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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노래 | 등록일 : 2022-01-10 21:36:42 | 글번호 : 98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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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이별의 인사 - 조용필




첨부 이미지 : 4개

첨부 동영상 : 5개


https://youtu.be/tac4yyD10Vw



https://youtu.be/x0ufz77nWRQ



https://youtu.be/9umDIosqDpE?t=16m04

영상 시작점 : 16분 04초~


https://youtu.be/LFvQdyfAIpU?t=1h28m04s

영상 시작점 : 1시간 28분 04초~


https://youtu.be/z7Juynt40d4


   2022년 1월 9일 민주 열사 故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열사가 향년 82세로 별세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배은심 열사는 ‘거리의 어머니’로 불리며, 아들 이한열 열사가 지난 1987년 6월 9일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세상을 떠난 이후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을 맡아 민주화운동 보상법 제정을 이끌어내는 등 평생을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21년 6월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습니다.

   1992년 10월 1일에 발매된 조용필 14집 2번 트랙으로, 박건호 작사, 조용필, 김영균 작곡, 조용필 편곡의 발라드 곡입니다. 이 앨범에서는 저번에 소개했던 ‘슬픈 베아트리체’, ‘고독한 Runner’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곡의 전주에 나오는 현악기는 ‘이호’라는 중국 전통 악기입니다. 지난 1988년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최초로 중공에서 공연을 가졌던 조용필은 이 악기를 처음 접했고, 연주를 녹음했습니다. 이후 1992년 정식으로 수교가 되면서 곡을 발표했습니다.
   이 앨범의 정식 발매 전 이 곡이 방송에서 선공개 된 적이 있었는데, 당시는 지금의 제목이 아닌 ‘나그네 사랑’이라는 제목과 완전히 다른 가사, 일부 다른 맬로디였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이 곡을 작사한 ‘박건호’가 자신의 책 <<오선지 밖으로 튀어나온 이야기(박건호 저), 1994>>에서 자세히 밝혀놓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조용필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호(二胡)’라는 중국 악기를 사용하여 음악을 만들었는데 그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달라는 것이었다. 이제 일주일 정도 있으면 미국(뉴욕)으로 공부하러 떠나려고 하던 중이라 망설여지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작곡가 김영광 선생이 부탁한 2편의 가사와 일요신문에 연재할 2회분의 원고와 문학사상에 발표할 수필 들이 밀려 있었는데 거기에 또 몇 편의 가사를 더 쓴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고 하며 멜로디를 가지고 그가 녹음하고 있는 서울 스튜디오로 갔다. 그는 나에게 그냥 허밍으로 부른 3편의 멜로디와 악보를 건네주면서 가사가 되면 그 중에 한 편은 8일 1시까지 KBS 토요 대행진 녹화장으로 보내 달라고 했다. 가사를 보고 즉석에서 노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조용필다운 발상이었다. 가사가 만들어지지도 않은 노래를 바로 방송에서 노래한다는 것은 다른 가수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가사가 어떻게 나올런지도 모르고 또 가사가 나왔다 해도 그것이 입에 붙으려면 며칠 동안 연습을 해야 하는데 가사를 보자마자 방송에서 바로 부른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얘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용필을 믿었다. 다른 사람이 여러 달 걸려 연습하는 것 보다도 그가 한번 보고 부르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다. 다만 내가 멜로디에 적합한 가사를 하루만에 만들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조용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으니 부탁을 했겠지만 부탁을 받은 내 입장에서는 여간 긴장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무드가 잡히지 않는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호텔을 잡아 밤을 세워가며 녹음 테잎을 수십 번도 더 들었다. 그러나 날은 부옇게 밝아 오는데 한 마디의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상하게 조용필이 부른 내 가사는 긴 시간을 두고 만든 것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단발머리’는 녹음실에서 취입 한 시간 전에 써놓고 성의 없다고 할까봐 도망가듯 나왔는데 큰 히트를 했다. ‘눈물의 파티’는 작곡가 이범희와 함께 지구 레코드사로 가는 차 중에서 만들었다. ‘마도요’라는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즉흥적으로 만든 가사가 오히려 큰 히트를 했다는 이유 때문에 갑자기 가사를 부탁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조용필도 그런 이유에서 부탁을 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튿날 나는 ‘나그네 사랑’이라는 가사를 들고 분장실로 갔다. 우선 그 가사로 방송에서 노래했고 그 이튿날 우리는 가사와 멜로디를 부분적으로 뜯어 고쳤다. 제목은 ‘이호의 사랑’이라고 했다. 그와 나는 물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만족해 했는데 오늘 생각하니 ‘바람같은 정’이라는 귀절을 ‘구름같은 정’이라고 바꾸고 싶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 하는데 미국에 가서 사무실로 전화를 하면 임시 취입이 끝났을 지도 모를 일이다.”
   조용필 14집은 1990년대에 발매된 조용필 앨범들 중 명반으로 손꼽히는 앨범 중에 하나로, 신해철은 14집의 조용필 목소리가 최고라고 라디오에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1988년 10집 Part.1, 1990년 12집 '90-VOL.1 SAILING SOUND, 1991년 13집 THE DREAMS , 1992년 14집은 조용필의 창작력, 음악성이 가장 잘 발현된 앨범입니다. 10집 Part.1, 13집, 14집은 조용필이 전곡을 작곡, 편곡을 맡았습니다. 그 이전 시기의 앨범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이 시기의 앨범에 대해서 당시 20대의 음악인들도 40대 조용필이 만든 앨범에 대해서 가장 진보된 사운드라고 평가했습니다. 예컨대, 윤상은 조용필 10집의 사운드에 대해서 기존에 한국에는 없던 사운드이며, 적어도 10년은 앞서간 사운드와 앨범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해철은 자신의 음악은 조용필의 영향을 받았으며, 자신보다 20살 많은 조용필에게 항상 새로운 사운드를 배운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조용필 14집이 발매된 1992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해였고, 가요계가 10대 위주, 댄스, 랩 음악 위주로 급격하게 전환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14집은 대중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고, 당시 조용필이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앨범 프로모션에 적극적이지 않기도 했습니다. 음악성이 잘 발현된 앨범이지만, 대중적으로는 이전만큼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위에서 소개한 박건호의 책에 언급된 내용이 두 번째 영상입니다.

<앨범 정보>
ARRANGED BY: 조용필
RECORDED AT: 서울 STUDIO, 한국음반
MANAGEMENT: PIL ENTERPRISE
ENGINEERED BY: 노양수, 박영호
PHOTO: 조상연, 박상훈
COMPUTER GRAPHIC: 조상연, 홍성훈
DESIGN: 유형배

(가사)
바람결에 꽃향기는 이렇게도 다정한데
하고픈 말도 다 못하고 쓸쓸히 바라만 보네

이제는 떠나갈 바람 같은 정이라 그립다고 하지 못하네
지금은 말없이 미소를 짓지만 돌아서면 울어야 하네

떠나려고 생각하니 그대가 너무 정다워

오늘도 슬픈 저 새소리 내 마음을 적시는데
우리 이제 할 얘기는 이별의 인사뿐이네

이렇게 다정히 미소 짓는 얼굴도 잊을 날이 있을 것인가
가슴에 자욱한 수많은 사연을 지울 수가 있을 것인가

떠나려고 생각하니 그대가 너무 정다워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2-05-19 18:36:06:


#조용필 #14집 #1992 #이별의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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