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축구의 '한일전', 덴소컵 한일대학축구정기전

[SPORTS KU=글 김정민 기자, 사진 이수민 기자 / 대한축구협회 제공] 고연전, 슈퍼매치, 엘 클라시코. 모두 축구 팬들을 열광케 하는 더비 경기다. 그 중 전 국민의 기대를 모으는 거국적인 경기는 무엇일까. 바로 한국과 일본이 대결하는 한일전이다. 한일전의 역사나 관심도는 단연 최고에 이른다. 하지만 축구팬들에게조차도 다소 생소한 한일전 축구 경기가 있다. 바로 대학축구 무대의 한일전, 덴소컵 한일대학축구정기전(이하 덴소컵)이다. 지난 3월 17일 통영에서 개최된 제 16회 대회에서는 2-1 한국 대학선발의 짜릿한 역전승으로 막을 내렸다. 고려대학교 축구부(이하 고려대)에서는 김호(체교17)와 민성준(체교18)이 선발 출전하며 이목을 끌었다. 대학생들만의 또 다른 한일전, 덴소컵에 대해 알아보자.

<ABOUT 덴소컵> 

‘덴소컵(Denso Cup)’의 정식 명칭은 ‘덴소컵 한·일대학축구정기전’이다. 일본의 자동차 부품 회사 덴소가 후원, 한국대학축구연맹(KUFC)이 주최하는 대회는 한국과 일본 각 국의 대학 선수 선발팀이 참가한다. 한국에서는 매년 춘계대학축구연맹전에서 우수한 활약을 보인 선수들이 덴소컵에 출전하는 대학선발팀에 선발되고 있다. 친선전의 성격이 강하지만, ‘한일전’ 특유의 상징적인 의미가 더해져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들이 치열하게 승부를 가른다.

덴소컵의 ‘역사는 흐른다’

덴소컵은 지난 47년의 역사 동안 총 3번 이름을 바꿨다. 덴소컵은 1972년 ‘한일대학축구정기전’이라는 명칭에서 출발했다. 한·일 대학축구의 교류를 목적으로 시작된 대회는 1991년을 끝으로 잠정 중단됐으나, 일본 대학생 축구대회인 ‘덴소 챌린지컵’을 개최하던 일본 자동차 부품 회사 ‘덴소’의 후원으로 1997년 재개됐다. 원래 일본 대학 출전 선수를 지역별로 나눠 겨루게 하는 대회였으나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며 ‘덴소컵 한일 대학 대항전’이 새롭게 조직됐다. 1997년 4월 13일 ‘2002 월드컵 한일공동 주최기념 덴소컵 97’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덴소컵,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덴소컵 한일 대학 대항전’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일본에서만 진행됐다. 일본이 홈팀, 한국이 어웨이 팀의 형식이었다. 하지만 2004년 공식 명칭을 ‘덴소컵 한일대학축구정기전’으로 바꿨고, 그로부터 한일 양국이 번갈아가며 개최하는 형태로 매년 3, 4월 중 열리고 있다.

덴소컵 ‘인물 열전’

덴소컵은 한국과 일본 양국의 대학축구 친선전으로 대학 선수 가운데 우수한 활약을 보인 선수들이 선발된다. 올해로 16회를 맞은 대회는 신인들의 등용문으로도 자리 잡았다. 1998년 대회에는 2002 월드컵 신화의 주역 김남일(한양대, 전남드래곤즈 코치) 코치가 덴소컵을 통해 기대주로 자리매김했고, 2002년 대회에는 지난 3월 22일 대표팀 은퇴식을 가진 ‘뼈정우’ 김정우(체교01, 대건고) 감독이 등장했다. 3월 26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짜릿한 선방을 선보인 조현우(선문대, 대구 FC) 역시 덴소컵을 거쳤다. 이외에도 무수한 선수들이 덴소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K리그, J리그 스카우터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프로에 진출했다.

이번 2019 덴소컵에서 10번을 달고 맹활약한 고려대의 김호

고려대 역시 핵심 선수를 다수 배출했다. 대표팀의 든든한 허리로 자리 잡은 핵심 플레이메이커 이재성(체교11, 홀슈타인 킬)은 2013년 제10회 일본과의 원정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뒀다. 2015년 대회에서는 김건희(체교14, 상주상무)가 1골1도움으로 2-1 승리를 이끌었다. 송범근(체교16, 전북현대)은 2017년 제14회 대회에서 120분간 선방을 펼치며 역전승에 기여한 바 있다. 이번 제16회 대회에서는 미드필더 김호가 등번호 10번을 달고 선발 출장했으며 골키퍼 민성준은 12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덴소컵 이모저모>

원정팀이 불리하다? 21세기 들어 계속된 홈팀 불패

2004년부터 2019년까지, 윤번제 정기전으로 치러진 지난 16차 대회동안 홈팀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2019년 기준 한국은 16전 7승 2무 7패를 기록하고 있고,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양 팀 모두 홈 그라운드에서 승점을 올린 것이 흥미롭다.

일본 가와사키 토도로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 덴소컵. 당시 한국 선발대표팀은 김민재, 한승규 (이상 연세대15, 전북현대) 조유민(중앙대15, 수원fc) 등 황금세대가 총출동 하여 좋은 경기를 펼치고도 마지막 5분동안 2골을 실점하며 원정 징크스를 깨지 못했다.

올해 대회만의 특이점도 있었다. 여태껏 한국을 홈 팀으로 할 때 수도권에서 펼쳐진 지난 경기와 달리, 이번 경기는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열렸다. 통영시가 6년 연속 춘계대학축구연맹전 개최지로 선정되고 대학축구의 중심지로 안착하며 나타난 변화다. 쌀쌀했던 날씨에도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뜨거운 응원을 보여준 통영시민들의 관심도 ‘새로운 바람’에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형식적인 대회에 불과하다? 한일전 특성 그대로, 때로는 화합의 장으로도

‘한일전’은 역사적, 국민적 정서상 특유의 압박감을 피하기 어렵다. 덴소컵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대표로 출전하는 선수들은 '일본 팀에 질 수 없다'라는 각오를 보이며 필사적인 경기를 펼치며, 일본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양국 대학축구 교류를 최우선 목표로 하고 있지만, 한일 외교 상황에 대회 개최여부 자체가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다. 2005년 ‘다케시마의 날’ 관련 독도 문제로 인한 양국 갈등이 정점으로 치달았고 본래 3월 개최 예정이었던 대회가 무기한 연기된 것이다. 대회가 취소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으나,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는 덴소컵에 대한 개최 의지를 한국대학축구연맹이 피력하며 2005년 12월 4일 가까스로 개최됐다.

2011년 또 한 차례 위기가 있었다. 대회를 얼마 앞두지 않은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며 일본팀의 참여 여부가 불투명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참가하겠다.’는 일본 측의 적극적 참가 의사가 돋보였다. 2011년 3월 27일, 일본 선수들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일본 지진 피해 복구를 위한 성금 전달식이 진행되며 눈길을 모았다. 당시 일본 대학 선발 나카노 유지 감독은 ‘한국이 보내준 많은 도움과 온정의 손길에 대해 일본인을 대표해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많은 우여곡절에도 덴소컵은 형식적인 친선대회가 아닌, 한일 양국 축구의 미래들이 기술적, 정서적 교류를 하는 장으로서 그 역할을 다 해왔다. 뜨거운 전쟁이기도 하면서, 화합의 축제이기도 한 덴소컵. 이 무대를 통해 앞으로도 양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춘들이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