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인, 『대학과 권력』, 휴머니스트, 2018.

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 그 궤적과 미래를 살피다

한국의 사립대 비율이 이다지도 높은 것은 왜일까. 대학의 기업화에 따른 공공성의 상실은 언제부터 본격화되었으며 그 내적 논리는 무엇이었나. 총장 직선제를 비롯한 대학 자율성의 침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 가운데 대학의 사회적 역할과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논의는 충분히 이루어졌을까. 『대학과 권력』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한국 대학 사회의 문제점들을 높은 밀도로 다루어낸다. 아울러 그러한 문제들이 어디에서 기원했으며 또 어떻게 존속되어 왔는지 한국 대학사(史) 100년을 살피는 과정에서 짚어내고 있다. 한국의 대학사를 ‘통사’의 형태로 구성한 최초의 저술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새롭다. 본지는 『대학과 권력』의 저자 김정인 교수(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Q : 선생님께서는 대학권력·국가권력·시장권력 3자 사이의 상호작용과 개입의 양상에 주목하면서 한국 대학사를 구성하셨습니다. ‘권력’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대학사를 서술하자는 문제의식은 어떻게 품게 되셨나요?

A : 박사논문을 쓴 직후에 학술단체협의회에서 학술위원장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요. 학술단체협의회 활동에서 수많은 대학문제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학비리’의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았죠. 사학비리의 발생 원인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더 나아가 한국사회가 압축적으로 성장해오면서 뒤틀려버린 역사의 지점을 ‘대학’이야말로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에 이르렀어요. 그것이 ‘대학사·사학권력’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배경입니다.

대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현실적으로 이런저런 ‘권력’들이 대학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예컨대 2000년대 초반부터 HK, BK라고 해서 국가권력이 돈을 쥐고 대학평가를 통해 선별적으로 대학을 지원하기 시작했잖아요. 정부의 선별적인 대학지원정책을 보면서 ‘권력’의 문제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또 삼성과 두산이라는 기업이 각각 성균관대와 중앙대를 장악하는 과정이 있었죠. 자연스럽게 시장권력이 대학에 압력을 행사하는 양상이 눈에 들어왔고요. ‘권력이 대학에 어떻게 개입하고 대학을 좌우해 왔는가’라는 주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습니다. 대학사를 쓰자고 관심을 가져보니, 도대체 ‘권력’밖에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충격과 실망이죠. 제 저술이 비판적인 시각으로 쓰인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식민지기부터 타율적 권력에 의해 대학이 설립되고 해방 이후에는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이 개입하면서, 대학의 가치와 역할, 위상에 관한 근본적인 물음이나 대학의 자율성은 억압된 측면이 많았습니다.

Q : 『대학과 권력』은 ‘대학정책의 역사’를 집중적으로 살폈습니다. 대학사 연구의 의의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또 이번 저술과 관련해 후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면 어떤 부분에서일까요?

A : 우선 대학사는 학술사나 지성사, 지식사의 토대가 됩니다. 대학교수가 한동안 사회적 발언권을 인정받는 지식인으로 대접받아 왔는데, 그들의 존재기반이 바로 대학이었기 때문에 그래요. 지식사와 지성사의 맥락을 보려면 대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학문의 세계를 보아야 하고요.

둘째로 대학사는 문화사, 사회사의 연구 대상으로서 중요해요. 대학이 사회·문화의 영역에서 갖는 위치와 역할을 살펴보는 작업이 그것이죠. 한국은 정치, 경제의 차원에서 빠른 속도로 변화해 왔습니다. 그러나 사회·문화의 측면에서 보면, 사람과 집단은 그렇게 빠르게 혹은 단번에 변하지 않아요. 변화 속에서 제각기 다른 속도들을 갖는 거죠. 그 중첩의 역사, 다양성의 역사를 되짚는 ‘성찰적인 역사서술’을 위해서는 문화사적 접근이 요청돼요. 대학은 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때로는 뒤처지기도 하는 문화의 주체로서 문화사 연구의 좋은 연구대상이죠. ‘대학문화’의 역사에 대한 후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대학과 권력』의 후속 연구로서 보충되어야 할 점이 있다면, 이공계 대학에 대한 이해, 이공계 대학의 관점을 꼽아야 합니다. 사실 대학은 1960~70년대 이후 이공계 중심으로 운영되어 왔어요. 현재의 대학정책도 오늘날에 걸맞은 프레임이라기보다는 산업화 시절의 프레임에 토대를 두고 있고요. 이공계 대학은 문과 계통의 대학과 달리 상아탑일 수 없어요. 산학협력과 시장논리가 굉장히 중요해요. 이공계 대학은 이미 다른 사회 영역과 구분되는 ‘대학’이라기보다 사회의 일부가 되어 있고, 그렇기에 이공계 대학사는 상당한 사회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공계 대학의 자료, 이공계 대학의 운영 체계와 움직임, 이공계 대학이 정부·산업계와 맺는 관계를 밝히지 않는다면 전면적인 대학사 서술은 성립되기 어렵죠.

Q : 해방 이후 1950년대부터 사립대학이 고등교육을 주도하고, 사학이 수익모델이 되어 온 내력은 가장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여전히 사립대에서는 높은 등록금(사부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고, 수백억, 수천억에 달한다고 알려진 대학 적립금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습니다. 대학이 ‘부의 축적’을 하고 있음이 명백해 보이는 가운데, 최근 몇몇 대학에서 청소노동자 인원감축 및 초단기 아르바이트 대체 조치 등의 사태가 발생해 더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부 대학은 대학원생 조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라는 요구에 매우 인색한 대응을 내놓은 바 있는데요.

A : 대학원생 조교의 노동자성 인정 요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죠.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노동권에 대한 인식과 자각이 확산되고 있어요. 조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든지, 청소노동자 인원을 감축하려 하는 사립대의 행태들을 보면, 사립대가 마치 이윤을 따지는 기업처럼 보여요. 하지만 기업과 대학은 달라요. 대학은 학생에게 등록금을 받아서 쌓아놓고 그것을 지출하는 방식으로 재정을 운영하기에 기업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재정운영이 가능해요. 이윤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되는 기업이 아닌데, 일을 하거나 돈을 분배해야 할 때에 이르러서는 기업논리를 앞세우는 거죠. 수익구조는 주식회사가 아니면서 필요할 때만 주식회사 행세를 하는 거예요. 사립대는 이미 등록금을 통해 매우 안정적인 예산확보가 가능한 상태에요. 결국 대학 공동체 속에서 학내구성원들에게 예산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의 문제이지, 돈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죠. 하지만 대학 소유주들은 그 분배의 문제 앞에서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절대 놓으려 하지 않고요.

입학금도 문제죠. 입학금, 기성회비 같은 것들은 1950~60년대에 사립대 재정운영이 어려웠던 시기에, 국가 차원에서 사립대 입학 정원을 제한하고 있어서 등록금이 부족하니 추가적으로 명목을 만들어 걷을 수 있게 한 돈들이에요. 기성회비는 지금 사라졌지만 입학금은 아직도 남아있어요. 1950~60년대의 대학에 비해 지금 대학은 어느 모로 보아도 엄청나게 성장하고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때처럼 돈을 받아서 쓰려 하는 것이죠.

Q : 한국 대학의 타율성 문제는 『대학과 권력』의 중요한 한 꼭지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타율적 권력이 개입하는 가운데 대학의 자생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대학 내 주체’가 없었음을 여러 차례 강조하셨는데요. 대학 내 주체의 형성은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까요.

A : 제 생각에 현재 ‘대학 내 주체’의 형성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요.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기술을 중심에 두고 대학과 기업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잖아요. 경계가 흐릿할 때 ‘대학 내 주체’의 형성은 쉽지 않아요. 한국의 대학은 압축 성장을 했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자율적인 아카데미의 장으로 남아있을 수 없었어요. 대부분의 제3세계 신생국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대학’을 파트너로 선택했고, 우리도 마찬가지였죠. 그런 내력 때문에 한국에서 대학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굉장히 오랫동안 공허한 것이었어요.

그럼에도 대학의 자율화와 민주화를 위한 노력들이 있어왔죠. 그 때 관건이 되는 것은 결국 학생의 힘이에요. ‘학내 주체’라면 학생, 교직원, 교수 등의 학내 구성원들이 있을 텐데, 교수들의 경우 과도한 특권의식을 갖고 있어요. 물론, 학생이 주체가 된다 해도 어려움은 여전히 있습니다. 사립대가 너무 많고, 사립대는 대체로 총장직선제도 아니고요. 그러니 학생이 자신의 지분을 갖고 참여할 기회가 적죠. 그럼에도 결국 학교를 변화시키는 것은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에요. 학생들이 주체가 되는 가능성에 주목할 수밖에 없죠.

Q : 본지의 독자인 대학원생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A : 결국 대학원이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던져야겠네요. 사실 연구중심대학이 되어야 진정한 대학원도 가능해요. 말로는 연구중심, 대학원중심을 표방해 왔으면서도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하는 재생산의 기능을 제대로 갖춘 한국의 대학은 거의 없어요. 대학원생은 교수의 연구를 하청하는 꼴이 되어버렸죠.

다른 한편으로는 대학원생에 대한 갑질 문화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거예요. 이것은 교수들의 특권의식과도 깊이 관계된 문제죠. 제가 대학원생이었던 시절에는, 교수와 대학원생이 각각 따로 공부를 했어요. 프로젝트로 서로 얽히지도 않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일은 학교 밖에서 따로 구했으니 갑을관계 자체가 형성되지 않았던 면이 있어요. 저는 대학원생 시절에 그처럼 자유롭게 공부했던 것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민주화세대인 제 또래, 어용교수 물러나라고 외치고 대학원에서 자유롭게 공부했던 80년대 학번들이 정작 대학교수가 되어 하는 행동을 보니 이건 ‘갑질’인 거예요. 대학원생들을 자기 학부 수업에 들어오게 하거나, 답사에 동행하게 하고, 본인 저서의 교정을 맡기고. 이래서야 대학원생들이 언제 공부하죠? 이런 갑을관계는, 교수들이 국가가 주는 프로젝트 재원을 쥐고 대학원생을 종속화시킨 결과입니다. 대학원생들에게 공부할 시간, 배울 기회를 주지 않고 착취를 하는 심각한 문제예요. 대학원생들은 이러한 문제에 맞서서, 대학원 본연의 역할과 위상, 그러니까 대학원은 공부와 연구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환기하고 교수들에게 따끔한 자각을 주는 방식으로 맞서나갈 필요가 있겠습니다.

■ 인터뷰·정리 : 반재영 기자 qkswodud1044@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