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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나를 만난 날, 나는 단골집에서 간단히 칵테일을 한잔 하고 있었다. 내가 마시고있던, 좋아하는 칵테일은 진 피즈란 칵테일인데 식후에 먹기에 딱 이다. 레몬과 탄산 진 시럽이 정말 잘어우러져 사람들이 맥주를 먹고 캬~ 할 때의 느낌이 뭔지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맥주를 못마시므로 이렇게 짐작이나 할 뿐이다. 진 피즈는 그렇게 쎈 술은 아니라 난 바에서 진 피즈로 입을 개운 다음 조금씩 도수가 높은 숏 드링크로 올려 마시는 방식으로 많이 마신다. 이 날은 진 피즈 – 맨하탄 – 싸제락 순으로 마시고 있었다. 싸제락을 입에 대기 시작할 무렵, 그 누나는 들어왔다.

우리는 안면이 있었다. 둘 다 단골집이어서 오며가며 많이 보인 얼굴이었다. 한번은 그 누나가 뜯은 샴페인을 그냥 단골끼리 나눠먹은 적도 있었다. 그 때 상황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는 그 바의 단골 치고는 매우 어린 편이어서 사실 단골들과 친하지는 않았다. 몇 분과 인사는 나누는 정도에 그쳤다. 그 누나랑은 얘기도 안해본 사이었다. 그 때도 단골들끼리는 같이 샴페인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내 팔짱을 꼈다. 누군가 보니 그 누나였다. 조금 취해서, 자기들 있는 대로 오라고, 같이 술이나 먹자는 눈빛을 나에게 보내었다. 그 누난 상당히 예쁘고 그런 여자들의 취할 때 나오는 애정 넘치는 눈 때문에 꽤 오랜 기간 기억되는 스킨십이었다. 나는 원래 스킨십을 별로 기억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그 때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다. 그 누나는 많이 취해있었다. 그러다 사장님이 바텐더 누나를 시켜 택시에 태워보내라 말했다. 보통이었으면 나는 내가 데려다 준다느니 아니면 밖에서 기다리던지 하며 기회를 엿보겠지만 상황이 달랐다. 나는 이 단골집에선 여자를 만난다던가 이 집에 여자를 데려온다던가 하는 짓을 하지 않았다. 이 곳은 정말 나의 제 3의 공간이었고, 온전히 내 시간을 가지고 술 한잔 하는 공간이다.

내 옆자리가 비어 누나는 자연스럽게 앉았더랬다. 이미 누나는 좀 취한 상태였다. 그러곤 나를 보며 눈 인사를 하더니 마티니를 시켰다. 나는 그냥 제조 과정을 보며 여러 생각을 하였고 그다지 누나를 의식하지 않았다. 그냥 마티니를 너무 빨리 마시는 것이 조금 걱정되는 정도였다. 바텐더 누나도 그걸 느꼈는지 조금 천천히 마시라 할 정도였다. 사실 마티니 같은 숏드링크는 15분만 지나도 맛이 가서 빨리 마시는 게 맞다고 볼 순 있지만 누나는 거의 10분만에 마티니를 비울 기세였고 이미 취해있었기 때문에 조금 신경이 쓰였다.

여자친구는 이 바에 온 적이 없다. 내가 방금 이 바에 대해 설명했던 대로 그녀에게 설명을 했고 그녀는 굳이 그걸 침범하려거나 우려하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자고 있었다. 내가 바에 올 때는 대부분 늦은 시간대니 그럴 만도 했다. 여자친구와의 카톡을 살짝 올려서 복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누나가 말을 걸었다.

“그 칵테일은 뭐에요?”

내가 싸제락을 다 마시기도 전에 그녀는 마티니 한잔을 비우고 나한테 말을 건 것이다. 그렇게 얘기가 오가게 됐다.

“아 이건 싸제락인데.. 클래식 칵테일이에요. 설명은 바텐더 누나에게 맡기겠습니다 하하”

바텐더 누나는.

“싫어 너가 해~ 몇 년을 마셨으면서.”

“알겠어요. 이건 압생트를 린싱한 잔에 라이 위스키와 설탕 비터 등으로 어찌어찌해 만든 칵테일이에요.”

“나도 저거 줘.”

이 누나와 바텐더 누나는 밖에서도 친한 친구로 알고 있었고 이 누나는 바텐더 누나보다 연상이었다. 바텐더 누나가 32살이었던걸로 기억하면 나보다 적어도 5살은 더 많은 것이다.

“취했어요. 그만 마시는게 좋을텐데.”

“딱 한잔만 마실거에요, 딱 한잔.”

“독한 술이에요.”

“괜찮아요. 보이는 것 보단 덜 취했을걸요. 그냥 힘들어서.”

“아무렴요.”

  그래도 사제락은 천천히 마시는 것 같았다. 뭐 아무래도 좋은 마음으로 나는 마티니를 시켰다. 남이 마시는 것을 보니 나도 마시고 싶어지는 그런 심리. 나온 마티니를 한입 마셨는데 누나는 또 말을 걸었다.

“맛있죠?”

“맨날 마셔봐서 뭐... 맛있죠.”

“패션 쪽에서 일하세요?”

“학생인데요.”

“그럼 패션 관련?”

“아니요 그냥... 전혀 관련 없어요.”

“아 제가 패션 쪽에서 일해서요. 그냥 센스 있으신 것 같아 물어봤어요.”

“고마워요.”

“뭘요.”

평소 보아오던 시크한 느낌의 대화는 아니었지만 뭐 여러 대화를 나누다가 정적이 좀 흘렀다. 그러다 누나는 갑자기,

“인스타에서 인터넷 공연 간 것 봤어요.”

“인터넷? 더 인터넷이요? 제 인스타?”

“네 팔로우 했거든요. 나는 안해주더라.”

“아 제가 팔로우를 잘안해요.”

“어쨌든, 저도 그 공연 갔어요. 맨 앞 줄에서 봤어요. 일부러 잘보려고 힐도 이따만한거 신고. 15분 서있다 후회했지만. 하하”

“어쨌든 인연이네요, 그럼 이번에 앤더슨 팩 공연은 갈꺼에요?”

“앤더슨 팩? 그게 누구에요?”

“앗 앤더슨 팩을 모르시다니.. 진짜 좋아요 잠깐 이어폰 껴보실래요? 틀어드릴게요.”

음악을 워낙 좋아하고 음악 얘길 하는 것도 좋아하다보니 나는 신나서 막 이런 저런 가수들의 노래를 들려주었다. 좋았던 것은 누나가 나와 취향이 매우 비슷하단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마티니의 데드라인을 한참 넘기며 누나와 이야길 했다. 누나는 잠깐 화장실을 갔고, 나는 누나의 화려한 킬힐을 봤다. 돌아오는 누나에게 나는

“공연 때 이거 신고 간거에요?”

“아닌데, 그건 다른거에요.”

“아, 이것도 엄청 높아보여서요. 이쁘네요. 어디꺼에요?”

“니콜라스 커크우드.”

“으아? 미쳤다! 나 완전 좋아하는데 저 거기 구두 두 개 있어요.”

“진짜 이쁘죠. 정말.”

“아 저도 구두 엄청 좋아해요. 우와 니콜라스 커크우드 아는 사람은 처음 봤어.”

별에 별 이야기가 다 오갔다. 우린 너무나 공통점이 많았다. 재밌는 건 내가 좀 더 내공이 깊어 좀 더 설명해주는 식이었다. 나는 이런 대화가 너무 좋았다.“

“당신과 대화하니니 잡지를 읽는 것 같아요.”

“맥심은 아니겠죠.”

“하하하”

음악 얘기가 나오자 나는 갑자기 클럽에 가고 싶어졌다. 나는 그냥 단순히 음악을 들으러 같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제안을 했다.

“클럽 가지 않으실래요?”

“클럽?”

“네, 진짜 재밌는 곳. 음악 정말 좋은 데 있어요. 근처에.”

“브라운?”

“알고 계시네요.”

“알죠,,. 근데 좀 취해서.”

“이제야 인정을 하시는군요. 근데 클럽은 취해서 가야 제맛이죠!”

“지금?”

“당연하죠!”

“그래 뭐 될대로 되라지.”

그렇다. 될 대로 되는 밤이 시작됐다. 여자친구는 잘자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5 15:3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