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들이 로마의 바티칸을 방문하면 들리는 곳의 하나가 피오 클레멘티노 미술관에 있는 라파엘로의 방이다. 16세기 초 교황의 명을 받은 젊은 천재 화가 라파엘로가 4개의 방에 프레스코벽화를 그렸는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e)에 있는 ‘아테네학당’이라는 제목의 상상화이다. 고대 그리스시대의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들을 그린 걸작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정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 할 수 있는데 각자의 왼손에는 책을 들고 있다. 플라톤은 자신의 저서 라는 책 들고 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역시 자신의 저서 을 들고 있다. 라파엘로가 벽화를 그릴 당시 이탈리아는 르네상스가 진행되면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과 사상이 재발굴 되었고 두 저서는 당시 저명한 저서였고 그 이후 서양 근대 철학과 과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는 플라톤의 대화편 중의 하나이기에 소크라테스, 티마이오스 등 네 사람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책의 시작은 전 날 사람들이 모여 사는 형태는 어떠해야 하는 가에 대한 서술인 에서 언급된 내용이 소크라테스에 의해 간단히 요약이 되고 다음 날 이어서 대화를 하는 것처럼 시작하면서, 그리스의 역사를 찬양하는 의미에서 전설의 대륙 아틀란티스에 관하여 언급하기도 한다. 이 책은 티마이오스가 이야기하는 형식이지만 플라톤이 생각하는 우주와 자연을 설명하는 책이다. 우주(kosmos)의 창조자를 데미우르고스(demiourgos)라 하는데 창조자이지만 전능한 신은 아니다. 데미우르고스는 그리스어로 장인이라는 의미를 갖기에 우리말로 조물주(造物主)와 유사하다. 그러나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의 신과는 달리 무에서 세계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장인은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하여 재료인 질료가 있어야 하고 이를 사용하여 자신이 목표하는 최선의 것을 만든다. 이전에 있던 재료를 재배열하는데, 유능한 장인은 재료가 가진 특성을 이용하며 강제하지 않는다.


즉, 재료가 무르면 무른 특성을 단단하면 그 단단함을 활용하는 바와 같이 데미우르고스는 강제하지 않고 모든 것들을 슬기로운 설득에 의하여 만들었다. 그리고 인간의 혼과 몸, 그리고 생물학적 작용에 대하여도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에는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4원소설의 기본원소로 불, 물, 공기, 흙을 이야기하지만, 이것들을 물질로서가 아니라 도형과 수, 비례관계로서 설명한다. 유클리드의 에서 설명하는 정다면체 이론은 플라톤시대에는 아주 최신 발견이었다. 이 이론에 의하면 공간을 완벽하게 채울 수 있는 정다면체는 5개밖에 없고, 이 중 면이 정삼각형과 정사각형으로 되어있는 4개 다면체를 형태와 성질로 네 원소에 대응시킨다. 그리고 완벽한 도형은 구이고 우주는 구형으로 되어 있다고 제안한다. 우주의 구성에서 인체의 구조 및 작용 그리고 질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도형과 수의 비례 등 수학적으로 설명한다. 조물주는 항상 수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에서의 우주와 자연의 설명은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설명하는 방식이고 그 과정에서 수학을 사용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설명이 사유에 의한 것이라 현재의 과학으로 옳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 책은 근대 과학을 탄생시키고 현재 과학의 방식을 확립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책이다. 현재의 과학도 이 책에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과학자가 관심을 가져야 한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떤 현상을 원인에 대한 결과로 설명하고 그 설명 방식에서 수학을 사용하고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자연 현상에서 문제를 찾는다. 그리고 원인과 결과에 대하여 숙고하고 가능하면 알게 된 것들을 수학적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현대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이론인 양자역학의 창시자중 한 사람인 하이젠베르크는 청년시절에 를 읽고 숙고하였는데, 이러한 경험이 양자역학 이론을 확립하는데 기여하였다고 한다. 이 책에서 서술하는 것들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며 공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과학자들에게 지금도 알려주는 것은 과학을 하는 방법으로 근대 서양의 과학을 꽃피게 하는 기반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도 에서 설명한 문제 중에 현대의 과학으로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주제도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영혼, 사고하는 능력과 같은 것으로 과학자들이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중이다. 이 책이 말하는 중요한 것은 우주에서 인간의 생명까지 -모든 자연을- 가장 기본적인 원리로 통일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필자도 이러한 시도의 가장 미미한 부분에 수십 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전승준 이과대 교수·화학과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5 15:2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