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사회’에 대한 비판적 접근

  최근 들어 첨단 정보기술의 혁신은 관련된 산업분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담론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른바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언론에 등장한지 몇 해가 되었고, 인공지능은 ‘알파고’ 이후 현실적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올해 열린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중요 요소로 포함한 ‘제4차 산업혁명’을 다루고 나서는 이에 관련된 논의들도 확산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학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아직까지 심도 있는 학술적 연구가 많이 등장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몇몇 학술대회에서는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혹은 제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내걸거나, 이를 다룬 세션이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최근의 정보기술 혁신에 대한 비판적인 학술 논의를 찾아보기는 어려운 듯하다.
  이런 시점에서 󰡔문화과학󰡕 제87호(2016년 가을호)는 ‘데이터사회’ 특집으로 다섯 편의 논문을 싣고 있다. 󰡔문화과학󰡕 편집자들은 이번 특집이 “동시대 기술과잉의 현실을 방관해온 사회의 혹은 학계의 무기력증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5쪽). 그리고 데이터사회를 중심으로 기획된 이번 호의 목적은 “새로이 구성되는 데이터 기술의 내적 속성과 효과를 과대포장하지 않으면서, 후기 자본주의 권력이 구성하는 정보생체기계들의 구조적 다이어그램에 대항하려는 자율의 비판적 역능과 지혜를 찾는” 데에 있다고 한다(6쪽).

  데이터가 된 대중 의식과 감정의 흐름
  데이터사회 특집의 첫 번째 논문인 이광석의 ｢데이터사회의 형성과 대항장치의 기획｣은 총론 성격의 글이다. 이광석은 오늘날 데이터 생산의 특징으로 전통적으로 국가의 관리 대상이 되던 대국민 정보의 범위를 넘어선 대중 의식과 감정의 흐름이 데이터로 생산된다는 사실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데이터사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데이터가 현대 자본주의 가치생산의 중심 추동력이 되고 데이터 알고리즘(프로그램된 명령어)을 통해 통치와 자본의 다이어그램을 조절하는 신종 기술사회”가 바로 데이터사회이다(28쪽). 즉 겉보기에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이면에 자본주의적인 독점적 수취가 일어나는 인지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이광석에 따르면 오늘날을 데이터사회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이광석은 오늘날 인간이 직접적으로 데이터를 남기는 것은 물론 생체 데이터를 ‘매순간 자가 발산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의 육신조차 데이터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연 생성된’ 수많은 데이터들은 실시간으로 갈무리되고 배양되는데, 이러한 작용이 일어나는 곳을 ‘플랫폼’이라고 한다. 이러한 플랫폼이 작동하면서 수많은 데이터는 알고리즘 기계 안으로 끌려 들어가고, 이를 토대로 한 광고를 통해 기업의 수익이 창출된다. 플랫폼은 데이터를 이윤으로 만들기 위해 특정한 알고리즘을 가동시키는 것이다.
  이광석은 최근의 정보기술 혁신이 지닌 진정으로 두려운 측면이 “인간이 공통으로 만들어내는 사회적이고 공유 지식의 가치인 ‘일반지성’의 모든 동력을 사적 전유의 재원으로 포획하려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이라고 말한다(36쪽). 이러한 사회에서 인간 종은 ‘자본주의적 포획에 최적화된’ 구조에 걸맞게 진화하는 중이라고 한다. 이제 인간은 ‘포스트휴먼 데이터 주체’로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는 발화되지 않은 인간 신체의 생체리듬조차 데이터화된다. 이렇듯 데이터사회는 포스트휴먼 데이터 주체의 다양한 데이터들이 한데 모여 “사실과 의미의 과포화 상태를 만들어내는 후기자본주의의 한 국면”이라고 할 수 있다(39쪽).
  이러한 사회에서의 통치는 과거와 달리 데이터 알고리즘 권력장치의 ‘다이어그램’에 의존한다. 데이터사회에서 통치는 마치 자본의 알고리즘 장치처럼, 개인의 신체 정보를 포함한 다양한 데이터들을 가지고 있다가 특정 목적에 따라 이를 분석한다는 것이다. 또한 특정 표본만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 전체를 감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특징도 지닌다. 이러한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패턴을 읽어내고, 이에 근거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데이터시대 통치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광석은 데이터사회가 가져올 암울한 현재와 근미래에 대하여,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데이터사회의 대항 기획’을 제시한다. 그것은 첫째, 정부와 기업의 비정상적인 데이터 수집을 제한하고 수집된 데이터의 오남용을 막는 노력을 할 것, 둘째, 권력이 훔쳐간 데이터의 탈환과 공개를 통해 시민 데이터를 사회적으로 공유하려는 노력을 할 것, 셋째, 데이터 알고리즘 장치로부터 자율적인 데이터의 기억과 기록을 추리기 위해 노력할 것, 넷째, 자본에 의한 데이터 독과점을 차단하고 대중의 자율적 데이터를 사회화하는 정보 ‘공유지/재(the commons)’ 운동을 활성화 할 것, 다섯째, 공존·공동의 호혜적 가치를 보장하는 사회적 기술력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 등이다.

  자기-기록: 착취의 도구인가 해방의 기술인가
  김상민은 ｢나 자신의 데이터가 되다: 디지털 자기-기록 활동과 데이터 주체｣에서 ‘자기-기록(self-tracking)’ 개념을 통해 데이터와 생체기계의 결합 양상을 보여준다. 자기-기록이라는 활동은, “주로 디지털 웨어러블 기기를 사용하여 자기 신체에 대한 데이터의 기록을 행하는 일”을 의미한다(59쪽). 즉 스스로 자신에 대해 추적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자기-기록 활동은 건강의 유지 및 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디지털 자기-기록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과정이 자동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 사회학자 데보라 럽튼에 따르면, 자기-기록은 다섯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개인적, 떠밀린, 공동의, 강제된, 착취된 자기-기록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류가 시사하는 중요한 사실은, 자기-기록이 반드시 자의에 따른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과, 단일한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강제된 자기-기록과 착취된 자기-기록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며, 그러므로 자기-기록에 대한 일상적 관점을 깨트리는 것이다. 자기-기록의 강제적·착취적 측면을 고려한다면, 자기-기록은 순수하게 자발적인 동시에 완벽하게 타인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 될 수도 있다. 즉 자기-기록은 매우 호혜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고, 착취적인 방식으로도 사용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기록의 착취적 방식을 주목하면, 자기-기록 활동은 ‘무불/자유노동(free labor)’의 한 사례이기도 하다.
  데이터사회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의 데이터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데이터로 존재하는 주체, 즉 ‘데이터-주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데이터-주체가 데이터 자체의 대체물 혹은 보조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본주의적 데이터사회에서 강제당하고 착취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칫 인간이 ‘데이터 산출기계’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기록과 소통이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해방의 기술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김상민의 주장이다.

  플랫폼의 두 가지 측면과 불안정노동
  김동원의 ｢플랫폼 담론과 플랫폼 자본: 삶정치 노동의 확장｣은 플랫폼에 기반을 두고 형성된 담론과 자본, 노동 문제를 다루고 있다. 김동원은 우버, 에어비앤비, 허핑턴포스트 등의 예로 드러나는 ‘플랫폼 경제’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전제한다. 기존의 산업노동과 다른 방식의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김동원은 주로 자율주의 논의에 기반을 두고, 플랫폼 경제는 실물경제에 물질적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헤게모니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과 차별성을 부각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플랫폼 경제는 ‘담론으로서의 플랫폼’과 ‘자본으로서의 플랫폼’으로 나누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플랫폼’이라는 용어 모호한 특성은, 그 기표의 미끌어짐을 통해 담론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이유에서 플랫폼은 그 명칭만으로도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양산한다. ‘개방, 중립, 평등, 진보’의 함의를 갖는 것이다. 결국 담론으로서의 플랫폼은 자본주의적인 자본 순환을 은폐하는 데에 일조하며, 통제와 차별을 은폐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한편, 자본으로서의 플랫폼은 공급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래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특징적인 것은 이용자/소비자들을 시공간적으로 결집시키고 매개하여, 이용자/소비자 및 공급자에 대한 통제를 통해 이윤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플랫폼은 이데올로기적 효과와 커뮤니케이션 매개적 착취를 동시에 발생시키는 장치가 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 경제는 하나의 새로운 노동 과정이자 자본의 통제이기도 하다. 플랫폼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데이터 큐레이터, 알고리즘 개발자, 어뷰징 기사 작성 노동자 등은 플랫폼 경제가 확장시키는 새로운 노동계급의 사례들이다. 이들의 구체적인 처지는 다르지만, 대체로 유연화되고 불완전한 고용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는 이 직업을 가진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김동원은 이러한 불안정성은 새로운 자본축적 체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처한 자본이 시도하는 계급구성의 전략”으로, 일종의 ‘시초축적’이라고 주장한다(96쪽). 이러한 플랫폼 경제에서 공통적인 것을 찾기 위해서는 알고리즘과 데이터의 중립성을 넘어서야 한다. 또한 플랫폼 자본에 맞서기 위해서 노동의 범주는 오히려 더 확장·갱신되어야 한다.

  데이터사회의 물신주의와 권력
  김성일은 ｢산업사회와 데이터사회에서 작동하는 물신주의｣에서 물신주의의 문제를 데이터사회에 대한 비판과 연관 짓는다. 물신주의는 이데올로기와 구별되는 것인데, 이데올로기 개념은 주로 허위의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물신주의는 외양을 실재로 오인하는 구조적 과정에 대한 통찰”이기 때문이다(100쪽). 이는 물론 마르크스의 작업과도 연관되며, 이후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들, 그리고 부르디외나 푸코의 작업과도 연관된다. 그는 이러한 물신주의 개념이 디지털사회에 대한 분석에서도 유효성을 지닌다고 보면서 이를 적용한다.
  김성일은 물신주의가 다양한 형태로 늘 실재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개념을 확장시킨다. 21세기 데이터사회에서는, 상품과 기호에 대한 물신주의가 두드러진 특징이었던 19세기 및 20세기와 달리, 정보와 데이터에 대한 물신주의가 새롭게 대두된다는 것이다. 그는 데이터사회에서 물신주의는 자본주의적 표상 체계와 주체구성, 육체의 문제와 결부되어 확대되고 재생산된다고 주장한다. 표상의 측면에서는 테크놀로지가 전면에 부각됨에 따라 기술 자체가 메시지가 되고 이미지 데이터가 되는 새로운 물신주의의 표상 질서가 만들어진다. 주체구성의 측면에서는 사이보그 장치가 새로운 포스트휴먼 주체의 치장을 제시함으로써 소비 능력과 계급 차이를 나누게 된다. 육체의 측면에서는 가상 육체와 헬스케어를 통해 신체의 미래를 구상하려 한다. 결과적으로 “데이터 물신주의는 데이터사회의 지배권력이 자신의 열망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우선적으로 취해진다”(120쪽). 따라서 오늘날 필요한 작업은 데이터사회의 권력 분파들에 대한 치밀한 분석이다.

  ‘디지털 인문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이번호 󰡔문화과학󰡕 특집의 마지막 글인 임태훈의 ｢협력과 공생을 위한 디지털 인문학｣은, 디지털 담론이 대학교육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다루고 있다. 임태훈은 상투어가 되어버린 ‘인문학’과 ‘디지털’이 대학에도 영향을 미쳤음을 지적한다. 그는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관련 사업을 보면, “디지털 인문학이란 어디까지나 써먹을 수 있는 콘텐츠 인문학”을 뜻하는 것이었다고 비판한다(124쪽). 문제는, 대학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는 다른 의미에서 인문학의 갱신과 확장을 이끌 디지털 인문학의 출현이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정부가 주도하는 프라임 사업이나 코어 사업은 인문학의 지위를 더욱 추락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임태훈은 이러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인문학의 미래는 대학을 변혁하는 일과 별개일 수 없다”는 점에서(129쪽), 인문학이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를 꿈꾸게 해야 한다고 본다. 디지털 인문학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맹신하고 시장의 요구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그 한계를 넘어서는 문명사적 전개를 구상하는 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임태훈의 주장이다.

  󰡔문화과학󰡕의 데이터사회 특집에서 다루어진 개념들 상당수는 학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 이 개념들이 다루어지는 방식은, 대중과 재정지원 기관의 관심에 부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기도 한다. 학술적 연구에 일종의 유행이라고 할 만한 시기적 경향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학술 연구에서 특정한 개념을 맥락에 대한 진지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문화과학󰡕의 데이터사회 특집은 바로 이 시점에서 적실한 것이었다 하겠다.

■ 곽태진 기자 karajan86@naver.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6 04: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