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카를 발에 끼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질 사진에 양해말씀 드립니다.

간만에 또 안암에 들렀습니다. 친구에게 책도 받을겸, 술도 한잔 할 겸 해서요.

딱히 가고싶은 곳이 없어서 어딜갈까 고민하던 차에, 이녀석이 어제 술을 많이먹었다며 고기로 해장해야겠다더군요.

자주 가던 정문앞 주먹고기는 정대후문에서 가기엔 너무 멀어서 귀찮고, 한동안 맛게의 이슈가 되었던 대박집엔

이녀석이 관심조차 갖지 않아서, 그냥 돈투, 도리돈, 꽃돼지, 소몰이, 곱창집 등이 모여있는 고기 삼각지대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삼각지대에 아직 못미칠 무렵, 시티참치 건너편에 새로 생긴듯한 가게가 보이더군요. 아마도 예전에

'풍아'라는 이름의 로바다야끼가 있던 자리였을텐데, 개업한지 얼마 안된듯 보이길래 한번 들어가 봤습니다.

고기는 딱 세가지, 삼겹살 갈매기살 갈비살만 팔더군요. 조그만 가게에서 이것저것 팔면 물건이 빨리빨리 돌지 않을

것은 당연지사. 잘한 선택이라고 보입니다. 삼겹살은 위와 같은 판에 구워주고, 갈매기살과 갈비살은

화로에 굽습니다. 저희는 태생이 가난해서 별다른 고민 없이 삼겹살 세트를 시켰습니다.

삼겹살 2인분 + 버섯사리(새송이,팽이) + 김치찌개 + 계란찜 + 누룽지 = 12,000원

(근데 삼겹살 1인분이 6천원이기 때문에 고기 외의 것들은 그냥 기본 세팅이라고 보면 됩니다.)

일단 좀 덥습니다 여기. 에어콘이 있는지 없는지는 못봤는데, 개방된 구조라 소용도 없을 것 같고.

선풍기를 얼굴 앞에 갖다놓고 땀을 좀 식히고 있으니 고기가 나왔습니다. 참고로, 사진에 있는 버섯과 고기의

분량이 주문한 2인분 전부입니다. 양으로 승부하는 고기 애호가들에겐 좀 적어보이긴 하지만, 좀 두껍게 썰어놨기

때문에 씹는 질감도 좋고 은근히 생각보다는 많습니다. (그래도 1인분 더 시켜먹긴 했습니다)

소스는 쌈장, 콩가루, 소금장 세가지입니다. 그냥 소금만 있는게 아니라 참기름을 듬뿍 부어주는게 제 취향에 맞더군요.

상추, 깻잎같은 야채도 신선합니다. 조금 모자라길래 더 달라고 하니까 아예 대접 한가득 주셔서 다 못먹었어요.

김치는 덜익지도 시지도 않은 딱 적당한 정도인데, 어차피 돼지기름에 달달 볶이니 크게 상관은 없겠고..

그리고 무쌈도 있어요. 근래 몇년간 고깃집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것 같네요.

간만에 돈 좀 더주고 두께감 있는 삼겹살 먹으니까 왠지 기분이 좋더군요. 같은 고기는 고기인데.

보통 일반 구이용 삼겹살의 두께는 6mm, 숯불용은 10mm가 최적이라고 하는데, 이집 고기는 대략 7~8mm쯤 됩니다.

저렴한 대패삼겹살로는 포만감은 얻을 수 있지만, 두툼한 고기는 토실토실한 육질이 살아있어 씹는 재미가 더하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네요. 겉에서는 고소하고 바삭한 느낌이 나고, 속에서는 보드라운 풍미를 느끼려면

역시 고기는 두께가 있어야 제맛.

잠시 얘기가 다른데로 샌 틈에 김치찌개와 계란찜이 나왔습니다. 돼지고기 조각이 퐁당퐁당 빠져있는데

사실 맛은 잘 우러나지 않지만 그냥 칼칼하니 몇술 떠먹을 만 합니다. 그런데 또 이 계란찜이 환상이네요.

계란찜은 만들기는 쉬운데 정말 맛있게 만들기는 또 어렵잖아요. 이집 계란찜은 조그만 뚝배기에 담겨나와

단품으로 팔기에는 좀 뭣하지만, 일식집에서 나오는 계란찜이나 그 이상으로 맛있다고 해도 괜찮겠네요.

물이랑 우유를 많이 넣어서 만든 것 같은데, 순두부처럼 부드러운게 입에서 살살 녹아내리더군요.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누룽지가 나옵니다. 술집에서 파는 중국식 누룽지탕은 아니구요, 그냥 누룽지를

팔팔 끓여서 조그만 냄비에 담아주는데, 그거 외엔 아무것도 안들어간거라 담백하고 괜찮습니다.

원래는 고기먹은 후에 냉면으로 입가심하는걸 좋아하는데, 누룽지 몇술 떠먹으니 그것도 나름 깔끔하고 좋네요.

아무 생각없이 정보없이 들어갔던 곳인데 꽤 기분좋게 먹고 나왔습니다.

장점은 괜찮은 고기 질, 모자라거나 남는것 없이 적절한 사이드메뉴, 계란찜, 귀여운 주인누님(아주머님?)

단점은 냉방, 원숙하지 못한 서빙(경험이 별로 없으신건지, 일손이 딸려서인지..) 등인데 사실 음식 외적인건

별로 신경을 안쓰기때문에 만족스럽게 먹을 수 있었네요.

배가 고파서 글이 더 안써집니다. 일단 추천입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