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5공 사전

-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2018 학술콜로키움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이하 만인만색)는 국정화교과서를 반대하는 과정에서 연대하기 시작한 젊은 역사학 연구자들의 모임이다. 국정화교과서 반대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만인만색>은 현재 역사팟캐스트, 시민강좌, 역사콘텐츠제작, 학술모임 등을 통해 활동범위를 점차 넓혀가고 있다. <만인만색>은 젊은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기성 역사학회의 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운 방식으로 한국사회에 전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작년에 이어 이번 여름 2회째 열린 학술콜로키움 <신비한 5공 사전>에서는 1980년대 5공화국 시기의 역사에 관한 다채로운 주제가 발표되었다. 기존 역사학계가 아직 1980년대를 본격적인 연구시기로 다루고 있지 않은 시점에서 젊은 현대사 연구자들의 최근 연구동향을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이번 호 본지에서는 해당 콜로키움에서 발표된 글들 중 세 가지를 뽑아 소개한다.

1980년대 서울시 주택공급 방식 변화와 계층갈등

  김재원의 발표문은 전두환 정권이 실시한 ‘유화적 조치’의 성격을 1980년대 도시개발정책을 통해 규명하고자 한다. 1970년대 후반으로 가면서 유신체제는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물가는 폭등하고 빈부격차는 악화되었다. 학생·재야 세력은 민주화를 요구했다. 10·26사건 이후 12·12군사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찬탈한 신군부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봉합할 필요가 있었다. 정당성을 갖지 못했던 신군부는 위기상황을 억압적인 조치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고 소위 ‘유화조치’를 통해 사회 안정을 꾀하고자 했다. ‘유화국면’의 조성을 통해 신군부는 권력집단과 중간계급 사이에 연합전선을 구축하고자 했던 것이다. ‘유화조치’에 대한 기존 연구는 대개 이와 같은 인식 아래 이루어졌다.

  김재원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유화조치’의 구체적인 효과를 도시개발정책의 전개 특히 주택소유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계층적 분열을 통해 분석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기존 연구와 차별성을 갖는다. 도시개발은 이미 박정희정권 시기부터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수단으로 주목되었다. 또한 대중의 주거문제 해결은 체제 안정과 직결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사회정책으로 다루어졌다. 신군부 역시 도시개발의 이와 같은 성격에 주목했다. 신군부는 도시개발을 통해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주택 소유를 확대하여 체제 안정을 달성하고자 했다. 즉 ‘유화국면’을 이끌어내려 한 것이다. 김재원은 이 점에 주목하여 주택 소유의 확대라는 ‘유화조치’가 누구를 대상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안에서 누가 배제되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1980년대 초반 당시 도시의 주거문제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박정희정권은 급격히 증가하는 도시의 인구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1970년대 ‘아파트 붐’ 속에서 주거안정성은 악화되어만 갔다. 그 결과 영세민의 92%가 무허가주택이면서 ‘불량’으로 분류된 불법주택에 거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자신들을 ‘중산층’이라 인식하는 계층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시의 주택보급률은 50% 언저리에 머물렀고 ‘중산층’ 역시 열악한 주거환경 속에서 주택소유를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중산층’의 주택소유 욕망과 계층 정체성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근대사회에서 중간계급은 체제 안정을 지탱하는 핵심계층이며 중간계급의 위기는 곧 사회 불안을 의미한다. 신군부 역시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고 ‘중산층’의 폭을 두텁게 확장하면서 유화국면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도시개발을 추진했다.

  전두환 정권의 도시개발정책은 크게 택지개발촉진법과 ‘공영’개발, 합동재개발로 설명된다. 택지개발촉진법이란 택지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된 토지의 사적재산권을 강력하게 제약하여 복잡한 법적절차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수단이었다. 이 법에 근거하여 국가는 보다 강력하게 도시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때 해당 지역의 개발을 정부가 직접 책임지고 시행한다는 점에서 이 방식을 ‘공영’개발이라 불렀다. 합동재개발 방식은 한 발 더 나아가 재개발에 민간건설업체를 포함시켰다. 정부가 재개발지구를 선정하되, 직접적인 재개발과정은 민간업체와 재개발주민조합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재개발의 부담을 줄이면서 민간자본을 적극 활용해 ‘시장논리’에 의한 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도시개발의 결과, 1980년대의 주택공급량은 1970년대와 비교하여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그러나 신군부의 도시개발은 기본적으로 사회 안정을 위해 ‘중산층’의 폭을 두텁게 확장하는 데 있었다. 도시개발의 수혜는 대부분 일정 학력을 가진 중간소득 이상의 계층에게 집중되었다. 반면 재개발지역의 세입자로 대표되는 대부분의 영세민들은 이 과정에서 배제되었다. 1980년대 폭발적으로 발생한 철거민투쟁은 도시개발의 수혜가 계층 간 차별적으로 배분되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김재원은 1980년대 도시개발 과정에서 확인된 계층 간에 발생한 차별적 수혜 배분 과정이야말로 전두환 정권이 추진한 ‘유화조치’의 의도와 효과가 무엇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 초 야간 통행금지 해제 직후의 풍속도

  정무용의 발표문은 야간통행금지의 해제 이후 나타난 일련의 사회현상을 재구성하여 1980년대 한국사회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역사서술 뿐만 아니라 각종 미디어에서 그리는 1980년대 한국사회는 ‘민주화운동’의 시대다. 신군부라는 정당하지 못한 권력의 억압적인 지배와 5·18광주항쟁 이후 지속적으로 그에 저항해 온 대항 세력의 대결 구도는 87년 이후를 사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1980년대의 이미지다. 물론 연구의 층위에서 기존의 ‘민주화운동’ 담론을 비판하면서 당시의 각종 반체제운동들, 즉 민중운동, 변혁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을 다시 분석하는 연구들도 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발표자는 이 연구들 역시 체제에 저항하는 운동 주체를 중심에 둔 역사서술이란 점에서 대중매체에서 신화화하고 있는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정무용은 1980년대를 사회사의 관점으로 다루고자 한다. 정치사의 측면에서 1980년대가 반체제 운동의 시대였다면 사회사의 측면에서 이 시기는 ‘쾌락의 시대’였다. 정치적으로는 어두운 시기였으나 유흥향락산업은 1980년대 급성장했고 이른바 ‘퇴폐업소’는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자 사회문제의 중심이었다. 유흥향락산업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야간통행금지(이하 통금)라는 ‘유화조치’가 있었다. 통금의 해제는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시간의 해방을 의미했고 일반 대중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기존 연구는 규율이 해제되어 유흥문화가 붐을 이룬 계기로 통금해제를 평가한다. 그러나 정무용은 통금해제 이후 강조된 ‘자율’은 문자 그대로의 자율이 아닌 또 다른 규율의 논리였다고 지적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한 풍속도를 통해 또 다른 규율의 질서를 분석한다.

  통금은 1945년 미군정 이래 1980년대 초까지 유지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야 야당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통금해제가 제안되었다. 이때 통금해제의 명분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최였다. 치안당국이 우려를 제기하긴 했으나 ‘유화조치’를 염두에 두고 있던 신군부는 통금해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통금은 1982년 1월 전면 해제되었다. 통금해제는 과거 무조건적인 ‘내핍’과 ‘절약’ 논리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통금해제는 밤 시간을 활동과 생산의 영역으로 포함시키고 ‘24시간 경제시대’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되었다. 공장은 24시간 가동이 가능한 체제로 근무시간을 조정했고 시장·유흥가·잡화상 역시 자정을 넘은 시간까지 영업시간을 확대했다. 통금해제는 1980년대에 열린 ‘쾌락의 시대’의 필요조건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통금해제 이후 주어진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통금해제 이후 방종과 절도, 폭력을 일삼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자율적인 시민의식을 확립한 건전한 국민들의 자유도 와해시킬 수 있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 안정과 국가안보태세 확립을 명분으로 경찰병력은 더욱 증대되었다. 이와 함께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책임 있는 행동을 할 것이 요구되었고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민주시민’이자 선진 조국을 창조하는 올림픽의 주최자로 선전되었다. 즉 통금 이후 주어진 자유는 치안권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되는 자기규율을 필요로 하는 자유였던 것이다. 일례로 치안당국과 언론은 학원자율화 조치 이후 거세진 대학생들의 시위를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 자율’이자 ‘방종’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정부의 바람과는 달리 대중에게 해방된 밤 시간은 자율적인 시민의식에 의해 유지되는 ‘명랑한’ 시간이 아니었다. 유흥과 향락산업, 퇴폐풍조가 점차 확산되었고 정부는 퇴폐풍조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각종 규제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각종 규제초지는 사회전반적인 퇴폐의 확산과 보급을 멈출 수 없었다. 게다가 정부 역시 근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방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무용의 분석에 따르면, 1980년대 통금 이후 형성된 새로운 규율의 질서란 유동적이다. 통금 이후 주어진 자유는 책임 있는 자기규율을 요구하는 것이었으나 이때의 규율은 이전처럼 작동하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경제논리에 종속되어갔다고 발표자는 지적한다.

전두환 정권기 한국 자본가의 對공산권 활동

   문민기는 자본가들의 對공산권 활동을 통해 전두환 정권 시기부터 발견되는 ‘탈냉전’의 양상을 분석하였다. ‘탈냉전’의 시점은 논자에 따라 다르나 대체로 1990년 전후한 독일 통일과 소련 해체를 기준으로 삼으며 한반도의 ‘탈냉전’ 또한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었다고 본다. 소련 붕괴 이후 노태우정부가 추진한 ‘북방외교’ 아래 한반도의 냉전체제가 해체되었다고 평가하는 것이다. 노태우정부의 ‘북방외교’ 수사와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7·7선언)은 이 시기 변화한 외교정책을 상징한다. 기존 연구들은 ‘북방정책’을 6월 항쟁 이후 분출된 통일논의의 연장선에서 분석했다. 민주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민족담론과 통일운동을 전개한 시민사회의 힘이 ‘북방정책’의 배경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표자는 이러한 시각이 한반도 ‘탈냉전’을 1980년대 후반에 묶어두고 국내요인만을 강조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문민기는 7·7선언, 북방정책, 소련 및 중국과의 수교 등의 결과보다 과정을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탈냉전’은 갑자기 도래한 것이 아니며 그 이전부터의 여러 변화와 흐름이 축적된 속에서 차츰 변해온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발표자는 1988년 이후의 변화는 공산권 국가들의 변화라는 국제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국내요인 뿐만 아니라 국외요인, 즉 공산권국가와 한국의 관계 변화를 강조한다. 이때 발표자가 주목한 것은 자본가들의 활동이다. 자본가들에게 국제환경 변화는 시장상황 변화와 동일한 것이었고 따라서 자본가들은 국외의 ‘탈냉전’의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준비하고 대응한 국내의 주요 행위주체였다. 이러한 관점 아래 문민기는 전경련을 중심으로 전두환 정권 시기 자본가들의 ‘탈냉전’ 인식과 대응을 분석한다.

  1980년대 신군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제한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자본가들은 1970년대 말부터 민간주도 경제와 개방을 적극적으로 정부에 요구했다. 1970년대 말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 한국경제의 체질개선은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고 있었기 때문에 신군부 역시 자본가들의 경제개혁 요구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기 중국은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의 지도 아래 시장경제적인 요소를 받아들이는 개혁을 감행하고 있었다. ‘사상해방’과 ‘실사구시’를 앞세운 중국은 외자도입을 적극추진하며 시장경제에 대한 문호를 열기 시작했다. 소련 역시 마찬가지로 1970년대부터 저성장이 계속되어 장기침체를 겪으면서 경제노선의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1875년 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고르바초프는 체제위기를 인정하고 글라스노스트(개방),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지시했으며 이는 곧 시장경제 요소의 도입과 개방을 의미했다.

  1980년대 펼쳐진 경제개혁과 개방화의 흐름 속에서 전경련은 중국과 소련, 공산권 국가의 변화에 촉각을 기울였다. 전경련은 산하기관을 통해 중국의 경제개혁 추이와 전망하는 연구를 이른 시기에 진행했다. 1983년 이후에는 일본, 홍콩을 중계로 한 중국과의 간접무역이 성립되기도 했다. 전경련은 톈진에서 열린 경제세미나에 참석을 요청 받았고 중국경제계 인사들도 방한해 전경련 회장단과 교류하는 등 한국자본가들은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과의 직접 교류에 나섰다. 소련·동구권과의 접촉 또한 확대되었다. 1980년대 초 소련은 한국섬유제품의 판매시장에서 자원공급국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으며 소련산 원목과 냉동어류가 한국에 수입되었다. 극동지역의 경제특구 설치는 경제교류를 확산시키는 계기였다. 소련의 변화는 공산권국가들의 태도 변화로 이어졌고 무역진흥공사, 무역사무소가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에 설치되었다.

  공산권국가들과의 경제교류 확대는 국제환경 변화뿐만 아니라 국내자본가들의 시장인식과 판단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1980년대 미국은 한국에 지속적으로 개방화 압력을 가해왔고 통상마찰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한 고율의 반덤핑 유해판정을 내리는 동시에 영화시장 개방, 지적소유권 보호를 강요했다. 한국 자본가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강압적인 개방 요구는 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때 공산권국가의 태도변화와 경제협력 확대는 새로운 시장개척으로 인식되었다. 1980년대 국제시장의 변화는 여전히 반공이 강조되고 있던 전두환 정권 시기에서도 자본가들이 적극적으로 공산권과의 경제협력을 추진한 이유였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문민기는 이미 이 시기에 ‘경제적 진영논리’는 적합한 용어가 아니게 되었으며 한반도의 ‘탈냉전’ 역시 자본의 논리 아래 물밑에서 앞서 추동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 이휘현 dlgnlgus@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