는 『한국남성을 분석한다』에서 권김현영, 정희진 선생님이 제기하신 문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책에서는 ‘왜 한국남성들은 (서구식)“남성다움”을 내재화 하지 않으면서도 마초적이며 여성들에게 문제를 전가하는가’를 묻는데요. 이 책에서는 기사도도 없이 억울함만 있는 이들의 감수성을 ‘식민지 남성성’으로 읽어내죠. 그런 특수성들과도 연결되어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가 최근 관심을 가지고 본 사례는 이상호 기자입니다. 얼마 전 이상호 기자가 <김광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발표했죠. 고故 김광석씨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캔다는 것이 주제인 것으로 알고있는데, 포스터는 본인의 얼굴인거예요. ‘진실을 바라보고 있는 이상호’의 모습이요. 그 자의식은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실을 추구하지만, 늘 배제되어온 피해자로서의 정의로운 기자인 나, 이상호’라는 이미지가 왜 그토록 남성들에게 중요한가. 그런데 실제로 그 다큐멘터리는 지금 굉장히 논란이 되고 있죠. 『페미니즘 리부트』에서 논한 김어준 류類와 연결된 지점이 있다고 보입니다.

Q. 이어지는 ｢우리 시대 이방인의 두 얼굴｣에서 TV예능 프로그램인 <미녀들의 수다>와 <비정상회담>을 비교하신 부분이 흥미로웠습니다. 변화 양상은 다르지만 미디어에서 남성이 재현되는 방식도 변화했듯, 여성이 재현되는 방식도 상당히 달라졌을 텐데요. 지금 시점에서 미디어가 여성을 재현하는 방식은 노골적이고 구태한 방식으로 여성을 전시하는 <미녀들의 수다>와 같은 프로그램과는 다를 것 같습니다.

A. 아마 <미녀들의 수다>같은 프로그램이 다시 나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미녀들의 수다>처럼 여성들을 비슷한 메이크업과 옷을 입히고, 마치 상품처럼 전시하는 식의 기획이 나온다고 해도 이전처럼 화제가 되지도 않을 것 같고요. 오히려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여성들을 보여주려고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예상됩니다.

제가 기대하며 시청했던 최근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만드는 제작팀의 역량이 여섯 여성 멤버의 역량을 다 포착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우 에너제틱하고 잠재된 가능성이 많은 멤버들을 기존의 방송과 예능이 여성을 프레임화 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아쉬움이 있었는데요. 예능에서 서사적 기능이 큰 자막이나, 제작진이 미션으로 제시하는 포맷들에서도 출연 멤버들의 개성이나 잠재력을 다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는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이 멋지고 개성 넘치는 멤버들을 기획해서, 고작 ‘남자 차는 이야기’가 가사인 노래를 만들었다는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물론 그 노래는 나름 인기를 끌긴 했지만, 기대를 했던 만큼 아쉬운 부분이 있었죠.

Q. 책의 마지막 글인 ｢기억의 젠더 정치와 대중의 재구성｣에서는 “우리는 왜 그토록 처절함에 대한 페티쉬에 사로잡혀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며 ‘위안부’서사의 맥락과 새로운 재현 가능성을 논합니다. ‘위안부’서사가 폭력적으로 구현되며 공감대를 얻어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방식을 고찰하고, 나아가 효용적인 차원에서 페미니즘 비평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밝히셨는데요.

A. 제가 중요하게 던졌던 질문은 “왜 우리가 ‘위안부’ 피해자를 생각하거나 상상할 때 비명, 고통, 유령, 귀신으로만 생각하는가.”였습니다. <귀향>에서는 죽음을 맞이한 여성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서사적인 포인트였죠.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인 분들은 전혀 피해자로만 존재하지 않았고, 역사 앞에 서서 자기의 피해사실과 고통의 경험을 증언했던 분들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정치적인 행위자로 의미화 할 수 있는데요. 그게 아니라 어린 소녀들이 폭행과 강간을 당한 이미지를 펼쳐 보이고, 거기에 일본군들은 금수 같은 자들로 악마화하는, 단순하고 즉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보여주며 사람들에게 공분을 사는 방식으로 ‘위안부’를 다루는 것이 과연 윤리적인 재현인가를 질문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은, <눈길>보다도 이제는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드시 고통, 폭행의 그 순간, 강간의 그 순간을 재현하지 않아도, 이게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는가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경험치가 이제는 한국사회에 쌓였고, 그들은 제목처럼 “아이 캔 스피크”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저의 그 질문은 ‘피해경험으로 여성을 이야기하는 것’의 타당성을 묻는 것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예컨대 ‘메갈리아는 비명이었다’는 식의 평가가 있는데요. 한국 여성들의 대학진학률이 80%입니다. 이처럼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에 대해 자신의 언어를 통해 충분히 잘 이야기한 방식이었다는 평가는 없고 ‘비명’이었다고만 치부하는 것은 문제적이라는 겁니다. 과연 공동체성으로 확장되지 않고 ‘내 피해사실을 고함치는 것’이 페미니즘의 소명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물론 고함치지 못하는 사람을 고함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요. 그러나 거기서 멈추는 것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아이 캔 스피크>에서 나문희가 연기한 ‘나옥분’은 정말로 놀라운 캐릭터입니다. 나옥분은 그가 속해있는 공동체를 계속 함께 살피고 고민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회는 그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기에, 나옥분은 그저 ‘프로불편러’나 ‘오지라퍼’라 평가절하 됩니다. 개인의 피해 경험과 공동체가 생각하는 대의가 합쳐지며 결과적으로는 밖으로 나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증언할 수 있게 되는 나옥분의 ‘역사’를 조금 더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비명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오랫동안 시민으로 존재해 왔는데 그것을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죠. 그래서 지난 촛불집회의 ‘페미존’ 같은 것이 가시화되었던 것은 정말 중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신문으로 만나보실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A. 쉽지 않은 책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조금 지루하시더라도, 정성들여 읽어주시기를 당부 드립니다. 『페미니즘 리부트』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쓴 완결된 책이라기보다, 독자들과 만나 의미망이 만들어져야 하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도 의미를 만드는 한 조각이 되길 바랍니다. 

■ 신지현 기자 jhlily@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