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 날도 전날만큼은 아니지만 닉값하는 날이라 여행기가 길어질 수 있음에 미리 양해의 말씀 드립니다.
오늘의 BGM은 중화민국송(中華民國頌), 즉 중화민국 찬가입니다.

1. 아침으로 든든한 중식 아침식사를 먹습니다. 왜 문 대통령께서 혼밥이라는 오명을 써 가면서 드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중식 아침 매우 든든합니다.

2. 원래는 호텔에서 도보로 총통부 -> 2.28 공원 -> 중정기념당 순으로 이동하려 했는데, 늦잠을 자는 바람에 아침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바로 중정기념당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9시에 국기게양식이 있다 해서 그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이미 국기가 올라가 있더라고요 ㅠㅠ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겨울에는 6시 반으로 시간을 앞당겨서 한다고 합니다.
참고로 오후 5시에는 국기하강식도 있는데, 그 때는 시간이 아예 맞지 않아 일찌감치 계획에서 뺀 상태였습니다.
이곳은 원래 육군본부 및 헌병사령부가 있었던 곳인데, 1975년 4월 5일에 장중정 총통이 서거하자 이곳에 기념당을 세우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만 국민들과 전세계의 화교들이 보낸 성금을 모아 1980년 4월 5일, 장 총통의 서거 5주기가 되는 날에 개관을 하였습니다.
중정기념당의 계단은 총 89개로, 이는 장 총통이 향년 89세에 서거하였기 때문입니다.
전에 왔을 때는 저 계단을 무식하게 걸어올라갔다가 다시 걸어내려갔는데, 이번에는 쪽문으로 들어가서 전시실을 돌아보고 엘리베이터로 올라가기로 합니다.

3. 전날은 죽은 중정을 만났다면 이날은 산 중정을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그의 2차세계대전 승리 기념 연설에 3차원 홀로그램을 합성한 영상입니다.
장 총통의 모어는 표준중국어가 아니라 '오어'라는 방언인데, 그래서 표준중국어로 연설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듣는 순간 뭔가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4. 우리 정부가 장중정 총통에게 수여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입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장 총통과 국민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한국 광복군의 최대 후원자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감명받은 장 총통은 중국 내에서 임시정부가 활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왔고, 광복군 창설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카이로 회담에서도 다른 연합국 정상들로부터 한국의 독립을 약속받았으며, 얄타 회담에서 이를 재확인하였습니다.
대만으로 쫓겨난 후에도 그는 한국에 우호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장군을 한국 대사로 대만에 파견했는데, 장 총통은 '김구 선생은 나와 같은 항일 투쟁 동지이니, 김 대사는 우리 가족과 다름없다'며, 친아들처럼 대하고 자주 불러 식사도 했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였냐면, 장 총통의 기분이 유난히 좋지 않은 날에는 참모들이 곧바로 김신 대사에게 연락을 했고, 김신 대사가 도착을 하면 장 총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허허 웃으면서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한국에 흉년이 들자 대만의 식량 사정도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쌀 5만 톤을 흔쾌히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의 원래 의도는 전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중국(중화민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었겠지요. 다만 국공내전에서 패배하여 대만으로 쫓겨남으로써 그런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하였지만요. 그러나 그러한 전략적,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 해도 인간적인 진정성 또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대만 내에서는 '제2의 국부'부터 '대륙에서 건너온 학살자'까지 다양한 평가가 공존하는 인물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는 한 번쯤 기억하고 감사해야 할 분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현 대한민국 정부의 친중공적 행보가 국민들의 비난을 받고 있고, 중공 댓글부대에 의한 여론조작이 의심되고 있는 작금의 혼란한 시국을 보니 더욱 장중정 총통 생각이 납니다.

5. 장 총통의 집무실을 복원해 놓은 모습입니다. 벽에 걸린 중화민국 전도가 인상적이군요.
몽골까지 수복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겠지만, 언젠가는 중공의 압제가 무너지고 난징 총통부와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 다시 청천백일만지홍기가 펄럭이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6. 1층 전시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있는 장 총통 동상 앞에 섰습니다.
뒤에는 장 총통의 유훈 '윤리 민주 과학'이 새겨져 있고, 동상 밑에는 그의 유언이 새겨져 있습니다.
참고로 문이 뚫려 있는 방향, 그리고 동상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이 서북쪽입니다. 이는 서북쪽에 있는 대륙을 수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전날 츠후에서 보기는 했지만 마침 시간이 맞아 의장대 교대식을 한 번 더 봐 줍니다.

7. 기념당에서 내려다본 광장입니다.
왼쪽의 건물은 국가희극원, 오른쪽의 건물은 국가음악청입니다.

8. '자유광장'이라 적힌 대문을 지나서 밖으로 나옵니다.
원래 저 현판에는 '대중지정(大中之正, 크고 치우치지 않고 지극히 바름)'이라고 적혀져 있었습니다. 중정이라는 이름도 저 사자성어에서 따왔고요.
그러나 민진당의 천수이볜 총통이 집권하고 저렇게 자유광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중정기념당도 이름을 '국립대만민주기념관'으로 바꾸고, 장 총통 동상 앞에 콜라주나 데칼코마니를 전시하는 만행(?)을 벌였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중정기념당 자체를 없애고 싶었겠지만 워낙 타이베이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터라 그리 하기는 힘들었나 봅니다.
그 후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이 집권하고 원상복귀가 되었지만, 저 현판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라고 합니다.

9. 중화민국 총통부입니다. 오전 시간대에는 내부 투어가 가능하다는데 저 때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여기는 원래 일제의 대만총독부 건물이었는데, 조선총독부 건물을 해체한 우리와는 달리 여기는 계속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의 일부'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기는 하나, 그보다는 조선에 비해 보다 유화적인 통치를 겪었고, 그로 인해 일본에 대한 반감이 적은 대만인의 정서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10. 총통부 앞에는 2.28 평화 공원이 있습니다.
일본이 2차대전에서 패망하고 대만이 중국(중화민국)에 반환이 되었는데, 당시 중국 대륙에서 담배는 전매품이 아니었지만 대만에서는 전매품이었습니다. 한 과부가 당국의 허가 없이 담배를 팔다가 경찰에 적발이 되었는데, 문제는 경찰이 이 과부를 강압적으로 대했습니다.
일본의 통치가 유화적이었다고는 하나 대다수의 대만인들은 대만이 중국에 반환되었을 때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대만을 접수한 국민당은 국공내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데다가 대만의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정부와 대만인 사이에 갈등이 쌓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와중에 담배 과잉 단속을 계기로 대만인의 분노가 폭발했고, 급기야 군중들이 관공서를 습격하여 대만 민남어 방언을 알아듣지 못하는 경찰들과 군인들을 폭행, 살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타이완성 정부에서는 타협안을 내놓았지만 대만인들은 근본적인 자치를 요구하며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대륙에서 파견된 계엄군이 표준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시위대를 사살하고,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도 함께 희생당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습니다.
이 사건은 한동안 언급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대만이 민주화가 되면서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고, 1995년에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를 하였습니다. 다만 워낙 오래 전 일이라 진상규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씁쓸할 따름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만 더 이해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11. 한 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여기서 총통부 앞의 대로를 건너면 제서우 공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서우(介壽)의 뜻은, 장중정(장제스) 총통의 장수를 기원한다는 뜻입니다. 원래는 총통부 앞의 대로도 이름이 제서우 대로였지만, 대만 민주화 이후 이 일대에 살던 원주민 부족의 이름을 따서 '케타갈란 대로'로 개명이 되었습니다.
아, 여담이지만 공원의 동상은 장중정 동상이 아니라 중국 국민혁명군의 린썬 장군입니다.
중정기념당에서 2.28 공원, 제서우 공원까지 둘러보면서 장 총통과 국민당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란 정말 복잡한 것이고, 거기에 정답은 있을 수 없음을 또 한 번 느끼면서 다음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12.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진 것 같아, 다안삼림공원에서 산책을 하면서 기분전환을 했습니다. 타이베이에는 이런 공원이 많아서 좋습니다.

13. 다안삼림공원에서 중샤오푸싱역으로 걸어가는 길에, 런아이로(仁愛路, 인애로)라는 거리가 있어 사진을 남겼습니다. 울창하게 우뚝 선 가로수가 인상적인 거리입니다.

14. 타이베이에는 미슐랭 선정이 된 유명한 우육면 집이 있습니다. 그 옆집에서 먹은 우육면입니다(...)
그런데 옆집도 충분히 맛있고, 결정적으로 옆집이 조금 더 쌉니다.

15. 원래는 계획에 없었는데 중정기념당을 보고 있으니 뽐뿌가 와서 국부기념관도 다시 찾았습니다. 꽃 정원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저 뒤에 타이베이돔은 그 사이에 많이 지었네요. 허구연 해설위원이 생각나는... 죄송합니다.

16. 의장대 교대식 전에 현지인들이 국부에 대해 목례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만에서 쑨원의 위치는 절대적으로, 어느 정도냐면 교실 정면에 국기와 함께 국부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총통 취임식을 할 때 쑨원 초상화 앞에서 선서를 한다고 합니다.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 차이잉원 총통도 별로 내키지는 않았겠지만 이 선서를 하고 총통이 되었습니다.

17. 여기도 다시 한 번 찾은 만큼, 이번에는 전시실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쑨원 선생의 삶과 신해혁명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었지만, 그가 대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습니다.
청일전쟁 이후에 대만이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자 대만에서 일본의 지배에 항거하는 운동이 수 차례 일어났고, 이것이 훗날 쑨원이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합니다. 쑨원이 활동하던 당시에 대만은 '외국'이었지만, 쑨원은 대만에 방문하여 현지의 항일 운동가들과 교류했고, 쑨원의 삼민주의 이념이 거꾸로 대만의 항일 운동가들에게 자극이 되기도 했다 합니다.
제가 3일차 여행기에서 장웨이수이 선생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는데, 두 분의 삶을 비교한 표가 있어 사진으로 남겨 보았습니다. 장 선생이 의사였다고 말씀드렸는데, 쑨 선생도 원래 의사였습니다.

18. 시간이 생각보다 남아 시먼의 호텔로 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는데,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를 잠깐 들렀습니다.
역시 시먼에 있는 곳으로, 중산당이라는 건물입니다.
청나라 시절 타이완성 청사를 허물고 일제가 지은 연회장으로, 일본 패망 후에도 중화민국 정부에서 연회 및 회의 용도로 요긴하게 쓰다가 지금은 개방이 되어 있습니다. 일부는 갤러리로, 일부는 아직도 회의실로 쓰고 있었습니다.
음... 사실 볼거리는 별로 없습니다.

19.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사먹은 흑당버블티입니다. 정말 바람직한 맛이었습니다.

20. 호텔에서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단수이로 향했습니다.
단수이는 원래 대만의 개항장으로 개발이 되었지만 강의 토사가 많이 쌓여 항구의 기능을 상실하였습니다. 지금은 타이베이의 외항 기능을 지룽에 넘겨주었고, 어업과 관광업이 주요 산업입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비가 와서 일몰을 보지 못했는데, 이 날은 다행히 날씨가 맑았습니다.
다른 관광지는 예전에 가 보았으니, 이 날은 오로지 노을을 보는 데 집중을 했습니다. 여기의 풍경도 사진으로 온전히 담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21. 단수이에서 페리를 타면 강 건너편 마을인 바리로 갈 수 있습니다. 강만 건넜을 뿐인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22. 바리에서 사먹은 오징어튀김입니다. 한국인에게도 유명한 가게입니다. 갓 튀겨 바삭바삭하고 맛있었습니다.

23. 저녁으로 단수이역 근처에서 사먹은 철판구이입니다. 이제까지 먹짤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저는 왼손잡이입니다.
벌써 대만에서의 마지막 저녁식사... 열심히 먹고 다녔는데도 대만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습니다. 또 가고 싶어요...

24. 시먼으로 돌아와 아종면선 곱창국수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먹을 만은 했는데... 솔직히 저는 그냥 그랬습니다.

막상 다 쓰고 나니 그렇게 길지는 않네요.
6일차 후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질문 및 코멘트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8 22:3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