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의 보릿고개

어느 시간강사

  얼마 전 학술대회가 끝나고 또래의 연구자들과 모여 대화를 나눴다. 강의와 연구, 여타의 학회 활동을 병행하면서 발표문이나 논문을 쓰는 게 쉽지 않다는 초보 강사들의 한탄이 오갔다. 방학이 오는 게 좋은 건 학생들뿐 아니라 강사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걸 학생들은 알까, 웃으면서. 그러나 이내 방학이 오면 더 문제라는 말이 보태어졌다. 시급으로 임금을 받고 학기 단위로 계약을 이어나가는 시간강사에게 방학은 노동을 할 수 없는 기간이고, 이는 곧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당이 끊긴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단기간으로 카페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알아봐야 하나, 어떤 이론서를 읽고 있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은 아마 시간강사일지도 모른다며 농담을 주고 받았지만 곧 침울해진 분위기로 헤어졌다. 그나마도 시간강사나마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이들의 대화였다.

  시간강사를 하게 된 뒤로,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이 되면 여름방학의 휴식보다 먼저 보릿고개를 걱정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휴가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통장 잔고를 생각하며 7월부터 10월까지를 어떻게 지낼 수 있을지 손가락을 접고 계산기를 두드려보는 나날들. 이 시간들은 아무리 몇 해를 반복해도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계획을 세워두어도 삶에는 늘 어디선가 갑작스런 일들이 불쑥 끼어들어 생각지 못했던 지출을 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렇게 생긴 구멍을 메우기 위해 부모님께 염치없이 손을 내밀거나 아주 급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친한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돈을 빌리는 경우도 왕왕 생겼다. 그마저라도 가능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모든 활로가 막혀버린 경우라면. 단기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는 그의 말은 정말 농담이었을까.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과 처지를 비교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것조차 버거운 짐일 뿐임을 깨달았다.

  4개월을 벌어 6개월의 생활을 고민해야 하는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에는 ‘시급제’와 ‘학기별 계약’이라는 병폐가 자리하고 있다. 좋은 강의는 결코 해당 시간을 노동하는 것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강의 이전에, 어느 정도 연구의 시간이 쌓여야 하는 것은 물론 강의 진행을 위한 당장의 실질적인 준비시간도 필요하다. 학생들의 과제를 읽거나 글을 첨삭하고 성적을 매겨 학점을 부여하는 것까지, 강의 이후에도 해당 강의를 위한 수많은 노동이 필요하고 많은 노력이 투여된다. 시간강사의 시급에는 과연 그런 것들이 정당하게 포함되어 있는가. 물론 시간강사의 시급은 다른 업종의 그것에 비해 높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현재 한 사람이 맡을 수 있는 강의 시수는 한정적인 데다가 ‘학기별 계약’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우 불안정하다. 대학에서의 학기는 방학을 제외한 16주 정도만으로 한정되고 그 이후에도 대학에서 계속 강사와 계약 연장을 해줄 수 있을지 알 길이 없다.

  이렇게 불합리한 처우를 말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운이 좋게 강의 노동이라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박사수료를 하고 학위를 받아도 시간강사 자리가 없어서 학원가를 전전하거나 최저임금을 약간 웃도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료들이, 내 주변에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연구나 강의 역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다른 요인들이나 그야말로 ‘운’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 이 부조리한 빈틈을 포착해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를 돈벌이 문제로 이용하고 있는 대학들이 대부분이라는 것. 때때로 나는 그 앞에서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를 포함해서 강의를 하는 것 자체가 어렵고 힘들다고 말하기 주저된다. 상황에 따라 나의 징징거림이 누군가에게는 배부른 호소로 들릴지도 모르기에. 그러나 이런 주저함은 강의기회를 얻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단순한 연민이나 부채의식 때문만은 아니다. 나 또한 다음 학기에 계약 연장을 하지 못 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시간강사의 보릿고개는 방학 기간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학원을 나와 연구노동자로 살아가는 모든 기간들이 그 자체로 보릿고개는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