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한 희망을 ‘함께’ 할 수 있기를

한국사학과 현대사 박사과정

김재원

문재인 정부의 집권 이후 ‘적폐청산’이란 단어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무엇을 적폐로 정의할 것인지의 문제에서부터 적폐를 어떻게 어디까지 청산할 것인지를 두고 갖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가 일종의 유행어처럼 쓰이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분명히 무언가가 바뀌어야만 한다, 라는 당위에 대해서 부정할 수 있는 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한 걸음 비껴나 있어 보이지만 한 꺼풀 벗겨다 보면 실은 누구보다 많은 ‘적폐’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 연구자들 역시 이와 같은 사회의 분위기가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촛불혁명’과 관련하여 박산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를 인터뷰한 1면의 기사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촛불혁명’의 한 단계가 마무리되어 다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금 시점에 대한 언급은 더욱 그러했다. 당시 거리에 함께 나섰던 이들이 머릿속에 담고 있었던 운동의 방향과 목표는 조금씩 다 달랐다. 비폭력/합법적 운동이라는 운동의 방식에 대해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 또는 ‘촛불혁명’ 내에서도 소외될 수밖에 없는 주체들의 존재에 대한 안타까움, 6월 항쟁과는 다른 또 다른 무언가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외친 이들의 바람 등 같은 날 같은 거리에 있었지만 그 수많은 대중들이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박산 상임활동가의 말처럼 그래서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과정들일 것이다. ‘촛불혁명’의 가장 큰 성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정권 교체가 아니라 앞서 말했던 것처럼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산 씨가 언급한 ‘일상의 촛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박산 씨는 ‘일상의 촛불’을 “사람들이 끊임없이 일상에서 자기 이야기를 내고 그것이 관철되는 경험을 하는 과정”이라 정의했다. 2017년 하반기 국면처럼 수많은 대중이 광장에 나와 공유할 수 있는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운동은 흔치 않고 매번 그것이 가시적인 성과를 끌어내는 것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를 광장이 아닌 일상의 영역으로 옮겨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연구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호 대학원신문을 읽으면서 나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사실은 그 시작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신문 내에는 대학원생들을 둘러싼 인권·노동권 문제의 심각성이 담겨있으며 그에 대한 동료 대학원생들의 토로가 담겨있다. 지난 호에 실린 <원우발언대 : 책임 없는 강의, 죽어나는 조교들>, <강사칼럼 : 시간강사, 노마드적 삶의 아이러니>, <사설 : 대학원생의 노동권이 널리 인정되는 그날까지>에서는 연구자의 삶을 둘러싸고 있는 ‘적폐’와 슬픔, 애환을 읽을 수 있다. <원우발언대>에서 한 원우의 적절한 지적처럼 이는 개별집단의 특별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노동관계가 아닌 애매한 인적 관계로 묶인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우리 대학원생의 연구노동 문제야말로 우리가 끊임없이 일상에서 인지하고 있는 ‘적폐’다.

따라서 우리에게 ‘일상의 촛불’이란 바로 이 ‘적폐’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 그것의 변화를 관철시키는 과정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대학원신문을 읽고 :　외롭고 낮고 쓸쓸한 우리들을 위하여＞의 지적처럼 우리는 ‘함께’여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호원보도 : 대학원생 조교 노동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 개최>의 기사는 매우 반가웠다. 아직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대학원생의 노동권 문제에 대한 시의성 있는 문제제기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동국대에서 진행된 총장 고발 사건을 시작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대학원생들의 노동권 보장 문제가 더 많은 동료 대학원생들의 연대와 함께 점점 더 큰 흐름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의 등장은 더욱 더 반가울 수밖에 없다. 대학원생노조의 출범은 우리가 ‘함께’일 수 있는 공간이 열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간 수많은 문제의 발생에도 불구하고 대학원생들이 ‘적폐’에 닿을 수 없었던 이유는 ‘파편화’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음에도 우리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의 부재’는 대학원생들의 문제해결을 어렵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제 막 조직된 만큼 명확한 전망/구체적인 활동방식이 틀을 잡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대학원생을 조합원으로 하는 노동조합의 탄생이라는 상징성만으로도 앞으로의 활동들이 기대된다.

대학원신문에는 대학원생들의 슬픔과 애환과 동시에 희망도 담겨있다. 대학원신문에 실린 글들에는 힘들지만 포기하지 않고 변화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 상지대학교를 다룬 <쟁점기획>은 그러한 희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변화를 원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변화하기에 가장 좋을 시간일지도 모른다. 나도 ‘함께’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그 문제들을 바꿔나가고 싶다. 다시,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나는 대학원생노조에 가입하고자 한다. 여러분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이곳에서도 무언가 변화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