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옥상.

A4 3장쯤 되는 분량이더라구요. 처음 올려봐요 ㅎ.ㅎ...

--------

회사원 K는 담배를 물었다. 옥상에서 담배를 피며 도시를 멍하니 내려 보고 있었다.

'죽음'

K의 머릿속엔 사람이 떨어지는 모습, 차와 부딪히는 모습 등이 스쳐갔다.

그는 '죽는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살을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표현을 고친다. 그는 자살하려고 옥상에 올라간 건 아니었다. 단지 담배를 피고 싶었을 뿐이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그의 머릿속엔 영화 한편이 보여진다. 그 영화는 옥상에서 시작한다.

B가 옥상의 끝자락에 서 있다.

그는 그곳에서 추락하고 인도에 떨어진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른다. 비명소리, 비명소리, 비명소리.

시간 조금 흐르고 장례식장에는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인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그와 함께 떠드는 소리, 인사하는 소리, 고요한 소리들이 뒤섞인다. 각자의 슬픔들을 그려낸다.

시체는 불에 타 뼛가루만 남아 아무도 찾지 못하게 되었고, 그렇게 그의 몸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물질로서의 의미를 잃었다. 그의 유골은 관념으로만 존재했다. 그 가루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혹 중간에 뒤바뀌어 뼛가루가 아닌 쇳가루인지는 중요치 않으며,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보며 '여기에 그의 몸이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 외에는 사람들에게 의미를 주지 않는다.

그것의 존재는 그를 위한 걸까 남은 사람들을 위한 걸까?

그에게 묻고 싶지만 이미 죽어버린 주인공은 말이 없다.

시간이 흐른다. 그의 여동생은 결혼식을 치루며, 그의 아버지는 죽고, 그의 어머니는 백발의 노인이 된다. 그렇게 시간들이 흐른다.

K는 잠시 생각을 했다.

'모두에게서 잊혀진다'

잠시 외로움을 참고 우주를 그린다. 인류가 없어지고 지구가 없어지며 결국 남는 건 돌덩이들과 그것들의 움직임 뿐이다. 그것이 모든 존재들의 결말이라고 생각하니 외로움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스스로의 어이없는 합리화를 속으로 비웃으며 다시 영화를 본다.

B의 친구들은 동창회의 자리에서 매번 B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들은 그렇게 B를 기억한다. 그 기억과 함께 그들은 늙고 또 늙는다.

B의 절친한 친구가 창밖으로 담배를 핀다. 그는 백발의 노인이 되어있다. 노인은 B와 나눴던 이야기와 서로 교류하던 생각들을 추억한다. 노인의 삶에는 그가 새겨져 있다.

노인은 그 삶을 자식에게 전한다. 그 전해진 삶 안에는 B가 새겨져 있다.
그 자식은 또 그의 자식에게 삶을 전한다. 그것에도 그가 새겨져 있다.
그 자식은 또 그의 자식에게 삶을 전한다. 그것에도 그가 새겨져 있다.
그 자식은 또 그의 자식에게 삶을 전한다. 그것에도 그가 새겨져 있다.

백발의 노인은 죽었으며, 그 노인의 자식도 죽었고, 노인의 자식의 자식도 죽었다. 이제는 노인으로부터 세 대를 거쳐 태어난 자식과 그의 아들이 있다.

갑자기 영화가 멈췄다.

스크린이 거꾸로 돌아간다. B가 새겨졌던 그것들은 다시 땅으로 허물어진다. 되돌고 되돌아와 스크린에는 다시 영화의 시작이 비춰진다.

K는 잠시 멍해졌고, 다시 정신을 차리니 이번엔 다른 한 여자가 나온다. B는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출근을 한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버스기사 아저씨에게 해맑게 인사를 한다.

버스를 타며 강 건너편의 빌딩들을 본다. 여러 생각들에 빠지지만, 자신과 상관없는 그 생각에 깊이 빠지진 않는다.

회사에 도착한다. 일을 하고 사람들과 떠들며 다시 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여전히 기분이 들떠있다. 왠지는 모르겠는 이 기분에 음악을 들으며 아까의 버스를 탄다. 버스의 라디오는 서울 시내에서의 한 자살사건을 방송한다.

음악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그녀는 집에 오고 TV를 본다. 핸드폰도 본다. 습관적으로 켰지만 역시나 별 소식은 없다. 그것들을 끄고 책을 읽고 잠에 든다.

그녀는 늙는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엄마를 좋아한다.
그 아이는 자신의 엄마를 보며 자란다. 그녀도 결혼을 하며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는 자신의 엄마를 보며 자란다. 그녀도 결혼을 하며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는 자신의 엄마를 보며 자란다. 그녀도 결혼을 하며 아이를 낳는다.

맨 처음의 그녀는 죽었다. 그녀의 딸도 손녀도 죽었다. 그녀의 증손녀와 그 다음의 딸이 있다.

이전에 나왔던 노인의 증손자의 아들과 이번에 나온 여자의 증손녀의 딸은 대학교에서 만나게 된다. 둘은 마음이 잘 맞았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떠들었으며 밤늦게까지 시간을 함께했다. 그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다.

그 아이는 자라며 자신의 삶에 아버지를 새겼다. 그 아버지 삶의 한 곳에는 백발의 노인이 새겨져 있으며, 또 그 노인의 삶의 한편에는 B가 새겨져 있다.

그 아이의 삶에는 B가 새겨져 있다.

허나 그 아이의 삶엔 그의 어머니도 새겨져 있다.

그 아이의 삶엔 여러 사람들이 새겨져 있으며 그 안에 존재하는 그의 아버지에게도 여러 사람이 새겨져 있다. 그렇게 타인의 삶에 새겨진 다른 사람의 삶들을 여러 번 깊숙히 들여다보면 백발의 노인이 나온다. 그 노인의 삶을 들여다봤을 때 그 중 가장 크게 새겨진 것이 B이다.

이것이 B의 삶을 가장 크게 기억한 그의 친구로부터 시작되어 몇 세대를 거쳐 도달하게 된 현실이다.

B는 모두에게 새겨져 있다. 그렇다 한들 그들 중 누구의 삶을 가져와 "여기에 그가 새겨져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담배를 물었던 K는 담배를 다 태웠음에도 오랫동안이나 영화에 집중해 있었다. 잠시 어지러워 벤치에 계속 있었다.

그가 그래온 것처럼, 그 역시 몇 세대 후의 사람들에겐 기억되지 않는다. 여러 사람들의 삶에 새겨진 그는 점점 다른 이들과 섞이고 희석된다.

그는 그래도 자신의 존재로 '지금을 거쳐 가는 이 세상'을 유일하게 만들지 않냐는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를 길거리의 돌멩이와 건물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만들 뿐이다.

여러 생각들에 혼란스럽다.

K는 담배 한 개피를 더 태웠다. 그는 담배와 함께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멍하게 있었다.

그는 '죽는 것'을 생각했다.

심호흡을 크게 했다.

다시 아래를 내려다 봤다.

...

여전히 무서웠다.

그는 담배를 끄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5 11:2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