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의 사회

최영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얼마 전 신촌의 한 시집 전문 서점에서 세 명의 젊은 시인들이 독자를 만나는 낭독회가 열렸다. 아직 첫 시집이 나오지 않은, 그래서 자신의 작품을 보여줄 기회가 적었던 이들을 위한 자리였다. 등단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인들이기에 과연 널찍한 공간을 채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으나, 막상 시간이 되자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들의 낭독에 귀를 기울였다.  

시(詩)가 다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시를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싶겠지만, 실제로 시집을 찾는 손길이 늘고 있다. 소설과 에세이류에 밀려났던 시집의 판매량은 꾸준히 성장해 올해만 해도 작년의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60% 이상 늘어난 모습을 보였다. 판매량의 증가는 기존 작가들에게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젊은 시인들의 경우에도 빠르게 중쇄가 결정되고, 일부는 몇 만부씩 팔려나가고 있다.

근래의 이러한 변화는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다. 시집 발행 종수가 늘어 2010년에 762종이었던 시집은 지난해 1600종을 넘어섰다. 문단은 독자들의 요구에 부응해 절판된 시집들을 복간했고, 국내의 평론가들과 시인을 모아 외국의 좋은 작품을 직접 번역해 선보였다. 한편에서는 여러 작가들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만남의 자리를 만들었고, SNS나 팟캐스트를 통한 홍보와 교류 또한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 눈에 들어온 성과는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가져온 열매들이다.

이러한 문단과 시인들의 노력이 독자들의 반응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시도가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은 여전히 문학을 찾고, 시를 통해 무언가를 얻고자 했던 독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학을, 그리고 시를 향한 독자들의 관심은 삶의 고달픔에 밀려있었을지언정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은 지금의 문제 앞에서 시집을 손에 쥐었다. 문학이 독자들을 향해 뻗은 손이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과연 좋은 작품이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답하기 어렵다. 젊은 시인들이 문학활동을 통하여 삶을 이어나갈 방도가 사실상 전무한 탓이다. 등단이라는 장벽을 넘어온 신진 작가들은 치열한 생활고를 마주하게 된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국가의 지원은 예산문제로 사라져버렸고, 문학상은 수십 편의 작품을 필요로 해 지원조차 불가하다. 이름 있는 출판사로 등단한 경우라도 훗날 시집 출간을 위한 계약 기회가 주어질 뿐, 금전적인 지원에 있어서는 처음에 주어지는 상금이 전부이다. 신문사의 신춘문예로 등단한 경우는 더 참담하다. 그래서 그들은 소위 ‘신춘고아’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통찰하는 시선의 참신함이 인정되거나, 문학의 저변 확대에 있어 필요성을 인정받은 새 얼굴이다. 그러나 먹고살 수 있는 길이 부재한 젊은 시인들의 현실에 관심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쥐어짜 만든 성과물을 무상으로 혹은 3만원에서 5만원 남짓의 고료를 받고서 잡지사나 출판사에 넘겨준다. 몇 주에서 몇 달을 노력해 얻은 창작이 이토록 헐값에 넘어가고 있지만, 존재를 알릴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들에게 잡지사의 청탁은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젊은 시인들은 이런 기회를 통해 독자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문단에서 호명되기 때문이다.    

먹고사는 일에 치어버린 젊은이들이 문학에 대한 열정을 얼마나 더 오래 품어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들을 놓치고 나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문학의 영토는 차갑게 얼어붙은 동토(凍土)일 것이다. 문학에 대한 관심과, 앞으로 태어날 작품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지금, 젊은 시인들을 위한 제도의 보완과 지원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간 우리의 눈 밖에 방치 된 현실에 관심 갖고, 그들의 목소리를 기꺼이 향유할 때, 우리의 문학은 분명 더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22: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