캥거루에게는 불효가 필요해

최진영

국어국문학과 석사과정

“뭘 또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주말에 집에 가면 데리러 나온 아빠가 웃으면서 항상 제일 먼저 하는 말이다. 주말 동안 읽을 책들이며, 다 먹은 반찬통, 화장품, 집에 갖다놓을 옷 등을 들고 가려다보니 여러 개의 가방을 들고 집에 간다. 그 점이 신경 쓰이는지 아빠는 동네 지하철역으로 태우러 나온다. 사실,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버스를 타고 한 번에 갈 수 있는데 스물다섯 살에 아직도 아빠가 매번 차 태우러 나온다는 사실이 민망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아빠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아빠는 데리러 나오는 것이 나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당신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는 일이므로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루는, 혼자 가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아빠에게 버스를 타고 가겠다고 문자를 했다. 짐이 없냐며 지하철역으로 나간다고 해서 짐도 별로 없고 괜찮다고 하니 지하철역에서 보자고 답장이 왔다. 그 문자를 받고 확 거부감이 들었다.

부모님은 항상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하지만 나의 의사를 세심하게 묻기보다 일단 나를 위한다고 생각되는 일이면 당연히 그렇게 하는 것으로 정해놓는다. 그 점이 때로는 일방적으로 느껴지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지젝의 말을 빌리자면, “할머니 집에 가야 돼!” 식의 권위적인 명령이 아니라 “할머니 집에 가야지? 안 그러면 할머니가 얼마나 속상해하시겠니. 착하다.” 식의 은근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명령이다. 이 다정한 목소리에, 나를 위한다는 마음에 조그만 반기라도 들 생각을 하면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물론,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물질적인 도움에 감사하지만, 이제는 그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 나의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고 이해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이것을 잘 말해야 한다. 필요 없다며 말도 없이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기분도 상하지 않게 애정을 갖고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대화라는 것이 모든 문제들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경우가 많아 낡고 식상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실천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성인이 된 이후에 웃음의 포인트도 다르고, 관심사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 부모와 점점 대화를 덜 하게 되었는데, 부모의 호의에 대해 내가 미세하게 느낀 어떤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는 특히 더 어렵다. 버스를 타고 싶었는데 데리러 나온 아빠에게 나는 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것이라는 말밖에 하지 않았다.

집에서 자취방으로 갈 때에도 내가 가져가는 짐 가방이 엄마와 아빠에게는 화제가 된다. 주중에 먹을 과일이나 반찬을 넣다보면 가방이 무거워지는 것이다. 아빠는 뭘 또 이렇게 많이 가져 가냐고 하면서 연신 가방을 들어보고, 엄마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것이 시골에서 갓 상경한 처녀 같다고 되도록 짐을 적게 가져가라고 말한다. 지난주에는 엄마가 짐이 많다고 아빠랑 같이 데려다줄까 하고 물어보았다. 내가 괜찮다고, 귀찮게 그러실 필요 없다고 말을 해도 드라이브 삼아 가면 된다고 세 번이나 물어봐서 나중에는 괜찮다고 거의 소리 지르다시피 말하고 나왔다. 지하철역까지 태워주면서(이것 역시 관례이다), 아빠는 짐이 무거워서 걱정돼서 자취방까지 데려다준다는 건데 뭘 또 그렇게 싫다고 하냐고 서운한 듯 말했다. 나는 이제 혼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알아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빠가 들어주던 가방을 차에서 내려서 들어보니 생각보다도 정말 무거웠다. 그렇지만 항상 그랬듯이 가방이 무겁지만 들 수 있겠다 싶었고, 잘 들고 방에 도착했다.

내가 거듭 괜찮다고 거절할 때, 부모님이 서운하게 느낄 것을 알고 있다. 나를 데려다준다는 마음에는 나에 대한 걱정을 덜고 당신이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고, 필요로 하지 않다는 나의 마음 역시 진심이다. 힘들어도 이제 부모와 자식의 분리가 이루어질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과도기인데, 여전히 굴비 살을 발라주겠다고 고집하는 엄마에게, 무거운 짐은 꼭 자기가 들려는 아빠에게, (남동생의 여자친구와는 달리) 4년 만난 나의 남자친구 얘기를 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부모님에게 내 감정과 생각을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넌 너무 독립적이라며 그러한 노력마저도 아이 같은 것으로 보지만 말이다. 그런데 부모님도 어느 정도는 자식과의 분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남동생마저 입대로 집을 떠나자 엄마는 식물을 사기 시작했고, 지금은 100여 가지가 넘는 식물을 키우고 있는데, 실제 자식들은 멀리 있기 때문에 초록이들(식물들)을 자식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말이면 꼭 나까지 데리고 쇼핑공간이나 식당, 공원에 가려고 했던 아빠도 엄마랑 둘이 나가서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부디 이 시간이 잘 지나서 우리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