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깨진 침묵의 본질을 살리기 위하여

지난해 #문단_내_성폭력 해쉬태그 운동이 문단 내에 만연해 있는 성추행과 성폭력의 실상을 보여줬던 데 이어, 지난달 초 서지현 검사가 자신이 검찰 조직 내에서 당했던 성추행을 폭로하면서 ‘나 또한’ 그런 경험이 있다고 밝히는 ‘미투 운동’이 각 분야에 번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특히 문화예술계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그것을 어떻게 성범죄의 수단으로 이용해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범죄 속에 이미 내재해 있는 권력 관계의 문제가 실제 현실의 권력과 손잡게 될 때, 피해자는 이중의 폭력에 노출 될 수밖에 없다. 피해자에게 덧씌워지는 이중 폭력은 그만큼 강력하게 조직의 구성원들을 구속하고, 조직의 폐쇄적이고 비민주적인 구조를 공고화한다. 그러한 구조 속에서 그동안 수많은 피해자들은 ‘관행’이라는 명분 아래 폭력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직 내 성범죄에 대한 목소리들은,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 더 이상 감수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우리 사회가 딛고 있는 권력의 파렴치하고 적나라한 민낯을 까발리겠다는 신호탄이다.

나아가 그러한 구조를 온전히 뿌리 뽑고 바로 잡기 위해서는 폭로를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는 요구와 실천이 필요하다. 폭로의 결과가 단순히 가해자의 사과에만 그치는 것은 폭로 당사자에게 다시금 상처를 내는 방식이 될 공산이 크다. 가해자에게 엄격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그러한 권력의 가동이 가능할 수밖에 없는 해당 조직의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토대에 대한 분석과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가 모색되어야 한다. 이것은 조직의 구성원이 권력자 앞에서 절대적 을로 존재하게 되는 비민주적 문화를 고쳐나가는 일이기도 하고, 그러한 기반 위에서 형성되는 노동환경의 문제를 재고하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에 더해 여러 공포와 두려움을 감수한 채 피해를 밝히고 가해를 고발한 당사자에 대한 보호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해당 조직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을 관할하는 관이나 국가에서 문제를 종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제도를 신설하고 그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실질적으로 이행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그렇게 폭로는 지속될 수 있고, 우리 사회의 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그것을 요구하는 것은 ‘me too’를 외치고 ‘with you’를 약속하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대학원 내의 성추행 성폭력 문제 또한 다시금 조명되어야만 할 것이다. 학계에도 미투운동이 번지고 있다고들 하지만, 이미 대학원 사회에서는 성추행이나 성폭력과 관련된 사건이 심심찮게 발생해왔다. 그리고 그 사건들의 결과는 어딘지 편치 않은 경우가 많았다. 가해자들은 제대로 된 징계를 받지 않거나 사건 해결에 앞서 학교를 그만 두고, 길고 긴 법적 싸움으로 피해자를 괴롭혔다. 정신적인 상처를 간직하고 대학원 공부를 그만 두는 등의 일을 오히려 피해 학생 쪽이 감당해왔었음을, 우리는 익숙하게 목도하고, 한편으로는 묵인해왔다. 그것에 무력하게 반응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 ‘me too’를 말하는 것이 어려운 당신을 위해 ‘with you’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딛고 있는 대학원 사회의 민주주의의 문제이자 노동환경의 문제일 수 있음을 깨닫는 것, 그로부터 현실적인 변화의 길을 요구하는 것. 그렇게 미투 운동을 통해 깨진 침묵의 본질을 이어나아갸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