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선영, 『식민지 트라우마』, 푸른역사, 2017

한국사회 집단 불안의 기원, ‘식민지 근대’의 트라우마

  “왜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한 줌의 권력만 쥐어도 저보다 약한 자에게 ‘갑질’을 하고, 서열주의와 학벌주의의 위계와 경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힘과 물질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의 부재로부터 끝없이 불안을 느낀다. 『식민지 트라우마』의 저자 유선영 교수(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는 한국의 집단 불안의 기원을 식민지(근대) 경험으로 돌아가 살핀다.

  저자는 대략 189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의 문화사적 흐름 속으로 독자들을 불러낸다. 《청춘》과 《개벽》에 실린 자전적 에세이들, 《동아일보》의 박람회 취재기를 비롯한 사회면 기사들, 연예와 흥행장(場)에서 이루어졌던 모금활동, 식민권력의 위생행정을 통해 이루어진 일상적인 폭력의 양상들까지 두루 섭렵하고 있는 이 책은, 지금껏 우리가 역사의 정전 속에서 만나지 못했던 식민지민들의 일상과 마주하게 해준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옛날이야기’는 아니다. 식민지 주체들의 찢긴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은, 근대화를 향해 달려 온 100년간의 눈부신 성취 이면에 자리한 한국인의 감정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본지는 저자 유선영 교수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Q : 선생님께서는 권위주의와 물질주의, 사교육 경쟁, 외모주의, ‘갑질’의 만연을 비롯한 사회적 문제들을 저술의 동기로 거론하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다른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이 현상들의 동시적 결착은 ‘한국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보다 구체적으로 2014~2018년 사이 한국의 정치·사회·문화적 맥락에서 저술의 계기를 꼽으신다면 무엇일까요?

A : 이 책은 현재의 맥락에서 새롭게 구상된 것이라기보다 제가 오래 전부터 품고 있었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어요. 사실 최근 국면에서 부각된 사회적 문제들은 그다지 새로운 것들이 아니에요. 근본적으로 ‘20세기 한국의 문제’라고 봐야 할 텐데요. 저는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것이 ‘지배의 욕망’이라는 관점을 갖고 있어요. 이 지배의 욕망은 국가·행정권력을 비롯한 합법적 권력을 작동시키는 메커니즘이면서, 동시에 일반 국민들의 사회적 관계, 예컨대 자영업자든 시민단체든 언론사든 관계없이 시민사회의 각종 영역을 관통해요. 한국은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그 의지는 지배에 대한 욕망으로 전이되고, 그 욕망은 다시금 약자와 소수자를 규율하고 복종시키려는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한국적 맥락에서 이 문제가 어디서 기원하는지를 보려면, 군부독재 시기까지 줄곧 답습된 식민지 체제(레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2014~2018년 사이의 국면에서 그러한 현상들이 심화된 측면은 분명 있어요. 보수정권 10년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근본이 흔들리는 과정이 있었죠. 그 파장이 일상의 영역에서는 갑질의 만연이나 지역주의·연고주의의 심화처럼 자신이 가진 권력·기득권을 과시하려는 지배 욕망의 노골화로 나타났다고 봅니다. ‘상위 1%’니, ‘로열패밀리’니 하는 서열화의 언어들도 득세했고요. 이런 현상들은 결코 우리 안에 ‘없던 문제’가 아니에요. 다만 기존의 문제가 답습되고 노골화된 것인데, 이 답습과 후퇴로부터 느낀 위기의식이 저술의 한 계기라고 할 수 있죠.

Q : 식민지 조선에서 민족주의는 ‘정치이념’이나 ‘사상’이 아닌 ‘감정’으로서 존재해왔고, 그렇기에 감정구조와 정신분석의 차원에서 민족주의의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실제로 식민지민이 식민통치하에서 느꼈던 감정의 결들을 직접 추적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새롭습니다. 식민지(민족주의) 경험을 ‘감정의 역사’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어떤 의의를 가지는지요?

A : 감정을 다룬다는 것은, 그 감정을 겪은 ‘사람’을 들여다보는 것을 의미해요. 거시사·사건사·영웅중심역사가 아닌, 감정을 가진 보통사람의 역사를 보자는 미시사적 접근이죠. 식민지배는 평범한 민중들이 겪은 것이에요. 돈 가진 사람이나 지식인은 식민통치를 겪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식민통치의 본질인 폭력과 모욕, 멸시를 일상적으로 감내해야 하는 삶을 살았던 것이거든요. 민족주의적 저항사와 식민지 수탈론 등 식민지배에 관한 역사서술은 많지만, 공통적으로 식민지배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고 봐요. 식민지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멸시와 모욕, 폭력의 일상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자는 의도가 있었어요.

  식민지 사회란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의 관계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로 재편되는 사회입니다. 물론 양반과 노비의 신분적 종속관계와 같은 것이 기존에도 있었지만 그건 전혀 다른 차원이죠. 식민지에서 주인과 노예의 관계를 지탱하는 것은 수치심을 주는 폭력과 모욕인데, 이러한 사회적 관계의 체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을 겪어요. 억압되고 감시당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그 감정은 겉으로 드러낼 수 없고, 그럴 때 식민지민에게는 ‘감정’만이 가장 진실한 것이 돼요. 오늘날 서비스업과 비슷한 거죠. ‘갑질 고객’을 정말이지 한 대 때려주고 싶어도 겉으로는 웃잖아요. 그 상황은 오로지 자기 안의 감정만이 진실한 것일 수 있는 억압적인 상황인 거죠. 식민지민에게 유일하게 진실한 것으로서의 감정, 거기에 주목해야만 식민지배의 역사가 드러나요. 서로의 비참함을 동정하면서 연대하고, 다른 한편으로 분노를 삭이면서 증오심을 품는 다양한 감정의 스펙트럼이 있어요.

  덧붙이면 식민주의와 근대성은 따로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일본의 식민통치 덕분에 근대화가 되었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의 뻔뻔한 주장도, 사실 식민주의와 근대성이 중첩·결착된 데서 오는 자기착시의 결과이고요. 우리의 역사적 경험에서 근대는 서구와 일본이 가져 온 화려한 물질문명이었고, 그것에 압도되지 않을 수 없었어요. 1900년대 초 시내에 전깃불이 켜졌을 때의 놀라움과 충격, 힘차게 달리는 기차의 스펙터클, 그것에 압도당한 채로 식민화되었을 때, 사람들은 식민화의 원인을 제 안에서 찾게 돼요. 내가 문명화되지 못한 야만이어서, 힘이 없어서 식민 통치를 받는구나 하는 자기비하의 감정이 생겨요. 한 번 남보다 못하다고 낙인찍히고 압도당한 자는 물질적이고 금전적인 힘에 더 집착하게 되죠. 그건 근본적으로 ‘인간다움’을 파괴당하는 과정이고요. 그러니까 “식민지 트라우마”는 “근대성의 트라우마”와 다르지 않아요.

Q : 식민자로부터 받은 일상적 폭력과 모욕은 식민지민들끼리의 동정과 연대를 이끌어내기도 하지만, 주변의 소수자에게 폭력을 되풀이해야 비로소 해소되는 분노감정의 앙금을 남깁니다. 그러한 감정의 심연과 관련해 1931년에 벌어졌던 재조선 중국인 학살 사건(소위 ‘평양사건’) 등을 다루었는데요. 오늘날에도 외국인 노동자와 조선족에 대한 차별을 비롯한 외국인 혐오 문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A : 외국인 혐오에 백인·유럽인·서구인은 물론 포함되지 않겠죠? 외국인혐오는 백인우월주의와 연결되어 있고, 백인은 그런 대접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는데요. 이러한 유사제국주의 시선은 결코 한국만의 특수한 문제는 아니에요. 다만 발현되는 방식이나 정도에 차이가 있겠죠. 국적·인종에 따른 혐오는 서구 제국주의가 가져온 이분법과 위계화의 프레임이 작동한 결과죠. 근대문명과 야만, 백인과 비-백인과 같은 이분법 위에, 양자를 상하위계의 관계로 배치하는 위계주의가 중첩된 인식의 프레임이 그것인데요. 비단 외국인 혐오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이 프레임을 통해 모든 것을 인식하기에 이릅니다. 잘 사는 자와 가난한 자, 성공과 패배, 정상인과 장애인, 이러한 이분법적 서열화의 프레임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도록 한 것이야말로 근대성의 부정적인 면이라고 봅니다. ‘식민지 근대’ 경험은 약자를 타자화해도 된다는 생각을 자연화하는 인식의 프레임을 형성했고, 그것은 어느새 우리의 아비투스로 뿌리 깊게 박혔어요. 우리 스스로가 야만인으로 규정된 당사자였기 때문에 그 아비투스가 더 깊고 오래 가는 것이죠.

Q : 가장 중요한 것은 식민지 유산의 극복일 것입니다. 식민지 경험의 트라우마를 넘어서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서문에서 잠깐 언급하셨던 촛불혁명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A : 지금까지의 답변에서 근대성의 부정적인 면을 주로 이야기했는데, 근대는 장단이 있다고 봅니다. 근대는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그 자체로 존엄하다는 혁명적인 생각을 우리에게 줬잖아요. 물론 그런 근대적 가치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그런 상상을 가능케 해주었다는 것이야말로 근대가 준 선물이죠. 식민통치의 경험은 근대적 인간성의 상상을 현실화할 힘을 배양할 시기와 기회를 놓치게 했어요. 앞으로의 관건은 자유, 평등,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상상을 아주 일상적인 생활의 관계에서까지 관철시키고 내면화해내는 일이에요.

  저술의 계기가 된 최근 한국의 사회적 문제들은 ‘20세기 한국의 문제’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앞서 답변했는데요. 이 책을 집필하던 도중 촛불이 일어났고, ‘아, 20세기는 끝나갈 수 있는 건가’라는 희망을 느꼈어요. 촛불은 일상적 권력이든 합법적 권력이든 한국에서 권력이 사용·작동되는 방식 자체에 문제제기를 한 것이고, 그런 점에서 정치적이기보다는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저항이었다고 봐요. 이분법적 서열화 대신 흑과 백 사이에 있는 다양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평등하게 재배치하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을 촛불에서 봤어요.

  촛불의 가능성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은 최근의 미투운동이라고 봅니다. 검찰이 아무리 적폐수사를 한들, 소위 진보인사라는 자들이 일상에서 권력을 잘못된 방식으로 행사하는 걸 막지 못하잖아요. 촛불이 권력을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는 체제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면, 미투운동은 미시적인 일상의 영역에서 권력이 사용되어 온 방식에 대한 저항이죠. 미투운동이 고립되지 않고 호응을 얻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저는 이미 한국 사회가 진일보한 것이라고 봐요. 미투운동이 지속적으로 힘을 얻게 되면, 평범한 사람들로부터도 ‘나는 일상에서 그런 폭력을 한 적이 없나’ 하는 반성을 이끌어낼 수 있을 테고요. 나아가 물질적인 풍요만을 최고의 가치로 두지는 않았나, 나도 괴물이지 않았을까, 저마다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지면서 자신의 감정 속 폭력과 모욕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식민지 트라우마』 역시 그런 자기성찰을 통해 내실 있는 민주사회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 속에서 쓰였고요.

  MBC 이근행 PD가 《시사IN》에서 제 책에 대한 서평을 써줬어요. 그 서평이 제 의도를 가장 잘 이야기해준 것 같아서, 그 일절을 여기에 인용하는 것으로 인터뷰의 끝을 갈음해주었으면 해요. 이 책을 한국의 평범한 개인들, “민주시민이고자 하는 모두에게 권”합니다.

■ 인터뷰·정리 : 반재영 기자 qkswodud1044@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