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제자’, 혹은 ‘강사와 수강생’

 어느 시간강사

비록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시간강사로 꽤 살아보니 소소하지만 제법 곤혹스러운 문제가 몇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는 내 수업을 듣는 학생을 지칭할 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령, 친구와 길을 걷다 학생과 마주쳤을 때, 나는 친구에게 그 학생을 뭐라고 소개해야 하는가? ‘제자’라고 부르면 그만일 것 같긴 한데, 나는 그 말이 영 입에 붙지 않는다. 차라리 ‘내 수업 수강하는 학생’이라는 다소 긴 표현이 좀 더 적확하게 느껴진다. 왜일까.

‘친밀감’의 유무가 문제라면, ‘제자’라는 말에서 유발되는 위화감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내가 그들을 한 학기 이상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 모두가 잘 알고 있듯, 시간강사는 학기 단위로 학교와 계약한다. 그렇다면 초·중등교육에 종사하는 기간제 교사의 사정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는 않을진대, 왜 고등교육기관에서 일하는 나만 유독 위와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일까. ‘교사’와 ‘강사/교수’라는 개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편으로, ‘소속감’에서 그 차이를 따져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간제 교사는 적어도 계약된 학기에 한 학교에서 일하는 반면, 시간강사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설령 한 학교에만 출강하는 학기에도 일주일 중 5일을 모두 출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일종의 ‘특강’을 16번 하는 기분이라면 정확하게 설명될 수 있을까. 아무튼 그런 부분에서 한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둘째는 강사 개인의 ‘우선순위’일 것이다. 학위를 받았든, 그렇지 않았든 대부분의 강사들은 기본적으로 ‘교육자’보다 ‘연구자’를 자신의 주된 정체성으로 인식하기 마련이다. 심지어 대학원 강의를 수강하면서 동시에 자기 강의를 해야 하는 연구자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적어도 돈을 받고 강의를 하는 이상, 강사는 자신의 강의에 최소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이상의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무래도 대답은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강의의 우선순위가 연구 활동보다 낮은 상황에서 일정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강사는 당연하게도 ‘강의’보다 ‘연구’의 질을 높이는 데 그 시간을 쓴다. 즉 대부분의 강사는 강의를 최소한의 의무에서 끝내고, 연구의 질을 높이려 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강의나 연구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간사노동, 동원된 사업에서의 업무 등 수많은 비非가시노동까지 고려할 때, 온전히 우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소중한 시간은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는 연구에 쓰기에도 모자란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위의 이야기들을 일반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따리장수’를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애정을 쏟는 강사도 있을 것이고, 연구보다 강의를 더 중시하거나 의외로 많은 시간이 확보되는 환경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속감이니, 시간이니 하는 이야기를 제쳐두고 시간강사가 강단에서 수행하는 활동이 ‘교육’인지 묻는다면 어떨까?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매개하는 활동이 교육이라면 시간강사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건대, 나는 ‘교육자’이기보다 ‘교육서비스의 제공자’라는 느낌을 훨씬 더 강하게 받는다. 특히 교양과목을 담당하는 입장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래도 학생들이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고 교육 내용 자체가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다고 생각하는 전공과목과 달리, 교양과목에서 학생과 강사 모두의 관심사는 ‘평가의 기준’에 쏠린다. 즉 ‘무엇을 배우고 사유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을까’가 학생들의 질문이다. 동시에 강사 역시 ‘무엇을 가르쳐 사유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공정하게 학점을 매길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강사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기초교양(Liberal Arts)의 의의 자체가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서 언급한 두 요소가 교수/강사 등 교수자 처우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면, 이 대목에서 묻고자 하는 것은 ‘대학교육’의 의미 자체에 대한 것이다. 지금 대학 강의실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들은 ‘교육’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대학의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물론 너무나 어려운 질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에 답하지 못하는 한,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을 ‘제자’라고 부르지 못할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