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인간은 왜 폭력과 훼손의 고통을 느끼는가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 『소년이 온다』, 99쪽.



녹음이 짙어가는 5월, 소설가 한강을 만났다. 한강 작가를 만난 곳은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서울예술대학 캠퍼스였다. 서울예술대학 캠퍼스는 단원고가 위치한 4호선 고잔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중앙역 인근에 있었다. 중앙역에서 내려 캠퍼스로 향하는 길에는 세월호 탑승객들을 추모하는 노란색 현수막들이 걸려 있었다. 한강 작가가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교정을 보던 중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고 했다. 1980년 광주의 흔적을 더듬으며 오랜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던 시점이었다. 30여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80년 광주의 수장된 기억들은 여전히 그들에게 고통스러운 악몽이었다.


광주,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한강 작가는 광주에서 태어나 1980년 열 살 되던 해에 서울로 이사했다. 상경 후 2년이 지난 여름, 작가는 당시의 광주를 기록한 사진첩을 보게 되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소년이 온다』, 199쪽) 작가는 ‘학살자 전두환을 타도하라’는 유인물이 나돌던 1980년 광주의 기억을 소환한다.

『소년이 온다』는 열다섯 살 소년 동호는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에서 총검으로 으깨진 시신들을 수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친구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후, 소년은 시신들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지독한 시취 속에서 촛불을 피워올린다. 그러나 시신을 수습하던 소년 역시 계엄군의 총에 희생된 채 시체 더미들 사이에 묻힌다. 소설은 80년 광주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람, 자살한 사람, 가족이 살상된 슬픔으로 평생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열다섯의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소년의 형은 아무도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제대로 소설을 써 달라고 작가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2012년 겨울에 80년 광주에 대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30여년이 흘렀기 때문에 정리된 자료가 굉장히 많았죠. 관련 자료를 구해서 끝까지 다 읽겠다고 결심했어요. 자료를 접할수록 상상했던 것보다 끔찍했죠. 제가 89학번인데 입학 당시에는 이미 광주에 대한 소설이 많았어요. 제가 93년에 소설가로 데뷔했는데, 임철우 선생님의 『봄날』이 90년대 중반에 나오기도 했구요. 더 이상 제가 보탤 말이 없고 충분해 보였기 때문에 평생 광주에 대해 쓸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간이 흘렀고 오히려 광주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안 하잖아요. 지금, 여기의 현실 또한 녹록치 않죠. 그런 외적인 계기들이 글쓰기의 동력이 되었어요. 광주에 몇 차례 방문하고 3개월 정도는 취재만 했어요. 쓰는 동안 굉장히 고통스러웠고 잠자기 두려울 정도로 악몽이 계속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진상을 알면 알수록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응시와 성찰

작가 한강은 초기작인 『여수의 사랑』에서부터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날카로운 응시와 성찰을 보여주었다. 작가는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의문과 인간을 껴안고 싶다는 두 가지 열망이 자신의 소설 쓰기를 지탱해 왔다고 말했다. “제 소설에 내적인 투쟁들이 있었어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 나름으로 던져왔다고 생각해요. 초기작인 『여수의 사랑』이라는 소설에도 인간의 폭력에 대한 의문이 들어 있었죠. 인간의 폭력성에 대한 의문과 회의, 그리고 인간을 껴안고 싶다는 열망이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 되었어요. 2011년 겨울에 쓴 『희랍어 시간』에서는 언어를 밀어내고 세계를 밀어내면서 내적 투쟁을 하는 여자가 나와요. 그 여자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에게 말을 거는데 그 여자는 스스로 언어를 거부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남자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요. 그 장면을 쓰면서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따듯한 장면을 쓰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것을 진전시켜 인간의 연하고 따듯하고 환한 지점을 쓰려고 노력했는데 잘 안 되더라구요. 왜 인간을 껴안는 게 어려운지 저를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그때 열 살에 경험한 광주가 떠올랐죠.”

작가는 왜 인간이 인간에게 폭력을 가하고, 누군가는 폭력과 죽음을 무릅쓰고 투쟁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소설을 통해 풀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편소설을 쓰면서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보는 편인데, 한 질문을 끝까지 밀고 가보면 다음 질문이 생각이 나는 편이에요. 『채식주의자』를 쓸 때는 인간이 결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어요. 그 소설에는 육식으로 대변하는 폭력적인 세계를 거부하고 식물이 되어가는 인간이 등장하죠.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는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계를 우리는 왜 살아내야 하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어요. 그리고 『희랍어 시간』에서는 우리가 그런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면 대체 어떤 지점을 응시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라고 물었죠. 질문들을 앞으로 밀면서, 하나의 질문이 끝나면 다음 질문을 밀면서,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질문들을 이어나가는 것이 장편을 쓰는 일 같아요.”


존엄함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사랑

작가는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면서도 광주를 떠올렸다고 했다.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소년이 온다』, 207쪽)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쓰며 인간이 겪는 폭력과 훼손의 고통을 느끼는 것조차 인간의 존엄에 대한 우리의 믿음 때문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가 고통을 느끼잖아요. 우리 마음에 훼손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다 쓴 후에도 이것을 쓰면서 느낀 고통을 정리하기 힘들었어요. 쓰면서 많이 울었는데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훼손되었던 그 순간들이 너무 잔혹해서 눈물을 흘리게 됐어요. 한 번역가가 걸프전 당시를 회상하면서 쓴 글이 기억에 남아요. 걸프전 당시에 민간인들이 폭격을 당해 죽는 장면을 버스 차창으로 내다보았는데 계속 그에게 눈물이 흘렀다고 해요.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그는 그것이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해요. 그의 말이 저에게 와닿았어요. 생명에 대한 사랑, 존엄에 대한 믿음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가 고통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소설을 쓸 때도 그랬지만 읽으면서 누군가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겠죠.”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이 소설의 제목이 ‘소년이 온다’인 이유를 묻자, “소년은 이미 죽어서 올 수 없는 존재가 되었지만, 넋으로도 오고, 우리가 호명하면 오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슬픈 영혼들을 위로하는 듯한 따듯하고 환한 촛불과도 같은 눈빛이었다. “80년의 광주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참혹한 사건인데 그 안에서 사랑의 길을 만들려고 애를 쓴 게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쓰게 될 소설이 그리 밝지는 않을 것 같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 정리: 선민서 기자 minseo@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10: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