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대 고대원총 이음지기 글·김채영 그림,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북에디션, 2016.

‘변화’에 대한 관심과 지지의 확인


  우리는 대학원 생활에 대해 묻는 사람들의 질문 앞에 난감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 앞에 무력하다. 대한민국 학문 공동체의 이상한 구조는 그 동안 대학원생들끼리의 자조적인 농담의 소재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곳의 부당한 현실을 드러내고, 나아가 그 현실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시도는 생각보다 많은 관심과 지지를 얻었는데, 이는 그 동안 대학원 사회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은폐된 채로 작동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학원 사회의 가림막을 걷어내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이들은 이제 어떤 ‘변화’를 모색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의 스토리 작가인 염동규 고대원총 학술국장, 그림 작가인 김채영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일정상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Q. 우선 이 책의 발간 경위를 여쭙고 싶습니다.
(염) 출판 논의가 시작된 것은 연재가 아직 걸음마 단계였던 작년 겨울쯤부터였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은 그리 많이 알려진 웹툰이 아니었는데, 애초에 웹툰을 만들게 된 취지가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고등교육정책입법을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었기 때문에 보다 넓은 범위의 독자를 상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출판사들을 물색하기 시작했는데, 운이 좋게도 이때쯤 한겨레신문에서 저희 웹툰을 다루면서 인지도가 조금 상승하는 성과가 있었습니다. ‘북에디션’ 출판사가 먼저 출간을 제의한 것에도 이 기사가 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됩니다. 계약 시기는 3월 중순이었고, 책의 홍보와 제작비 충당을 위해 포털 사이트 다음에서 스토리펀딩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Q. 스토리 구성의 경우, 모집된 사연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라 밝히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한 화의 이야기가 완성되었는지요?
(염) 사연을 받으면, 우선 이 사연을 웹툰으로 만들어도 좋을지에 대해 먼저 판단합니다. 구체적인 맥락이 잘 드러나지 않거나 이전에 연재된 내용과 겹치는 경우에는 일단 배제합니다. 웹툰으로 만들 사연이 선정되면, 제가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소설’의 형식에 가깝게 스토리를 작성합니다. ‘제보 내용을 바탕으로 한 허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여기에서 ‘허구’란, 사연에 적혀 있지 않지만 제보자가 느꼈을 내면의 감정들을 제가 덧붙인 것임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신변 보호를 위해 제보자의 성별, 학교, 학과를 바꾼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단, 제보자가 겪은 부당한 사건의 사실 관계는 훼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스토리가 만들어지면 김채영 작가님께서 콘티를 만드시고, 이를 제보자 분께 보여드린 뒤 피드백을 받습니다. 이후 피드백을 반영하여 김채영 작가님께서 채색까지 마치고 나면, 최종적으로 전체적인 연출에 대해 검토하여 한 편의 웹툰을 완성했습니다.

Q. 작화에서 특히 신경쓰신 부분, 그리고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어떤 것일까요?
(김) 우선 다른 사람이 쓴 시나리오를 받아 작업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 시나리오를 ‘어떻게 만화로 바꾸어야 하는지’를 가장 많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소설의 삽화 같은 연출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문하기도 했는데, 시나리오를 가급적 훼손하지 않으려 하다보니 그런 연출이 나온 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원생이 아니라 시나리오의 구체적인 부분을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멋대로 각색을 할 경우 시나리오가 전하는 분위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전에 혼자 하던 작업과는 조금 다른 스타일의 만화가 나온 것 같습니다. 한편 상황이 나래이션으로 묘사되는 부분이 많아 인물의 표정을 표현하는데 집중하기도 했습니다. 또 매 화가 서로 다른 제보자의 사연이기 때문에 최대한 각각의 마무리를 잘 지어보려고 구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외에도 등장 인물의 성별이나 연령대, 외형을 설정하는 데 의외로 많은 시간을 고민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특히 시나리오에 명시되어 있지 않는 이상 주인공들의 성비를 최대한 비슷하게 유지하려고 했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Q. 스토리 작가님이나 이전 원총 회장님은 예전 인터뷰에서 이 기획은 〈대학원생권리장전〉의 수립을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것이라 밝히시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학원생권리장전〉 관련 작업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염) 〈대학원생권리장전〉은 여러분들께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현재 수정 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서 학교 측 인권센터 담당자와 함께 권리장전 문구의 공식적 확립을 위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다만 최근 〈대학원생권리장전〉 수립 여부가 대학원 평가 기준에서 빠져서 향후 진행 상황에 우려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 논의 중입니다.

Q. 두 번째 시즌 준비 상황과, 새롭게 변화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지 궁금합니다.
(염) 현재 두 번째 시즌은 첫 화의 스토리 원고가 완성되어 콘티를 받아둔 상태입니다. 가장 큰 변화는 대학원생의 일상적인 힘겨움에 대한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일 것입니다. 이전 시즌의 내용이 주로 ‘폭로’에 치중하고 있었던 탓에, 대학원생이라는 존재에 대한 대화보다는 대학의 비리 일반에 대해 말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교육’이라는 기능을 거의 상실한 듯 보이는 현재의 대학원 제도에서 직접적인 가해자가 없더라도 여전히 대학원생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 현실을 말할 수 있는 웹툰이 되었으면 합니다.
  다만 앞으로도 ‘폭로’형 웹툰을 포기할 생각은 없습니다. 부당한 현실을 드러내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폭로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폭로가 필요하다는 것.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두 가지 축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일단 두 번째 시즌의 목표입니다.
(김) 아쉽게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음 시즌에는 함께 할 수 없게 되었고, 다른 작가님께서 작화를 맡게 되셨습니다. 여전히 많은 관심 보내주시면 좋겠어요.  
    
Q. 기획 단계에서도 이 정도의 관심과 지지를 예상하셨는지? 또 연재 과정에서 그 관심과 지지를 확인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실제로 연구 공동체의 ‘잘못된 권력관계’에 어떤 균열을 낸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성과와 한계에 대한 자평을 부탁드립니다.    
(염) 사실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매 화 연재될 때마다 밝힌 것처럼 서강대, 서울과학기술대, 중앙대, 한양대 원총에서 많은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또한 대학원생들도 사연을 제보하는 것은 물론, 스토리펀딩 등에서 약소하나마 후원금을 보냈다고 알리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여러 도움 덕분에 고대원총에서 비용 관련 부담을 덜 수 있었습니다. 김채영 작가님이 워낙 연출력이 좋으셨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면에서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대충 추산해본 결과, 누적 조회수는 최소 100만에 달합니다. 놀라운 것은 원총 홈페이지의 조회수보다 독자들이 자발적으로 퍼나른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의 조회수가 훨씬 높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이 과정에서 좀 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저 역시 좀 더 다양한 매체에 이 웹툰을 업로드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 ‘잘못된 권력관계’에는 아무러한 균열도 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으니까요.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 웹툰은 아무것도 바꾼 것이 없다고 해야겠지요. 그렇지만 대학원생들에게 약간의 위로와 희망을 주었다는 생각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도 연구실에서 살인적인 업무량을 감당하거나, 여러 부당한 관행에 시달리고 계시는 많은 분들께서 자기 이야기를 토로할 수 있는 작은 창구나마 만들 수 있었다는 데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웹툰이 인기를 얻어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마음 한 구석에 조금이라도 생겼을지 모르겠습니다. 성과가 있었다면, 그 정도일 겁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의 주요 독자인 대학원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염)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이 거둔 성공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바꾸기엔 아직도 머나먼 길들이 남아 있습니다. 결국 현실을 바꾸려면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만, 모두가 힘든 세상에서, 도움을 요청드리기가 송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바뀔 수 없다’고, 냉소만 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희망을 가지고 정진하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올 것입니다. 저희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희망을 가져주십시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뿐입니다.

■ 인터뷰·정리: 문장원 기자 creep0927@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8 11:3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