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최정화, 󰡔없는 사람󰡕, 은행나무, 2016.

임세화

언제부터인가 언론은 ‘자살’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사망, 투신, 숨진 채 발견, 유서, 타살 혐의 없음……. ‘자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과 예상할 수 없는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아마도 보도윤리지침 같은 것들에 따라 용어를 달리 한 것이리라. ‘자살’이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더라도 뉴스를 접하는 누구나 그것이 ‘자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떤 ‘자살’은 사실상의 ‘타살’임에도 불구하고 ‘자/타(自/他)’가 삭제된 채로 그저 죽음만이 사건화되어 전달되곤 한다. 누구도 ‘자살/타살’이라고 명료하게 선언해주지 않으므로, 오직 사망했다는 사실만이 선언되는 것이다. “벌써 여섯 번째 죽음입니다”(17쪽)라는 뉴스 앵커의 멘트가 칼국수집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심상하게 흘러나오고, 그 소식을 듣는 사람은 그저 칼국수 면발을 호록호록 삼키게 되는 것처럼.

지난 주 한국GM 공장의 희망퇴직자가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 ‘두 번째 죽음’이었다. ‘제2의 쌍용차 사태’가 겹쳐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29……. 쌍용차 사태 이후 투병, 자살 등으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숫자다. 생활고를 비관한 노동자가, 소송으로 고통 받던 노조원의 부인이, 현장을 진압했던 의경이 자살(당)했다. 누가, 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손으로 그 자신의 생목숨을 끊도록 만들었단 말인가.

최정화의 󰡔없는 사람󰡕은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씌어진 소설이다. 󰡔없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실’로 사람의 목을 조르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노조파괴 용역을 그려내며 이 질문에 답변한다. 없다, 라고…… 그런 사람은 없다, 라고…….

‘없는 사람’은 자본으로부터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언제든 내쳐지는 힘없는 노동자에 대한 호명이자, 노조를 파괴하기 위해 해직 노동자인 척 투쟁현장에 위장 잠입한 용역직원 무오의 위치이다. 동시에 이 제목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사람’이 ‘없다’는 역설을 아프게 함의하고 있다.

󰡔없는 사람󰡕 어디에도 노동자들을 죽게 한 장본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헐값에 공장을 사들여 기술을 빼돌린 뒤에 되파는 것이 목적인 ‘공장의 주인’은 계속해서 바뀌며, 그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외국 기업’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라고 용역에게 사주한 기업 오너/관계자도 등장하지 않는다. 무오에게 용역 업무를 지시하는 브로커 이부 또한 노동자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부는 노동자들이 연이어 자살하면 곤란하다는 사실을 안다. 누구도 노동자들을 죽이지 않았고, 누구도 그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도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자살했다. 그리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용역 브로커 이부는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란 건 누군가에게 당신의 목에 실이 걸려 있다는 걸 알게”(34쪽)해주고, 스스로 알아서 그만두게 하는 것이라고. 노동자들이 “싸움을 포기하게” 만들고 “굴복, 체념”(35쪽)하게 하는 것은,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려고 그러는”(34쪽) 것이라고. 요컨대 “싸움의 조속한 해결”(36쪽)을 위해서 용역직원 무오는 시위대에 섞여 전경에게 볼트를 던지고, 노조에 유리한 증거를 없애고, 점거농성장에 위장 잠입하여 내부 여론을 분열시킨다. 그 결과 소설 안에서만 열한 명의 노동자가 ‘삶’을 내려놓았다.

노동자들이 그만 둔 것은 싸움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 싸움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투쟁이었으므로, 싸움을 그만 둔 이후 그 삶도 끝나버린 것이다. 노조위원장 도트의 아내가 이혼을 선택하고 아이들을 도트로부터 격리시킨 이후에도, 도트에게 “끝까지 싸워”(105쪽)라고 말했던 이유는 그것이 ‘싸움’이 아닌 ‘삶’이라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녀의 말은 ‘끝까지 살아’, 라는 말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 싸움/삶을 멈추게 하라는 지령을 받고 용역으로 투입된 무오는 매일 악몽을 꾼다. 무오는 해직 노동자들의 주장에 공감하기도 하고 그 당당한 모습에 반하기도 하지만, 결국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해하고 중단시키는 것이 그에게 할당된 ‘노동’이다. 거칠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사람과 죽은 듯 땅에 엎드려 맞기만 하는 사람. 매일 꾸는 꿈이지만 무오는 알지 못한다. 꿈속에서 자신이 맞는 쪽이었는지 때리는 쪽이었는지. 꿈에서 깨고 나서도 밤새 맞은 듯 온몸이 아프지만, 각목을 휘두르는 장면만은 선명하다. 결국 자신이 때리는 동시에 맞는 자라는 것쯤은 무오도 알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가 모르는 것은 자신의 위치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이, 왜 이 싸움/노동/삶을 지속하고 있는가에 대한 당위이다. 소설은 계속해서 묻는다. 다만 살아야 한다는 까닭만이라면 싸울 이유도, 죽을 이유도 없지 않겠느냐고. 그것이 지금은 죽고 ‘없는 사람’들, 쌍용의 GM의 그리고 수없이 스러져간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남긴 질문이 아니겠느냐고.

그들은 왜 싸워야 하고, 왜 살아야 하며, 왜 죽어야 했는가. “같이 일을 진행해놓고 자기는 아니라는 듯 나는 너랑 다르다는 듯 구는 무오 씨가 더 이상해보여.”(171쪽)라는 노조 배신자 긴팔의 말은 그래서 더 아프다. 노조파괴 용역이지만 ‘진짜 노조원’이 된 것처럼 77일의 점거 투쟁 동안 함께 소금밥을 지어먹으며 울고 웃고 격분하고 걱정하며 말투와 행동거지까지 닮아갔던 무오는 ‘세상이 역겹다’며 자살했던 쌍용차 진압 의경의 현현이자 ‘강성/귀족노조’ 프레임으로 사태를 비난했던 방관자이자, 이번이 몇 번째 죽음인지를 헤아리며 ‘자살’이란 말을 대체할 용어를 찾고 심상히 전해 들었던 우리 모두이다.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없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