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쓴 글 중 줄거리 삭제한 이야기구요.
지휘자도 2번 바뀌고 합창단도 몇 번 바뀌었다고해서 걱정했는데 저렴한 값에 본다면 볼만합니다.



연출가 카를로스 바그너는 <로엔그린>을 원작에서는 중세 시대의 브라반트를 현대 사회로 가지고 왔다. 지도자가 없는 혼란 상황의 브라반트. 무대를 회의실로 표현했다. 하지만 회의장 뒤의 원형의 벽은 콜로세움 같은 이미지를 준다. 또한 그 위를 걸어 다니는 검은 옷을 입은 군인들을 통해 외부의 압력에 시달리는 브라반트를 볼 수 있었다. 원형 무대를 회전시켜 측면과 뒷면이라는 공간을 분리시켜 만들어냈다. 대중에게 공개된 앞면의 의회와 다르게 뒷면은 엘자와 오르트루트가 대화를 나누고, 엘자와 로엔그린이 대화를 그들만의 공간이자 의심의 씨앗이 뿌려지고 자라나는 터전이다.

이번 <로엔그린>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아야 할 인물은 ‘엘자’이다. ‘엘자’역을 맡은 서선영은 ‘객석’과의 인터뷰에서 “작품명을 ’엘자와 로엔그린’이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는 멘트를 남겼을 정도로 본 작품에서 엘자의 비중이 매우 크다. 이번 공연에서 ‘엘자’는 미성숙한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유아적 사고를 가지고 판단하며,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동생 살인죄로 기소되어 올라온 법원에서도 환상을 토대로 이야기할 뿐 논리적으로 본인을 변호하지 못한다. 이러한 미성숙한 모습이 무대에서 계속 노출된다. 첫 번째는 엘자의 의상이다. 제복과 양복으로 가득한 무대 속에서 파자마에 가디건을 걸친 모습은 마치 크리스마스에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가 생각났다. 또한 첫 등장과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왕관’은 종이 왕관이다. 둘째는 유아적 놀이 행태이다. 법원에 온 군중들이 떨어트린 종이를 가지고 판결 도중 종이 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결혼 장면에서도 '성인'의 결혼식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의 '결혼 흉내'와 비슷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면사포'를 쓴 상태에서도 결혼이라는 것의 진지함보다는 '면사포'를 장난감으로 이용하는 소꿉놀이 같았다. 놀이 행태 외에도 그녀가 고발된 죄명이 나올 때, 텔라문트나 왕이 노래할 때 숨는 모습은 마치 벼락칠 때, 어린 아이가 방구석이나 부모 품으로 도망가는 것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이는 극 이 진행됨에 따라 '로엔그린'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면서 유아적 행동의 빈도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로엔그린에 대한 '의심'이 엘자를 성인으로 성장 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연출가 카를로스 바그너는 이렇게 말한다. 엘자처럼 적시에 자기 꿈을 희생하면서 그가 진정 누구인지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고. 의심을 통한 엘자의 내적 성장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엘자의 모습에서 군중들과 왕이 말하는 ‘순결함’을 납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로엔그린’에 대한 카를로스 바그너의 해석은 ‘독재자’, ‘의심의 대상’이다. 연출 전반에 있어 브라반트의 그 누구도 ‘로엔그린’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기반을 두었다. 니체의 ‘철인’ 사상이 잘 녹아 있는 바그너의 극을 가지고 절대 권위자에 대한 반기를 든 연출인 것이다. 하지만 ‘로엔그린’의 성스럽고 고귀한 ‘권위’는 등장의 조명과 순백의 옷을 입었다는 것 외에는 무대에서 느끼기 힘들었다. 게다가 평면적인 소리가 전달력이 떨어져 아쉬움을 남겼다. 등장 인물의 특성이 쉽게 전달되는 것은 주연인 ‘로엔그린’보다는 무대 위에서 선명하게 나뉘어진 악역인 ‘텔라문트 프리드리히’와 ‘오르트루트’였다.

필립 오갱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는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음악도 극을 위한 시중’이라는 바그너의 말이 떠올랐다. 바그너는 극을 위해 모든 요소가 봉사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이탈리아 오페라의 형식에서 벗어나 독일인만의 무대를 만들고 싶어했다. 이러한 바그너의 특징 중 하나는 음악이 끊임없이 계속되는 ‘무한선율’ 같은 것들이 있다. 이러한 특징에 있어서 <로엔그린>은 과도기적 형식을 가진다. 오케스트라는 바그너가 작곡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며 섬세한 음악을 보여주었으나 조금 늘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긴 공연 시간과 그에 따른 관객의 집중력을 고려했을 때, 음악에 다이나믹과 같은 조미료를 첨가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00:3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