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진짜 그렇게 다른가요?
/어느 대학원생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과생답다’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 그러나 인생은 잘 모르는 일이라고 학부까지 이과계열을 전공하다가 지금은 살짝 진로를 바꿔 인문사회 계열 학과를 전공하고 있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친구가 되기 쉬운 탓인지 가장 친한 친구는 여전히 이공계를 전공하고 있고 우리는 둘 다 대학원에 진학했다.

  내 친구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부터 일상이 완전히 바뀌었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친구가 밥을 주고 키워야하는 세포와 동물들이 있어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실험은 또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저녁을 먹고 헤어지면 다시 실험 결과를 보러 연구실로 돌아가야 했다. 실험을 하고 데이터 분석을 하며 과제보고서도 써야했다. 연구실 내 실험 교육은 선배가 후배에게 해야 하는 일 중에 하나라고 했다. 본인의 논문은 그 와중에 틈틈이 쓰는 것이었다.

  그에 비하면 내가 하는 일들은 너무 쉬운 일들 같았다. 연차가 차면서 연구비를 관리하고 논문에 관련된 문헌들을 읽고 쓰고, 나는 실험시약이나 도구 관리도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실험안전 교육도 IRB도 듣는 것이 달랐다.

  그러나 일상의 변화는 비슷했다. 우선, 점차 친구들과 멀어졌다. 돈을 벌며 일하는 친구들 또한 시간적으로 바빠진 탓도 있지만 씀씀이가 부담되기 시작했다. 들려오는 결혼 소식은 기쁘게 축하할 일이지만 한번은 청첩장이 청구서처럼 보이기도 해 씁쓸했다. 친한 친구가 결혼할 때도 큰 선물을 따로 해주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쉬는 날도 잃었다. 쉬는 날이 생기면 고갈된 에너지를 채우느라 하루 종일 잠을 자거나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았고 쉬더라도 끝내지 못한 일들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아 결국 연구실에 나오거나 노트북을 들고 동네 카페에서 작업을 했다. 자연스럽게 마음의 여유가 사라졌다. 24시간 동안 언제 올지 모르는 메일과 SNS에 대기하면서 나를 위한 시간을 잃었다.

  친구와 내가 이러한 변화와 문제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긴 시간 대학원에서 생활을 보내면서 일상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했지만 서서히 우리를 갉아먹어 기운 없게 만든 변화에 대해서는 나누기 어려웠다.  

  이런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진짜 힘든 일일까? 선배들도 이 과정을 거쳤다는데. 선배들이 ‘참고 견디면’ 끝난대. 그래 졸업을 하면 끝나는 일이야. 더 힘내보자. 이런 말들을 반복했다. 서로를 다독이면서 지나친 스트레스로 연구실을 그만두었다거나 유학에서 돌아와 암에 걸렸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 그런 상황은 아니잖아. 우리는 그렇진 않을 거라고 이야기할 뿐이었다.

  왜 우리는 친구인데도 서로의 환경에 대해 솔직하게 터놓기 어려웠을까? 대학원의 학과마다, 또 연구실마다 평범함의 수준과 운영의 규칙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내가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데 투정 부리는 것처럼 보일까봐. 상황을 바꿀 수도 없는데 나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알리면 창피해질까봐. 친구와의 관계에서 서로 자존심을 세웠었다.

  또 두 다리만 건너면 같은 전공의 사람들을 모두 알게 된다는 말이 돌 정도로 졸업하면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이 될 인간관계에서 어느새 입을 다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자칫 내가 교수님에 대해 말한 사소한 불평이 다른 사람 입으로 교수님한테 들어간다면? 다른 학생들과의 관계가 나빠진다면? 하는 걱정은 항상 조심하는 습관으로 나타났다. 졸업한 후에도 교수님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 경력은 교수님 혹은 연구실의 이름이 브랜드처럼 태그된다. 취직할 자리에서는 교수님에게 학생평가를 묻는다. 인증된 학생들은 계속해서 생산되고 연결된다.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뛰어나지 않다면, 그렇게 학계에서 살아남는다. 그래서 공부 외에도 인간관계에서 항상 조심스럽다.  

  입학 당시 대학원에서의 학문은 하나씩 탑을 쌓듯 기반을 다져 한 층씩 다져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시간이 날 때 틈틈이 퍼즐처럼 맞추고 젠가처럼 있는 지식을 빼내서 무조건 위로 탑을 쌓아가는 아슬아슬하고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대학원에서 배운 학문 가치는 사회의 정의를 위한 학자로서의 사회적 의무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시작할 일은 우리의 환경에 대해 다양한 학과의 사람들이 모여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나열하고 비교하는 와중에 해결의 방법이 보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그 필요성을 설득하고 솔직해질 수 있는 용기를 내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