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기획] 대학원생의 공부시간 확보법

조교일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 ‘도대체 내 공부는 언제하나’하는 생각에 대학원 생활 회의들어  
프로젝트 일은 사실 내 공부와 아무 상관이 없어. 학부 때가 오히려 내 공부시간이 많았다고 느껴




대학원생의 공부시간 확보 분투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학원생은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공부에 몰두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이들의 생각이 그러하다. 하지만 과연 현실이 그러할까? 주변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많은 원우들이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니……’ 얼핏 이해가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자신의 학습과 연구시간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물론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다고 해서 모든 이들이 학문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들은 이들의 이야기가 자신의 현실과는 크게 다르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본 이들의 이야기는 보편성을 띠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번쯤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필요도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학교일을 하고 있는 원우들

현재 연구조교 일을 하고 있는 A씨와 행정조교 일을 하고 있는 B씨를 함께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인문계생인 A씨와 B씨는 모두 등록금을 내기 위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자신들은 이런 일자리라도 있어서 등록금 걱정을 덜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A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부시간이요? 시간 내기 참 어렵죠. 매일매일 정말 바쁘게 사는데도, 수업 내용 따라가고 과제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저는 선생님 연구실 한 켠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10시쯤 출근해서 보통 5~6시에 눈치 봐서 퇴근합니다. 뭐 밤늦게까지 있는 경우도 있고요. 주로 선생님 연구보조를 하거나 수업조교를 합니다. 저는 선생님 복이 있어서 다른 이들처럼 사적인 심부름을 자주하거나 비서처럼 부림을 당하지는 않아요(웃음). 하지만 이것저것 일 자체가 적지는 않아요. 그리고 연구실에 있다 보면 항상 대기상태여야 하고요. 뭐 사실상 제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퇴근이후부터죠.”

행정조교 B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교직원들과 일하는 것의 장단점에 대해 언급한 후 B씨는 행정조교는 연구조교와는 달리 출퇴근 시간이 명확해서 예측가능성이 높아지는 측면은 있지만 공부시간이 부족해서 학기 중에는 수업 따라가는 것도 버겁다는 것에는 A씨와 의견을 같이했다. “조교일 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가죠. 사실상 저녁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오전, 오후 쉬다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방 피곤해지죠.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공부를 하고 싶고 그것에 필요한 등록금을 벌자고 일을 하는 것인데, 정작 등록금 버느라 공부를 못한다는 생각이요.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거죠. 이런 생각이 들면 대학원 뭐하러 왔나하는 생각이 들죠. 저는 그래서 대학원 오겠다는 후배들이 있으면 부모님 도움 받지 못할바엔 절대 오지 말라고 말려요”

이들은 우리에게 자신 주변 이들의 이야기들도 함께 말했다. 어떤 이는 교수가 너무나 여러 가지 일을 많이 시켜서 대학원을 떠났단다. ‘본인이 생각한 대학원 생활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토로와 함께. 그리고 어떤 이는 당초 유학에 뜻이 크게 없었음에도 지긋지긋한 ‘부불노동’에서 벗어나고 싶고, ‘나도 제발 내 공부 좀 하고 싶다’며 한동안 잠수를 탄 후 유학을 갔다는 것이다. A씨는 지금도 가끔 유학을 떠난 이와 연락을 하는데, 그는 사실 그곳과 한국이 공부하는데 큰 차이가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곳에서는 ‘교수가 내 공부에 관심을 가져주고, 공부할 시간이 많다’며 비교적 만족하더란다.


학원강사 원우들

인문계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인 C와 D는 입시학원 강사일을 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석사과정 때는 주로 교내 일을 하며 등록금이나 생활비를 벌었으나 이제는 학원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안정적으로 자기 공부를 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말이다. C씨는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예전에는 학교일을 하며 돈을 벌었는데, 이 일은 무엇보다도 업무시간과 자유시간이 명료하게 구분되지 않아서, 그리고 어떤 업무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기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여기저기 교수를 위시한 상급자들 눈치 보며 일하고 생활하는 것도 힘들었죠. 그래서 업무와 일이 분리된 그리고 적어도 감정노동이라도 덜 하는 일을 찾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물론 이 일도 힘들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래도 스트레스 덜 받고요, 경제적으로 학교나 학과 교수들에 의존할 필요가 없으니 더 자유롭죠.”

D씨는 C씨의 말에 동감을 표하며 말을 더했다. “저는 다른 것보다 교수님 프로젝트 일에 치여서 힘들었죠. 물론 저도 처음에는 일정액을 받고 일하니까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프로젝트가 여러 개가 되고 일이 점차 쌓이면서 감당하기 어렵더라고요. 교수님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라고 하면 싫어도 거절하기 어렵잖아요. 물론 나중에는 참가희망여부를 묻지도 않고 그냥 일을 시키더군요. 일마다 돈을 꼬박꼬박 받는 것도 아니었을 거예요. 사실 어느 프로젝트의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1~2년을 그러면서 보내니 스트레스가 엄청 났어요. 프로젝트 일은 사실 나의 문제의식에서 나온 일도 아니잖아요. 대부분 교수님들 돈 벌려고 하는 일이고요. 내 공부는 언제하나. 제발 아무 간섭도 받지 않고 내 문제의식은 언제 발전시키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D씨는 그래서 일단 학교 밖에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고 공부를 해나가고 있다. 몸에 지병이 있어 일정 시간은 반드시 쉬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지 못해 스트레스가 많다는 D씨. D씨가 C씨에게 물었다. “C씨는 혹시 오히려 학부 때가 더 자유롭게 그리고 더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저는 전부터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저는 학부 때도 상당기간은 등록금 제가 벌어서 다녔는데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C씨가 답했다. “그렇죠. 학부 때 대학원에 가면 읽고 싶은 책, 하고 싶은 공부 엄청나게 많이 할 줄 알았죠. 그런데 참(웃음).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건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게으르고 생각이 틀려먹어서 일까요(웃음).”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원우들

이공계 박사과정인 E씨는 현재 연구실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동시에 실험수업의 조교로 일하고 있다. 실험수업의 조교는 학부생들의 실험과정을 지도하고 연습문제를 풀어주는 일을 한다. 프로젝트와 조교 일을 하면 어느 정도 등록금이 마련되지만 생활비가 부족하기에 E씨는 따로 과외도 겸하고 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으니 눈앞의 난관은 해결한 듯하지만, 정작 문제는 자신의 공부시간이다. 자신이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분야를 선정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E씨는 말했다. “연구실에 있다 보면 제 생활이 프로젝트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어요. 프로젝트 기한에 맞춰서 밤을 새 야근을 하기도 하죠. 교수님들은 프로젝트를 기업 혹은 국가에서 따오세요.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에서는 기술 사업을 진행하기에 저희 같은 대학 이공계의 연구실과 동업을 하는 경우가 많죠. 기업보다 돈은 덜 나오지만 한국연구재단과 같은 곳에서 하는 국가사업도 있어요. 프로젝트를 따서 진행을 하다 보면 교수님들은 성과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요. 기업이나 국가와 직접 상대를 하니 당연하죠. 외부의 압력이 있으니 교수님들은 대학원생들에게 빨리 결과를 내기를 강요할 수밖에 없어요.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저희 같은 대학원생들이야 교수님께 맞출 수밖에 없죠. 하지만 아무래도 제 공부를 하기란 어려워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거기서 주제를 정해서 자신의 논문도 쓰고 하는 게 대다수 연구실 대학원생들의 실정일 거예요. 주제선정과 관련하여 제가 주도적으로 결정하기란 어렵죠. 사실 등록금과 생활비 마련하느라 따로 더 공부할 시간도 없구요. 이미 야근을 하고 있는데 제가 문제의식을 키우고 주도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을까요?”

이공계 석사과정 재학중인 F씨 역시 사정은 E씨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F씨는 수업조교와 BK21(Brain Korea 21)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조달했지만, 학기당 백오십만 원 정도가 부족했기에 대출을 받았다. 생활비는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구시간을 따로 확보할 수는 없었다고 F씨는 말했다. “아무래도 돈이 궁하죠. 바꿔 말하면 시간이 궁한 것 같기도 해요. 시간이 곧 돈인데, 연구실에 있다 보면 과외를 하거나 학원강사를 할 시간은 없으니까요. 사실 연구실마다 사정이 다른데요. 제가 있는 연구실 같은 경우는, 막말로 교수님이 돈독이 오른 분이라 프로젝트가 너무 많아요. 과정생 한 사람당 프로젝트 하나를 맡고 있을 정도였어요. 저희는 평일에는 밤10시까지, 토요일에는 오후6시까지 학교 연구실에 의무적으로 있어야 해요. 10시에 퇴근을 하고 나면 과외고 공부고 도저히 할 수가 없죠. 시간이 없으니 당연히 제가 관심이 가는 분야를 스스로 꾸준히 파고드는, 그러니까 제 연구라고 할 만한 것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해요.”

F원우는 교수가 대학원생의 개인 연구의 발전 및 심화를 위해 지도해 줘야 하지만, 실제로는 프로젝트를 위한 지시만 한다고 말했다. “저는 과정생이잖아요. 그러니 아무리 제가 열심히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교수님의 지도가 필요한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프로젝트 성과를 내기 위한 지시만을 하세요. 결국 저로서는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어요. 논문도 그 프로젝트 안에서 쓰는 거예요. 물론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어느 정도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으니 그리 나쁘다고 생각하지만은 않아요. 아무튼 시간이 없는데 그나마 제가 관심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방편은 지도교수님 수업 이외에 흥미로워 보이는 수업을 수강하는 정도예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들은 바를 더 파고들 시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해요. 요즘은 제가 왜 대학원에 왔는지 제 자신에게 종종 되묻게 돼요. 졸업을 하고 나면 달라질까요?”

대다수의 원우들은 대학원에 입학할 때 학자를 꿈꾼다. 자신이 문제의식을 품고 그것을 심화시켜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을 바라고 대학원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막상 대학원에 입학하고 보면 생활비와 등록금을 마련하고, 교수님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자신의 연구는 뒷전으로 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본교가 연구중심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선 원우들의 생활고, 그리고 시간부족 현실이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뷰 : 편집위원회
정리 : 박성태 기자 clsrnofu@korea.ac.kr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21:2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