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보고 오자마자 글 쓰고 있었는 데 날아가서 처음부터 다시 쓰네요...

임지영이라는 연주자는 퀸엘리자베스 콩쿨 우승 등으로 이미 유명한 연주자입니다. 가끔 기복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 데, 워낙 호평도 많고 퀸엘리자베스 콩쿨을 다 지켜봤기 때문에 잘하니 나름 기대를 하고 들뜬 마음으로 금호아트홀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들어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소리가 너무 단단해서 투박하다는 느낌도 종종 들지만 날카로울 때는 날카롭고. 마치 아이스 커피 같았습니다. 맛있는 아이스커피는 얼음이 녹아내림에 따라 맛이 변하면서 커피의 여러 맛이 부각되는 데 공연 보고 나오니 보헤미안 아이스 더치가 생각나더군요.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습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8번 G장조, Op. 30/3
Ludwig van Beethoven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8 in G major, Op. 30/3
Allegro assai
Tempo di Minuetto, ma molto moderato e grazioso
Allegro vivace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디베르티멘토
Igor Stravinsky Divertimento for Violin and Piano
Sinfonia
Danses suisses
Scherzo
Pas de deux

I N T E R M I S S I O N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1번 f단조, Op.80
Sergei Prokofiev Sonata for Violin and Piano No.1 in f minor, Op.80
Andante assai
Allegro brusco
Andante
Allegrissimo

카놀 시마노프스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녹턴과 타란텔라, Op.28, M30
Karol Szymanowski Nocturne and Tarantella for Violin and Piano, Op.28, M30
Nocturne. Lento assai - Allegretto scherzando
Tarantella. Presto appassionato - Meno mosso (espressivo ed affettuoso)

베토벤은 잘한다. 둘 다 잘하는구나 이 느낌이 들고 말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압도”당했습니다. 곡도 분위기가 가볍지는 않고, 파워풀한 곡이 많았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공연보다가 기가 눌려서 찍소리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처음이었습니다. 공연 시작 전에 로비에 사전 인터뷰 영상을 틀어주는 데 프로코피예프 곡을 통해서 전쟁에서 느꼈을 만한 것들을 표현하고 싶다했는데, 전쟁의 공포, 절망, 두려움, 그리고 그 속에서 실낱같은 희망과 같은 이야기를 잘 풀어냈습니다.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악보대 스탠드만 달고 조명은 다 낮춘 것도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좋은 퍼포면스였다고 봅니다. 김다솔의 반주는 처음에는 페달링이 너무 울림이 많다고 생각했는 데, 곡 후반부에 가서는 처음에 되려 울림이 적었으면 공연 임팩트가 약해졌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블 스탑이 포화처럼 난무하고, 프리즐렛이 계속 나오는 데 처음듣는 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주와 호흡 때문에 너무 즐겁게 들었습니다.

공연에서 또 놀란 것은 계속해서 악장과 악장 사이의 시간을 길게 가져가면서 기침할 시간, 멍때릴 시간 다 주면서도 임지영의 웃음기는 없이 침착하지만 여유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김다솔과의 호흡도 상당히 좋아 둘의 연주를 다시 볼 수 있다면, 꼭 방문하고 싶습니다. 임지영 협연을 보고 싶어서 수원시향 예매했는 데 정말 잘한 것 같습니다. 어서 다른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프로그램도 그렇고, 임팩트도 그렇고.. 어제 서울 시향 공연을 봤는 데 아직 임지영 공연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 내내 느낄 수 있었습니다.


p.s. 아이스 더치는 보헤미안 테이크 아웃이 가성비 최고라 생각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5 14:4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