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벽장에서 보내드립니다.

어느 대학원생

지난 대선 당시 한 후보를 제외하고 대다수 주요 후보들이 보여주었던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과 태도는 그다지 놀라운 것이 아니었다. 차별금지법을 곧 ‘동성애 법제화’로 이해하면서 “동성애가 합법화(?)되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항문성교를 배우게 된다! 근친 간 성행위가 성행할 것이다!”라며 이치에도 맞지 않는 자극적인 말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보수 기독교계의 유난과 그들의 ‘표심’을 신경 쓰는 정치인들의 행보가 어디 하루 이틀이었던가. 이런 보수 개신교를 지지 기반으로 하는 기독민주당은 작년 여름 서울행정법원에 ‘서울광장 동성애축제 사용허가 취소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고, 2013년 발의되었던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철회되었으며, 서울시는 2014년 인권헌장 제정 위원회가 60대 17 찬성으로 원안 통과를 선포 했던 서울시 인권헌장의 공포를 거부했다.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관련 항목을 문제 삼은 보수 개신교 단체의 거센 반발 때문이었다. 이들을 논리나 이성으로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나는 꽤 오랜 기간에 걸쳐 체득해왔다.

그래도 나는 예수를 좋아한다. 어쩌면 그것은 끊임없는 반복 교육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나면서부터 성년이 되기 전까지 일요일은 물론이요 연말의 송구영신 예배, 명절의 추도예배, 봄의 부활절 예배, 가을의 추수감사예배, 여름/겨울방학의 성경학교 등에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끌려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쨌거나 내가 개신교 교회에서 벗어나려고 하긴 해도 마음 깊은 곳에 예수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서울시청 언저리에서 커다란 글씨를 박아 넣은 현수막을 휘감고 선 이들을 볼 때마다 아연해진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불의 심판’을 운운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성경이라는 텍스트를 곧이곧대로 신의 ‘말씀’이라 생각하며 그렇기에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성경무오설을 믿는다. 신은 아담과 이브를 만들고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으며 남색을 금지했으니 동성애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신은 나의 신과 다른 모양이다. 나의 예수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4:16)”라고 이야기했다. 예수가 다시 와 자신의 이름으로 소위 ‘믿는 자’들이 벌인 일을 목도한다면 분명 기함하리라 확신한다. 내가 이들이 사탄 엇비슷한 것으로 취급하는 동성애자여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벽장 밖으로 완전히 나오지도, 그렇다고 벽장 속에만 틀어박힌 것도 아닌 채 지낸지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벽장문은 5센티 정도 열어놓은 상태다. 관련 이슈를 다루는 수업에서 이론을 방패로 나를 일부 드러낸다거나, 아시아 최초로 동성결혼 금지를 위헌이라고 결정한 대만에 대한 기사나 퀴어 퍼레이드를 위한 광장 사용 허가 여부에 대한 서울시의 태도에 항의하는 관련 계정의 게시물을 SNS의 내 계정에 직접 공유하지는 않아도 좋아요 버튼 정도는 열심히 누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인지 드러내놓고 이야기 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내가 벽장으로 직진했던 것은 아니다. 스무 살 언저리에 동성 친구와 입을 맞추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를 동성애자로 인정하게 되었는데, 그 뒤 몇 가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느 때건 나를 지지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은 내가 이성에게 외모적으로 ‘어필’하지 못하기 때문에 동성에게 끌린다고 착각하는 게 아니냐며 힐난했다. 새내기 시절 술자리에서 첫사랑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며 울다가 필름이 끊겼던 다음 날 다시 만난 선배는 쌀쌀했다. 몸 담았던 공동체 사람들과 함께 보고 싶어 모임에 가져갔던 퀴어 영화의 스태프롤이 올라갈 때 분위기는 썰렁했다. 그밖에 이런 저런 사건들을 거치고 나는 밖에서는 절대로 취할 때까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원칙과, 거식과 폭식을 오가는 만성적인 섭식장애와, 이래저래 쌓여왔던 이런저런 개신교 문화에 대한 염증 따위를 바리바리 짊어지고 벽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여기서는 다르겠지’라고 기대한 적이 있었다. 처음 대학원에 진학했을 당시였다. 그래도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인권 감수성이 다른 곳보다는 높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이 순진하고 대책 없는 기대는 주변 사람들과 평범한 사담을 나눌 때마다 조금씩 사라졌다.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가 보아 왔던 보수 개신교도들처럼 입에 거품을 물며 동성애 ‘반대’를 외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동성애자 친구들에 대해 말하면서 동성애자도 ‘하나도 다를 게 없다’고 두둔하곤 했다. 극성스러운 호모포비아들의 ‘촌스러운’ 논리 없음과 비이성적인 태도는 우월감 섞인 조롱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대다수는 동시에 애인이 있냐는 사적인 질문을 아무 거리낌 없이 “남자/여자 친구 있어요?”라는 식으로 묻는 이들이기도 했다. 그들에게 특별히 나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친근한 대화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무의식’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매번 위축되었다. 자신에게 익숙하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세상이 어떤 이들에게는 그다지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퍽 어려운 일임을 알면서도 그랬다. 시쳇말로 ‘프로예민러’가 되어 꼬박꼬박 “이성 애인은 없습니다. 저는 동성애자거든요.”라고 대답하지 않는 다음에야, 그들은 결코 자신의 말이 나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생각하지 못 할 터였다.

“남자/여자 친구 있어요?”라는 물음에 “남자/여자 친구(는) 없어요.”라고 대답하면 가끔 이런 질문이 따라올 때가 있다. “한 번도 없었어요?” 대꾸 없이 난처한 얼굴로 웃거나 얼버무리면, 상대는 나를 태어난 뒤로 한 번도 연애 해 본 적 없는 ‘모태 솔로’라고 결론 내린다.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고 눈앞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이 동성애자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모태 솔로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소개팅 할래요?” 같은 배려는 덤이다. 꽤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진실을 덜 말하는 기술’을 갈고 닦아 왔다. 교회 안이든 밖이든, 아니면 좁은 대학원 사회 내에서든.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그런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