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종
본교 일반대학원 사회학과 석사과정

                                                             <대학원신문>에 건네는 몇 가지 식상한 독평

  세월의 흐름이 아주 거세졌다. 글을 써 놓으면 그것이 금세 낡아 보이게 되어버리고 만다. 11월 5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도심집회와 故 백남기 농민의 민주사회장이 있었고, 12일과 19일에는 그 뒤를 이은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가 있었다. 연이은 보도와 폭로가 정권을 무너뜨리고도 남을 만큼 지면과 전파를 탔지만 여전히 한 치 앞의 일조차 분간키 어렵다. 한편 9일에 있었던 미합중국 차기 대통령직 선거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미국 주도 헤게모니 질서에 가해질 불확실성, 젠더·인종·이민 등 소수자 문제의 퇴행, 오바마케어로 대표되는 사회경제적 안전망의 철회 등 우려할 사항이 많다. 모든 것이 흐릿한 시기지만, 그만큼 분명하게 우리가 발 딛고 선 정치적 현실에 대한 무거운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시기다.
  이러한 때에 <대학원신문>을 펼쳐 본다. <대학원신문>은 대학원생을 주요 독자로 삼는 월간지다. 월간이라는 발간 주기는 학업과 편집을 병행해야 하는 기자들을 충분히 고생시키면서도, 요즈음처럼 시시각각 변화하는 사건의 흐름을 시의성 있게 담아내기에는 제약으로 작용한다. 이와 더불어, 읽히지 않거나, 읽히더라도 반향이 없는 것, 그리고 요사이의 경우처럼 널리 알려진 사안을 다루면서는 기성 언론과 어떤 면에서 차이를 둘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등의 문제는 모든 학내 언론의 고민일 것이다.
  <대학원신문>은 주제 면에서 크게 묶어 ‘국내 이슈’, ‘대학원생 및 시간강사 문제’, 그리고 ‘학술 관련 분야’의 구성을 유지해 왔다. <대학원신문>으로서 다룰 수 있고 다루어야 하는 문제들이다, 한편 들어봤음직한 평가를 부르는 구성이기도 하다. 고착화된 채 반복되는 지면 구성을 다변화하고,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확대하고, 학술 분야 지면에서 인문사회계열을 넘어선 다양한 전공을 아우를 필요가 있다는 점은 기자들도 익히 체감하고 있는 사항일 것이다. 다만 다양한 전공을 아우르는 일은 때로 기자들의 이해를 넘어서기도 하며 들인 노력에 비해 광범위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쉽지 않다. 원우들의 기고와 투고를 받는 일은 언제나 바라는 바이나 언제나 드물다. 일차적으로 ‘대학원생’이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꼭지를 재편하는 일 이전에 이미 구성된 지면을 채우는 일부터 어려우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제216호 1면 기획기사는 백남기 농민 사건을 시계열적으로 정리하였다. 제215호에서는 사드 배치 논란을, 제214호에서는 이화여대 투쟁을 유사한 방법으로 다루었다.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사실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것은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허나 <대학원신문>은 사실관계 자체의 정리보다는 심층적인 쟁점화를 추구하였으면 한다. 발간 주기의 한계 상 어떤 사태에 개입하기보다는 사후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면, 취재력을 갖춘 기성 언론이 비교우위를 가진 시계열적 정리보다는, 개념의 측면에서 상위의 범주로 올라가는 쟁점화가 효과적이리라 본다. 가령 백남기 농민 사건에서는 공권력의 행사에 관한 제도적·학술적 쟁점을 치밀하게 정리하는 데 집중하고, 사드 배치의 국제관계학적 함의에 초점을 맞추고, 이화여대 투쟁 사건의 경우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는 측면 자체만을 언급하기보다는 그 논쟁의 구체적인 양상을 밝혀 서술하는 것이 어떨까. 그것이 <대학원신문>으로서의 고유한 성격과 장점을 보다 잘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다.
  대학원은 학술연구의 ‘공동체’라 운위되고는 하지만, 학부보다도 탈정치화와 원자화가 더욱 심화한 공간이다. 같은 캠퍼스에 몸담고 있지만 다른 학과 대학원생들의, 심지어 동일 학과 내 다른 세부전공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는 거의 없다. 변화무쌍한 세상사를 아우르는 토론과 논쟁이 학교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세미나 강의실과 학회 회의장의 문턱 너머로까지 잘 들리지 않는다. <대학원신문>은 그 목소리들을 활자화해 생명력을 부여하고 쟁점에 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이다. 지난 몇 달 간 세상이 몇 번은 뒤집어진 듯싶다. 길을 잃기 쉬운 나날이다. <대학원신문>은 공동체에서 함께 고민할 만한 쟁점들을 발굴하고, 그에 관련된 논리적 시각을 제공하는 데 가일층 힘써 주기를 바란다. 흐르는 모든 물길을 붙잡기는 불가능하고, 특히나 그 흐름이 거센 지금은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학부 시절 어느 강의에서 듣고 종종 곱씹는 말씀을 빌자면 그 물길을 잠시 모아 커다란 저수지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여러 고충 속에서도 신문의 발간을 위해 힘쓰는 기자들의 건투를 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0 12:4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