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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을 깔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이순신을 깔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영상전도사
등록일 : 2019-04-21 17:30:43 | 글번호 : 192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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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이미지 : 1개

이순신이 문안을 드리러 오자
어서 가서 나라의 치욕을 갚아라!
라고 한 뒤 슬퍼하거나 이별의 말을 하지 않았고
이순신이 투옥된 직후에는 아들을 걱정해서
직접 한양으로 가려했으나 뱃길이 험해서 갈 수 없다고 조카들이 말리자 83세의 나이에
" 배에 내 관을 짜서 넣고 간다!" 를 결행하신 분.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이순신에게 있어서 하늘과 같은 존재였음



댓글수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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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댓글 1 로이멜란따 2019-04-21 17:31:42
그 어머니에 그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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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댓글 찌피 2019-04-21 18:01:20
4/ 3/ 《난중일기》 병신년

① 3월 9일 : 저녁에 좌수사가 와서 이별주를 마시고 전송했다. 그런 뒤 술에 취해서 대청에 쓰러져 잤다. 종 개(介)와 함께 있었다(介與之共).

② 9월 11일 : 영광에 이르니 영광군수가 교서에 숙배(肅拜·왕에게 절)한 뒤에 들어와 함께 이야기했다. 내산월(萊山月)도 와서 만나고 술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③ 9월 14일 : 하루를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함께했다(女眞共).

④ 9월 15일 : 체찰사가 무장현에 이르렀기에 들어가 인사하고 대책을 의논하였다. 여진(女眞)과 함께했다(女眞共).

그런것 같습니다 그당시는 기생이나 여자시중을 옆에두는것이 당연한시대여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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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BEST 로이멜란따 2019-04-21 17:31:42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댓글 2 찌피 2019-04-21 17:53:32


댓글 3 온라인 질문법 마스터 2019-04-21 17:58:02
2/ 잘못된 해석을 보신 것 같습니다.


댓글 4 기분좋은 선가래 2019-04-21 17:58:24
2// 그땐 그랬던 시절이라..
지금 잣대로 판단하는게 우스운거죠


댓글 5 찌피 2019-04-21 18:01:20
4/ 3/ 《난중일기》 병신년

① 3월 9일 : 저녁에 좌수사가 와서 이별주를 마시고 전송했다. 그런 뒤 술에 취해서 대청에 쓰러져 잤다. 종 개(介)와 함께 있었다(介與之共).

② 9월 11일 : 영광에 이르니 영광군수가 교서에 숙배(肅拜·왕에게 절)한 뒤에 들어와 함께 이야기했다. 내산월(萊山月)도 와서 만나고 술 마시며 이야기하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③ 9월 14일 : 하루를 더 묵었다. 여진(女眞)과 함께했다(女眞共).

④ 9월 15일 : 체찰사가 무장현에 이르렀기에 들어가 인사하고 대책을 의논하였다. 여진(女眞)과 함께했다(女眞共).

그런것 같습니다 그당시는 기생이나 여자시중을 옆에두는것이 당연한시대여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댓글 6 orfeu 2019-04-21 19:04:48
5/ 여진 다음에 共 이라는 문구가 있다고요? 영인본에? 아님 다른 판본에?
아무도 그 십자 표시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데 무슨 근거로 그걸 여자 시중과 잤다는 해석을 하면서 전혀 그렇게 읽히지 않는 글자 共이라고 읽으려 하는지 그 근거가 궁금합니다.


댓글 7 레드향 2019-04-21 19:20:50
5/ 이거 해당 변역을 했던 기관에서 오역을 했다고 수정했던 번역 아니었나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댓글 8 레드향 2019-04-21 19:29:09
5/ 맞네요! 갖고 오신 해당번역은 오독이라는 것이 맞습니다....자료의 질은 항상 신경써야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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