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이렇게 적고보니 셀빠 할아버지 사장님께 무척 송구스럽네요. 하지만 같은 업종의 가게를 예로 들어
비교하는게 더 잘 와닿을 것 같아, 셀빠 얘기를 군데군데 쓰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지갑은 풍요롭지 못한데 남의 살은 자꾸 먹고싶어져서 고기부페 셀빠를 종종 이용했더랬습니다.
수입 냉동육이라 육질은 그닥이지만, 야들야들한 우삼겹으로 배채우고 반쯤 얼어있는 리치로 입가심하는 맛에 다녔는데,
이것도 계속 먹으니 좀 질리더라구요. 그러던 차에 종암동에 고기부페가 생겼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곧장 가봤습니다.
(요즘 거울보면 눈이 안보여요. 그래도 차라리 거울을 버릴지언정 사람이 고기를 끊을수는 없잖아요)
위치는 종암경찰서 옆 봉이랜드건물 2층입니다. 안암랜드가 생기기 전에는 꽐라되고 갈곳없는 고대생들의 하룻밤을
책임져주던 곳이었는데, 요즘은 발길 끊은지가 참 오래됐네요.
http://me2.do/FmexlI 여기서 2층 오른쪽에 보이는
오리구이집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이 건물 1층 왼쪽에는 케이블에 광고도 하는 조선시대라는 큰 고깃집이 있는데,
여기도 꽤 먹을만해요. 고기도 괜찮고 반찬도 많고.
본론으로 들어가면, 일단 이곳은 1인당 16000원씩 내고 가게 문 닫을때까지 가져다 먹을 수 있는 고기부페입니다.
열한시에 문을 닫고, 열시 반에 고기가 마감이예요. 고기 종류는 삼겹살, 목살, 항정살, 갈비살, 갈매기살, 토시살, 등심, LA갈비,
양념갈비, 우삼겹, 광양불고기, 떡갈비, 수제소세지 등이 있는데, 냉동육도 있지만 종류에 따라 냉장육도 있어서 셀빠보다
고기맛이 더 나은 편입니다. 맛있는 고깃집에 가면 선홍빛 삼겹살에 핏기가 가시다가 이내 밝고 노릇노릇한 색으로 고기가
익는걸 보실수 있을텐데, 셀빠 삼겹살은 중간 단계에서 약간 어두운 회색을 띄어요. 이집은 그 둘의 중간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명가구이의 고름삼겹살하고는 아예 비교를 하면 안되구요. 잘 아시다시피 고기부페에서 양념돼있는 고기는 그리 맛있는 녀석들이
아닌데, 그건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두 조각씩 맛만 본다는 느낌으로 드셔보시면 될 것 같아요. 셀빠에서 위장(胃臟)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했던 우삼겹은 여기서도 잔뜩 기대하고 먹었는데, 고기가 너무 얇은데다 불판과의 상성이 좋지 않은지 이내
갈라지고 쪼그라붙어서 먹기가 쉽진 않았어요. 서래 갈매기살 뒤집듯 쉬지않고 볶아(!)줘야해서 좀 귀찮았습니다. 하지만 그
서운함을 조금이나마 달래준 것이 등심과 토시살이었으니, 마블링 살벌한 한우나 와규 이런애들에 비할바는 물론 못됩니다만
셀빠에서 소고기 흉내내면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녀석들보다는 몇 수 위입니다. 고기가 다 떨어지면 즉석에서 썰어서 내주기
때문에 4번정도 갖다먹었을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었지만, 그래도 깨끗한 불판을 충분히 달구어 고기를 올리고 겉에 핏기만 가시게
살짝 구워 온기가 식기 전에 모서리에 소금을 조금만 찍고 입속으로 넣어 고기에 어금니를 깊이 박아넣었을때 돌아오는 반동이
그래도 역시 소고기는 소고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셀빠에서 토시살을 먹어봤을때는 검고 납작하고 딱딱한 그 무엇이
고기행세를 하고있어서 이게 우육탕큰사발에 들어있는 말린고깃조각인지 뭔지 알 수 없어 패닉에 빠졌는데, 여기는 두툼하면서도
더 부드럽고 육즙맛도 좀 나는것이 나름 만족스러웠어요. 재차 강조하지만 여기는 고기부페입니다. 엄청난 맛은 아니예요.
이 가격에 이정도 맛이면 나는 오늘저녁을 후회는 하지 않겠다 뭐 그런 느낌입니다.
고깃집에 고기 얘기만 하면 됐지 싶어서 미뤄뒀던 얘기들이 좀 있는데요, 여기는 만육천원이라는 가격 때문인지 고기부페주제에
상차림이 꽤 나오는 편이고, 갖다주기까지 합니다. 상추와 깻잎, 간장소스에 적셔먹는 양파채, 파절임, 양파&고추절임, 김치 등은
갖다먹는게 아니고 직원들이 갖다줍니다. 못참고 직접 가져가면 '다음엔 저희 부르세요...'하고 서운한 기색을 보입니다.
불은 테이블에서 가스로 숯에 불을 붙이는 방식을 쓰는데, 처음에는 지옥불같은 무시무시한 화력을 뽐내지만 숯들이 워낙 작아서
오래 유지되지는 않습니다. 고기 한두접시 먹을게 아니라면 중간에 숯을 더 넣어달라 해야될거예요. 전 두번 더 넣었어요.
이게 구조상 원래 그런건지 알바가 미숙한건지 모르겠지만 판을 갈거나 숯을 넣을때 재가 좀 날리는 일이 있었으니 참고하세요.
알바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좀 불만족스럽습니다. 전부 수능끝나고 엄마몰래 스키장 놀러가기 위해 알바뛰는걸로 추정되는
고등학생들이예요. 딱히 불친절한건 아닌데, 친절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사람이 좀 많은 시간대에 간 탓도 있는데,
벨을 누르면 '네~!'하고 최소한 세 명 이상이 대답하지만 정작 알바 얼굴을 보고싶으면 세 번은 불러야 합니다. 사실 그도 그럴것이
지난달 말에 오픈한 가게라, 사장도 직원도 모두 피크타임에는 멘탈이 붕괴된게 확연히 느껴져요. 이 점은 개선될거라 생각합니다.
또 한가지 생각난거.. 저는 고기가 목구멍까지 차오르지 않는 한은 입가심으로 물냉면을 먹는데요, 비록 그날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물냉면을 시키기는 했지만 그거는 뭐 중요한게 아니고 아무튼 물냉면을 먹었는데 꽤 괜찮아요. 육수도 쌈마이 식초육수가
아니고, 면발도 봄처녀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하늘하늘한것에 고명으로 배까지 올라가 있어서 중저가형 고깃집 입가심냉면치고는
상당히 좋은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목구멍까지 고기가 차고도 그 틈새로 냉면 한그릇을 다 채워넣을 정도니 나쁘진 않을거예요.
대체 왜 새벽세시에 고기부페 리뷰를 써서 자학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저런 장단점 합해서 퉁치면
'배고픈데 고기좀 실컷먹자'를 모토로 삼는 날에는 한번쯤 가볼만한 집입니다. 학교 바로 근처가 아닌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가위바위보해서 진사람이 택시비내면 기본요금이면 가잖아요. 테이블 없고 전 좌석 바닥이니 여성분들은 참고하시구요, 좌석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니 전화로 먼저 문의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번호는 02-953-8116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5 18:2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