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근절…“이제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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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11일 이화여자대학교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에서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촉구 간담회(이하 간담회)가 개최되었다. 간담회는 더불어민주당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노웅래 외 10명), 교육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준),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등의 공동 주최로 진행되었다. 간담회는 대학 내 교수와 학생 간에 발생하는 ‘권력형 성폭력’의 재발 방지 및 사후처리를 위한 제도적 개선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행사는 1부 와 2부 로 구성되었다.

‘권력형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구조와 제도의 미비

1부 에서 대학(원)생의 피해 사례를 알리고 ‘권력형 성폭력’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제도적 미흡함을 함께 지적하는 대학(원)생의 모두발언과 정부 및 국회 관계자의 화답발언이 진행됐다. 본교 일반대학원 석사 졸업생 이혜선씨는 졸업 논문을 지도 받기 시작한 시점에 지도 교수에게 성폭력을 당했으나 대학원 내에서 지도 교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 문제제기하기 어렵다며 ‘권력형 성폭력’의 피해자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대학원 내 구조를 지적했다. 아울러 용기 내어 피해 사실을 알려도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보다는 피해자에게 침묵을 지키도록 종용하거나 2차 가해를 가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보호해 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위원장은 대학 내 성폭력 현황의 심각성을 직시해야 한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성폭력 사실을 밝혀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피해자들이 인식하고 있다며, 대학 내 피해자의 보호 및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기관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한편 그는 ‘권력형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요인으로 대학 내의 미온적인 성범죄 징계를 지목했다. 가해자 징계 현황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정직 3개월’이라는 결과가 1980년대에 만들어진 교육공무원 징계 규정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짚으며, 징계 규정이 사회의 성평등 의식에 비해 뒤쳐졌다고 비판했다. 구성원들이 성범죄 처벌에 엄정성을 요구하는 만큼 징계 규정도 그에 발맞춰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권력형 성폭력’은 권력과 폭력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다각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사후처리에 관한 접근, ▲사전예방을 위한 접근,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기 위한 관계망의 재구축과 같은 다양한 경로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미투운동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성불평등 권력구조를 깨트리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구조적 문제로 인식하고 혁명적 제도를 마련할 필요성을 느낀다고 발언했다. 이에 교육부가 이를 최우선과제로 선정하고 관련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현재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단’을 구성했으며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온라인 신고센터’를 확대 개편했다고 밝혔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권력형 성폭력’과 ‘갑질 문제’ 등 교육계에 만연한 교육적폐의 요인으로 도제식 교육제도, 교수-학생 간의 위계구조, 성적과 추천서 문제 등을 둘러싸고 생길 수 있는 갑을관계를 꼽았다. 아울러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를 표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현재 ‘대학인권센터 설치 의무화법’과 ‘성범죄 교수 솜방망이 처벌 방지법’을 발의한 상태라고 밝혔다. 또 ‘교수 성범죄 징계시효 연장법’이 최근 국회에서 통과되었다고 덧붙였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대학 내 성폭력예방교육 실태를 언급하며 인권침해에 대해 무방비하고 방치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지적했다. 가해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보호받고 존중, 치유 받을 수 있는 제도 개선이 더욱 시급하다는 진단을 제기했다.

‘학생 자치’를 통한 ‘권력형 성폭력’의 공동체적 해결 모색

간담회 2부 에서는 정책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오갔다. 2부 행사는 대학(원)생의 정책 제안을 위한 발제 「대학 안에서의 권력형 성폭력 문제의 공동체적 해결이란 무엇인가」와 「대학원 내 성폭력 예방·대응을 위한 정책 제안」이 제기됐다. 이어서 김규태 교육부 고등교육 정책관의 답변 순서로 진행되었다. 「대학 안에서의 권력형 성폭력 문제의 공동체적 해결이란 무엇인가」의 첫 번째 발제자 김정한경 이화여대 부총학생회장은 ‘권력형 성폭력’ 해결을 위한 학생 사회 내부의 노력을 강조했다. 그는 소수자를 위한 학생자치기구가 학생들의 신뢰를 얻으려면 진정성과 전문성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기구를 운영하는 주체들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활동과 전문적인 교육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가해자가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된다면 제도적·사회적 개선이 없을 것이라며 사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두 번째 발제자 박성호 서울대 부총학생회장은 교수와 학생 간의 수직적 관계가 재구축되어야 ‘권력형 성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교수와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한 권력구조의 개선을 위해 ‘지도교수 변경’, ‘신고 후 공간 분리’ 등의 제도를 통해 피해 학생이 가해 교수의 권력 범위 밖으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인권센터 심의위원회와 징계위원회 내의 학생 참여가 배제되어 있다며 학생들의 거버넌스 참여를 독려하는 제도적 보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두 발제자는 교수와 학생 간의 뿌리 깊은 권력관계를 바꾸려면 대학 사회 전반에서 학생에게 힘과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며 대학 내에서 ‘학생의 자치’가 보장받고,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권리를 행사하여 더 나아가 대학 운영을 함께 해나가는 주체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징계제도 현실화 및 2차 피해 방지 등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제안

이어서 「대학원 내 성폭력 예방·대응을 위한 정책 제안」의 첫 번째 발제자 유현미 씨(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는 대학원 내 성폭력 해결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성차별적 구조와 문화 개혁 ▲권위주의적 위계 관계 개혁 ▲대학원 공동체의 문제해결능력 신장 ▲교육·연구 공동체의 인권 감수성 향상을 제시했다. 또한 ‘권력형 성폭력’ 예방과 대응을 위해 ① 모든 교원과 전 대학 구성원 대상 인권·성평등 교육을 의무화 ② 교원 징계 항목 추가 및 교원소청위 제도 보완 ③ 2차 피해 방지를 위해 피해자-가해자 공간 분리와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주의 사항 교육 ④ 학교본부 및 소속 학과의 감독·관리 책임 의무화 ⑤ 피해자에게 사후처리 진행 과정 및 결정 사항 알리고, 피해자가 요청할 경우 의견 개진 가능하도록 여건 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발제자 이우창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정책위원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 담당 학내기구(인권센터)의 현황과 실효적 운영을 위한 개선 방안을 제기했다. 이우창씨는 다수의 인권센터가 유의미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1) 표준화된 모델의 구축과 2) 자율성 및 전문성의 제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우창 정책위원은 본지에서 취재한 〈ME TOO에서 WITH YOU로: 피해사례 성토대회 및 문제점 진단 토론회〉에서 동일한 내용을 다룬 바 있다. 기사 에서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김규태 교육부 고등교육 정책관은 발제자들의 정책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발언을 이어나갔다. 그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성폭력 사건을 대학이 아닌 수사기관이 조사하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자율성이 강조되고 공동체의식이 강화되는 곳이 대학이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발언했다. 앞선 정책 제안들이 대학의 공동체성과 자율성을 고루 고려했기 때문에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그는 현재 징계위원회와 조사위원회에 학생과 외부인을 포함시키는 법을 추진 중이며 위원회에 여성위원의 비율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마지막 순서로 패널들이 간담회의 소감을 말했다. 구슬아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위원장은 “오늘 간담회처럼 입법부, 행정부, 학생당사자가 모인 이 자리가 의미 있으려면 토론회를 개최했다는 사실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학생 당사자가 할 일이 많다고 느꼈고,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또한 당사자 조직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유현미 씨는 “성폭력 문제를 제기하면 공동체가 와해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성폭력 해결 과정이 공동체 와해의 과정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교육적 경험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겪은 경험과 그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전승하고 학생 사회 전체의 역량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히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 이은솔 기자 eunsol15@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