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보다 가혹한 한국사회

올여름의 무더위는 유난스러웠던 것 같다. 냉방이 되지 않는 곳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렀고, 바깥의 공기는 숨이 막힐 것 같은 괴로움을 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가을 날씨’라고 해도 될 법한 선선한 날씨가 거짓말처럼 찾아왔다. 그러나 올여름의 무더위만큼이나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숨 막히게 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아직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17일, ‘4·16세월호 가족협의회’(가족협의회)의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단식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24일에는 다른 가족들도 단식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 가족협의회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야당의 적극적인 활동을 요구하며 더불어민주당사 점거에 돌입했고, 본지 신문 기사 마감을 얼마 남기지 않은 현재에도 단식점거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백남기 농민 대책위원회’(대책위원회)도 가족협의회와 함께 당사를 점거하고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민중총궐기’ 당시 집회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아직까지 위중한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다.
세월호 참사의 가장 큰 책임, 그리고 백남기 농민을 위중하게 만든 경찰폭력의 가장 큰 책임은 물론 현 정부와 보수 여당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협의회와 대책위원회가 야당 당사를 점거한 데에서도 드러나듯이, 여소야대 상황 속에서도 야당은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려한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적 상황은 단식과 점거라는 행위를 통해서 겨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아도 모자랄 사람들이, 단식을 하고 점거를 해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는 한국사회인 것이다. 바로 이런 한국사회의 모습은 올여름 무더위만큼이나 나를 갑갑하게 한다. 아니 어쩌면 무더위보다 가혹한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물러가리라는, 언젠가는 달라지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대’의 가능성을 믿는다. 그리고 연대란 소위 ‘외부세력’이 되는 것과 ‘외부세력’이 다가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연대야말로 폭염보다 가혹한 한국사회에 선선한 바람을 가져다줄 것이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20:2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