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암에서 샤브샤브 먹을데가 참 없죠. 참살이길에 있는 정성본은 갈때마다 불친절해서 가기싫고,
개운사 가는길에 있는 등촌은 평소엔 버섯칼국수 시키면 잘 갖다주다가 이상하게 여자후배랑 같이 갈 때만
'샤브는 안해?' 하고 넌지시 압박을 주더군요. (그래도 마지막에 밥볶아주는건 겁나 맛있음)
그래서 종종 샤브가 땡길때면 성신여대 태극당 위에 있는 팸리치 샤브샤브뷔페(구 바이킹)에 가서 배가 땅에
끌릴 때까지 먹고 오곤 하는데, 일전에 한번 가봤던 모닥불 샤브샤브에서 무한리필 메뉴를 내놨다길래 가봤습니다.
(잉ㅋ금술사님의 제보에 감사드립니다)
위치는요 --->
http://dmaps.kr/9fxe
저는 대학생활동안 정문이나 정후에서 거의 모든 끼니를 해결하고, 참살이길까지 나가면 '원정'이라고 표현하는
내추럴 본 문과생인데요, 그래서인지 이집 찾아가는데 좀 고생했습니다. 링크를 보시면 안암로터리 청진동해장국이
보이죠. 거기서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는 아저씨가 계신데, 그분 뒤쪽에 있는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됩니다. 거짓말 아니예요 진짜 그 좁은 골목에 있어요
들어가자마자 메뉴판은 보지도 않고 무한리필이요라고 당당히 외쳤기 때문에 다른거 뭐 있는지는 모릅니다.
예전에 다른 분들 리뷰를 보니 굴도 있고 날치알쌈밥도 있고 뭐 그렇던데, 그런거 다 필요없고 대륙을 호령하던
징기스칸의 기상으로 고기와 야채만 있는대로 조지겠다 하는 저같은 분들은 무한리필 드시면 됩니다.
주문후 맨 먼저 화로에 불을 붙여줍니다. 이집은 개인당 화로가 하나씩 있는게 장점인데요, 각자 앞에 놓인 화로에
원하는 음식을 넣어서 데쳐먹을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 남은 고기 한 점을 누가 집어갈지 눈치보지 않아도 되고,
육덕진 국물맛을 원하는 사람은 고기를 잔뜩 넣고 깔끔한걸 좋아하는 사람은 채소를 많이 넣어서 기호에 맞게
육수맛을 바꿀 수 있는게 좋아요. 화로의 불은 가스불이 아니고 알콜램프(?)같은 거여서, 보통 많이들 생각하는
육수에 고기를 넣자마자 살짝 구부러들며 회색빛으로 익어가는 그런 그림은 잘 안나옵니다. 좀 천천히 익어가는데,
뭐 덕분에 먹는 속도도 좀 조절하고 이야기도 해가면서 여유있게 먹을 수 있었던듯 해요.
밑반찬으로는 김치, 연두부, 브로콜리 등등이 나왔던 기억은 있는데 먹은 기억이 잘 없어요. 고기만 먹었거든요.
청경채, 배추, 숙주, 팽이버섯, 느타리버섯, 새송이버섯 등의 채소가 가득 담겨 나오고, 소등심과 삼겹살이 나옵니다.
찍어먹을 소스는 양파간장소스 딱 하나뿐인데 이게 맛은 괜찮지만 다양하지 않은게 조금 아쉽긴 해요.
채소는 다들 신선한 편이고, 고기는 메뉴판을 자세히 확인하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우리의 우방국인 미국 호주
등지에서 온 녀석들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딱히 누린내도 많이 나지 않고 맛이 괜찮습니다. 저렴한 샤브샤브를 먹다
보면 고기에 피가 잔뜩 맺혀있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여기서 고기 네판을 먹었지만 피맺힌 고기는 하나도 없었네요.
맨처음엔 소등심과 삼겹살, 그다음엔 돈목심과 돈등심, 다시 소등심과 삼겹살, 마지막으로 삼겹살 순으로 먹었는데,
제 입맛엔 소등심>>삼겹살>>>>목심등심 순이었어요. 소는 역시나 보들보들한 소맛이고, 삼겹살은 간혹 오돌뼈가 큰게
붙어있어 불편한 부분도 있었지만 비계가 있어 역시나 야들야들한데, 목심이랑 등심은 좀 퍽퍽해요. 게다가 아무래도
살아있는 갈고리촌충을 먹고싶지 않아서, 퍽퍽해질걸 알면서도 푹 익혀먹다보니 좀 슬픈 식감이 되어버리더군요.
맨 마지막에 삼겹살을 한번 더 먹은건 소등심을 먹고 싶었지만 다 떨어져서 없다고 하시기에 차선책으로 고른거였습니다.
저희가 여섯시 반쯤 도착해서 술손님만 두테이블 남고 저녁손님은 다 빠질때까지 먹었는데, 소를 양껏 드시고 싶은 분은
이걸 감안해서 좀 일찍 가셔야 될 것 같아요.
신나게 고기를 탐닉한 이후에 마무리를 지으려고 칼국수를 주문했는데(역시 무한리필 메뉴중 하납니다), 온통 고기로
얼룩진 육수를 보시더니 이러면 느끼하다며 숙주도 더 갖다주시더군요. 좀있다가 칼국수가 나왔는데, 보통 제공되는
밀가루묻은 면 상태가 아니고 한번 살짝 삶아서 나옵니다. 저는 면이 푹 퍼진걸 좋아하다보니 샤브를 다 먹고나서
칼국수 면을 삶을때 제가 좋아하는 상태가 되기까지의 공백이 너무 길어서 곧잘 우울해지곤 하는데, 삶아서 나오니까
시간이 훨씬 줄어들어서 좋더군요. 하지만 이미 삶아져있기 때문에 바로 육수에 투입하지 않으면 퉁퉁 불고 뭉쳐서
거대한 떡사리를 주문한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고기 주문할 때 한가지 팁이 있는데, 아직 고기가 1/4정도 남아있을때 새로 주문하는게 좋습니다. 어제 가보니
사장님이 혼자서 동분서주하면서 고기썰고 주문받고 서빙하고 하면서 엄청난 활동량으로 멀티롤을 커버하고 계셨는데,
아무래도 혼자 하시다보니 서빙속도가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닙니다. 손님 다 빠질때까지 빈그릇도 다 못치우시더라구요.
게다가 고기는 주문받으면 바로 꺼내서 기계로 썰어주기 때문에 고기 써는 시간까지 감안해서 좀 넉넉하게 미리 시켜야
테이블에 먹을게 없어서 멀뚱멀뚱 있다가 괜히 오지도 않은 카톡 한번 확인하는 엄한 상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엇을 주문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콜라를 시키면 편의점에 가서 자기돈으로 사온뒤에 포스기에는 공기밥으로
입력하는 혼돈의 카오스에 빠진 중국인알바가 있었는데, 이젠 그마저도 없어서 사장님이 너무 바쁘시더라구요. 그래서
처음엔 고기 더달라고 부르기도 좀 쑥스럽고 죄송하고 그랬는데, 더 필요한것 없냐고 무심한듯 다정하게 매번 물어보셔서
부담도 줄어들고 참 좋았습니다.
무한리필을 개시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직접 찾아가서 샤브샤브를 먹으면서, 그리고 다 먹고 나서 후기를
쓰면서도 드는 공통적인 생각은 한가지입니다. '사장님 왜이러지?'
뭐 물론 장사하시는 분이니까 어느정도 계산하고 따져보고 하시는 거겠지만, 계속 이렇게 가면 과연 이익이 날런지..
값싸고 풍족하게 먹을 수 있어서 손님 입장에선 좋긴 한데, 사실 테이블도 그리 많지 않고 손님도 바글바글한 곳은
아닌데 무한리필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자주 가서 단골이 되고 싶은데 단골이 되면 '징한놈들 또왔어'
하고 내심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결론은 망하기전에 빨리 가서 한번이라도 더먹자(?)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07:2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