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화로 그릴 시간이 없어 글로 일단 썼습니다. 삽화라도... 시간 되면 올릴게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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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두 여배우 김과 심이 남몰래 베풀어왔던 기부가 거의 동시기에 밝혀져 화제가 되었다.

김은 희끗한 옆머리를 쓸어 넘기며 이렇게 말했다.
"끝까지 안 알려졌으면 했는데……. 아무튼 마음 아프고 상처 입으신 분들에게 제 기부가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합니다."
젊은 심을 찾아가자 그녀는 배시시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요? 솔직히 전 다른 분들처럼 어떤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한 게 아니에요. 그저 자기만족이었죠. 나도 이제 공인으로서 사회에 공헌한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게 됐고. 기부천사라는 별명을 내심 가져 보고 싶기도 했고……(웃음)."

노골적일 정도로 '솔직'했던 이 인터뷰가 신선한 기폭제가 되어, 심은 각종 CF에다 예능 출연 섭외가 끊이지 않는 등 그간 부동의 1인자였던 김의 아성을 넘볼 정도로 부상했다.
반면 드라마에서처럼 선량한 '국민 엄마'로 유명했던 김은 시청자들에게 '식상하다', '가식적이다', '고상한 척 한다'는 비난까지 듣다가 결국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인기 정상의 드라마에서 하차하기에 이르렀다.

1개월 뒤 나는 심의 성공 스토리를 취재하기 위해 다시 그녀를 찾았다.
"그때 그 인터뷰, 지금이야 잘 됐으니 망정이지 속물이라고 비난받으면 어쩌려고 그러셨습니까?"
"뭘요, 전 나름대로 철저하게 계산하고 한 말이었다구요. 요즘 세상은 말이죠, 순수함에 목말라 있다니까. 그런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먼저 '가식 없는 여배우' 이미지를 구축해서 선수를 치는 거죠."

나는 슬슬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솔직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허……. 지금 그 말씀 그대로 기사로 내보내도 괜찮은 겁니까?"
"봐요, 방금 이 말도 다 '솔직한 여자'라는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인 거야. 이래도 모르겠어요?"
심의 전략은 주효하여 이 인터뷰는 다시 한 번 사회적으로 '솔직녀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솔직녀' 기사가 나간 직후, 나는 김의 딸에게 긴급한 인터뷰 의뢰를 받고 그녀의 자택을 방문했다.
"아이고, 속 터져. 엄마, 그러니까 그때 저한테 했던 말 그대로 인터뷰했으면 됐잖아요. 엄마도 사실은 그런 평범한 동기가 있었다고 저한테 그렇게나 얘기했으면서. 미련하게 왜 정론을……."
딸이 앵앵대거나 말거나 김은 난초에 물만 주고 있었다.

"어머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사람 생각이 다 똑같지 뭐! 드라마 배역하고 똑같이 선한 사람이라고 칭송받고 싶다, 이혼 때문에 타격받은 이미지를 회복하고 싶었다, 내심 들켰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햐, 얼마나 솔직합니까. 지금 들어 보시면 알겠지만 심이랑 뭐 다를 바 있어요? 먼저 기사화만 됐어도 지금쯤……."
"이 계집애가. 후배가 잘 되면 축복은 못 해줄망정. 저리 가 있어."
딸은 자기 역할을 다했다는 듯 다소곳이 물러났다.

"……물론 그런 생각, 안 해본 건 아니에요. 가식 없는 이미지. 당시 대중의 추세를 봤을 땐 전략적으로도 충분히 걸어볼 만한 선택이었거든. 이제 와서 얘기지만 기자님이랑 인터뷰하기 직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말하려고 했어요."
"아, 아니 엄마! 근데 왜……."
김은 파릇하게 잘 가꾸어진 난초 옆에 기대어 섰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그렇게 말하면 진짜 숭고한 목표로 기부에 나서는 수많은 분들이 뭐가 되니. 지금 나처럼 한꺼번에 싸잡혀서 가식 덩어리, 위선자 취급을 받지 않겠니?"

데스크로 돌아온 나는 김의 도량에 새삼 감탄하면서 '세기의 명배우 김OO, 1개월 동안 숨겨온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김의 마지막 말까지 왔을 때 내 손은 불현듯 멈추었다.

나는 지금 몹시 헷갈린다.

김의 그 말.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그것도 나를 상대로 한 하나의 전략이었을까.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4 03:5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