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송이 강사 출강기(出講記)

어느 시간강사

두 시간쯤 잤을까 싶은데 아침이 밝아버렸다. 이른 시간부터 수업인데 긴장한 탓에 잠을 설쳤다. 학생이 아니라 강단에 서는 역할로 강의실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다. 선배들은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니라고 말해주지만 맘은 편하지가 않다. 학생들 앞에서 내가 말이나 잘 할 수 있을까. 학생들에게 긴장한 티가 나지는 않을까. 수업 진행을 잘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선생이라니 도대체가 너무 애송이 아닌가. 애송이가 선생연 하려다 보니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어색함, 처음 걱정했던 건 그런 것들이었다. 하지만 선배들 말마따나 그런 초보적인 차원의 걱정과 긴장은 수업 한두 번 들어가니 금세 풀어졌다.

두 번째로 들기 시작했던 걱정은 수업 준비를 비롯하여 시간강사 일로 인해 소모되는 ‘시간’의 문제였다. 강사로 일하게 되었지만 아직 박사과정이 끝나지 않은 사정인지라 도저히 이 일들을 병행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요즘 같은 시절에 박사과정이 끝나기도 전에 강사로 일할 수 있다면 아주 운이 좋은 경우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같은 강의를 하는 선배 강사들은 훨씬 더 먼 곳에서부터 강의를 하러 이곳까지 온다. 감사하고 편한 줄은 알고 강의를 해야 할 테다. 그렇지만 과정이 끝나지 않았다는 건 내 대학원 수업을 적어도 2개 이상 수강해야 한다는 걸 뜻하고, 대학원 수업을 수강한다는 것은 의무적인 발제는 물론이거니와 기말 논문도 알아서 시간을 투자하여 연구 결과로 보여주어야 함을 뜻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 연구와 공부란 오롯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더불어 요구한다. 이전에도 강사로 뛰었던 경험이 있었다면 시간조절이 한층 편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처음 하는 강의라고 엉터리로 할 수는 없으니 준비 시간은 배로 든다. 그러고 보면 우습다. 신입사원인데 모든 걸 알고 있어야 하는 신입사원, 실수해서는 안 되는 신입사원 같은 꼴이다. 강의 준비만이 아니다. 과제를 첨삭하거나 채점해주어야 하고, 그 주차의 강의를 처음부터 끝까지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아야만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체질이다.

사실 대학원에 처음 진학할 때만 해도 이런 삶을 떠올리지는 못했다. 지금 하는 일이 좋다 나쁘다 하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나의 주된 노동활동이자 수입원으로 삼는다는 게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가르치는 일을 굉장히 어색해 했던 터라, 되도록 과외선생이나 학원강사와 같은 일자리는 기피해 왔다. 그 후환을 오늘 겪는 것일까. 내가 생각한 연구자로서의 미래는 남 앞에 서서 말하는 자가 아니라 도서관이나 서재에서 홀로 골몰하는 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두 번째 걱정, 그러니까 강의 준비에 시간을 뺏겨 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차원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번 학기 공부는 부차적인 것으로 방치해 둔다고 쳐도 좋다. 앞으로도 가르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내 공부를 병행할 줄 아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라는 이중신분으로부터 오는 양방향의 일들이 부담스럽다 해도 물리적으로 시간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루하루 당장 코앞에 있는 일들만 간신히 해결하며 살아도 어쨌든 제 몫은 해나가는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가장 고된 일은 95분 강의를 이틀에 걸쳐 일곱 번 반복하는 것 자체였다. 땀이 배고, 목이 갈라지고, 발과 다리가 붓고 허리가 아프다. 강의를 나갔다 온 날마다 내가 노동을 하고 왔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사무직 노동, 논술 첨삭 아르바이트, 글을 쓰고 돈을 받는 일, 연구 활동까지도 마찬가지 노동이지만 좀 더 고전적인 의미에서의 노동… 이를테면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던 때와 가장 비슷한 느낌이랄까. 넥타이 메고 출근하는 삶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 세상 등진다는 마음 반분으로 온 대학원이지만, 나도 노동이라는 방식으로 이 사회에 참여하는 사회의 일부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연구자란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사람이라고 전제해왔던 셈이니 조금 부끄러운 일이다.

시간강사의 처우와 근무환경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들이 많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정신이 워낙 없어서인지 그런 부조리조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나도 나를 믿을 수가 없다. 한 주 한 주 때우는 식으로 산다. 앞으로 어떤 일이 더 펼쳐질지 모르겠다. 이제 막 일을 시작한 한 시간강사가 당장의 목표를 생존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만 일단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