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기획>
미국 사립대학 노조 결성 합법 판결


미국 사립대에서 수업조교나 연구조교로 근무하고 있는 대학원생들도 노조 결성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결정이 나왔다.

노사분쟁 조정 등과 관련해 준사법적 권한을 갖고 있는 미 노동관계위원회는 지난 달 23일 컬럼비아대 대학원생들이 노조를 만들기 위해 낸 청원에 대해, 노동관계위원 총 4명 중 3명의 찬성과 1명의 반대로 이렇게 확정했다고 <뉴욕 타임스> 등이 전했다. 노동관계위는 미국 노사관계법에는 이들의 권리보장을 가로막는 뚜렷한 조항도 없다면서 “대학원생들이 대학이 감독하는 일을 수행하고 보상을 받는다면 노동자로 간주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노동관계위는 ‘(노조가) 학문의 자유나 교직원-학생 관계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관찰할 수 없다’는 연구결과를 인용했다.
노동관계위의 이번 결정은 지난 2004년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당시 브라운대 대학원생들이 제기한 같은 내용의 청원에 대해 노동관계위는 “조교들은 학생이며, 따라서 대학과의 관계는 일차적으로 경제적인 것이 아닌 교육적인 것이다. 대학원생들은 피고용자로 간주될 수 없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번 청원을 조직한 컬럼비아대 대학원생 가운데 한명인 폴 케이츠는 “우리가 근본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점점 기업화되고 위계화되고 있는 대학 내에서의 권력과 민주주의 문제”라고 밝혔다.

조교에 대한 처우가 열악한 한국과 달리 해외 선진국에서는 조교를 하나의 직업으로 보고 정당한 보수와 적절한 근무시간을 보장한다. 또 많은 해외 대학들이 조교에게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대신 수업 및 교육과 관련, 상당한 권한을 부여한다. 미국 내에서도 조교 혜택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뉴욕대의 경우 조교에게 학비 감면과 함께 평균 1만5000달러(약 1600만원)의 연봉을 지급한다. 또 연간 1200달러(약 130만원) 수준인 의료보험비의 절반가량을 학교가 지원한다. 미국 대학 조교들의 근무시간은 주당 15시간 수준이다. 일본 대학들은 대학 조교를 사무직·연구직·교육조교로 나눈다. 일본은 사무직 조교에게도 석사학위 수준의 학력을 요구하지만 조교수에 약간 못 미치는 고정급여를 지급하고 도서 구입비·공무원주택 입주권·해외연수 기회 등의 높은 복지혜택을 준다.

노동법상 직원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직원이 아닌 경우, 즉 독립적 계약자인 경우에는 노동법상 여러 가지 중요한 권리가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권리 중 가장 핵심적인 권리는 단체교섭권이다. 조교들이 단체교섭권을 가지게 되면, 노조를 구성하여 학교 측과 여러 가지 고용 조건(급여, 근로시간, 의료보험 등)에 대해서 협상할 수가 있게 된다.

조교 노조 결성의 이번 합법 판결에 대해 몇몇 미국 대학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교-학교간 노동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경우, 조교들이 단체로 파업을 할 수도 있고, 이는 학교 전체 일정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재정이 좋지 않은 사립학교에는 과도한 인건비 지출이 재정부담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장학금을 축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러트거스대학의 파울라 B. 부스 교수는 “대학원생 노조가 결성돼 있는 4개 국립대학과 그렇지 않은 4개 국립대학을 비교 연구한 결과 노조를 두고 있는 대학의 조교와 지도교수의 관계가 더 좋았다”면서 “대학원생 노조 설립이 학문의 자유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관찰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 사립대학에서 조교를 겸직하는 대학원생들의 고용안정이 보다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많은 학생들이 장학금이나 보조금을 받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거나, 혹은 충분하더라도 격무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럴 경우 앞으로는 노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신지현 기자 jhlily0408@naver.com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8 16:0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