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문장원 기자

                                                                         새로운 매듭을 만들기 위해

"각하깨(께)선 국부이십니다. 곳(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드립니다. 소자의 안픈(아픈) 곳을 고처(고쳐) 주십시요.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
  지난 13일은 전태일 열사의 46주기였다. 한 동안 이 나라 사람들은 전태일과 달리 아픈 곳을 알리지 못한 채 끙끙 앓아 왔다. 환부를 알 수 없는 통증과 그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를 다스릴 길이 없어 엉뚱한 사람들을 혐오해 온 세월이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 분노가 오직 한 사람을 겨냥하고 있다. 살면서 직접 눈으로 본 것 중 가장 많은 인파가 청와대 앞에 모이고 있다. 전태일의 분신 이후, 분노한 노동자와 학생들, 종교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을 때 꼭 이랬을까. 언론마저 그 모습을 퍼나르기 시작하자, 지금 표적이 된 자의 아비이자 저 편지의 수신인이었던 박정희는 생전 입에 담지 않던 “노동 환경과 복지 향상의 문제”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대통령이 된 직후 노동 환경 개선이 아니라 계엄을 선언했다.
  그 딸의 연기력은 제 아비와 비교했을 때 더 나은지 어떤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저 자를 바로 지금 끌어내려야 한다. 도무지 예측하기 어려운 자이지만, 끝내 저 자리에 입을 앙다물고 앉아 있게 된다면 이후 보여줄 행보가 제 아비보다 나을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좋겠다. “아프다”라고, 정확히 말하면 “너 때문에 아프다”라고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소리 질렀으면 좋겠다. 어떤 이들은 ‘평화’를 예찬하지만, 그것은 아직 ‘진압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 그리고 요즘처럼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일 때 가능한 것이다. 경찰이 다시 한 번 농민의 머리를 내리쳐 피 흘리게 한 것이 불과 며칠 전 일이다. 멀리 2008년의 강경 진압을 떠올릴 것 없이, 세월호 1주기 집회와 작년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보인 행태도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끈질기게 모이길 바란다. 다행히 우리는 몸에 불을 붙일 필요가 없다. 이미 수백만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기 서 있을 것이다.
  박근혜를 출발점으로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는 아직도 그 매듭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그 엉킨 실타래를 손으로 풀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 새로운 매듭을 만들기 위해, 지금은 우선 그 실타래를 한 번 잘라야 할 때이다. 그리고 그때에야 전태일이 ‘못 다 굴린 덩이’가, 비로소 한 번 크게 구를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0 05:5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