랭보는 프랑스 시인으로, 이 시는 그가 16살 때 지은 시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배'(영어로 번역된 시 제목: The Drunken Boat) 입니다. 기타 해설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관심이 있으시면 제가 첨부한 번역본을 (Stepanchev 번역본) 살펴 보시기 권합니다.

Alan Jenkins와 Stephen Stepanchev의 영어 번역본을 참고했습니다. 프랑스어를 몰라서(...ㅜㅠ) 영어 번역본을 또 번역하면 원문과는 그만큼 더 거리감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했습니다. 몇몇 연에서는 번역이 좀 난해하기도 했고요.(몇몇 연은 두 번역본에서도 좀 차이를 보여서 옮겨 적기 애매했습니다.- 스스로도 이렇게 느끼며 번역한 부분은 가독성이 떨어질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영어 번역본은, 아무래도 영어이다 보니 한번에 뜻이 잘 와닿지 않는 듯하여 감상을 위해서는 '번역본의 번역'도 쓸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시를 읽으며 잔잔히 뭔가 느낀 적은 많았어도, 시처럼 배가 되어 운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어요.('너무 많이 울었네!' 부분부터 통곡..ㅠㅜ) 그래서 이 시를 공유하고 싶었고, 번역도 하게 되었습니다. 네이버에 치면 뜨는 한국어 번역본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제가 하게 되었는데, 이것도 미숙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감상하시고, 다른 데로 퍼뜨리지는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설명이 필요한 구절에는 (*1) 식으로 괄호와 번호를 달았습니다.


(5월 29일 수정- 18연~21연까지 네 연('작은 만들의 머리칼 속에~그리워지네' 까지) 수정. 두 번역본 말고 다른 영역본 하나를 더 참고해 종합했습니다. 제가 참고한 번역본 모두 '나'가 강조되어 있어서 언급한 연들의 번역을 그런 식으로 바꿨어요. 행의 순서가 다소 바뀌고 글이 좀 한번에 와닿지는 않겠지만, 이를 감수하고라도 어감을 위해 '나'를 강조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18~20연의 끝에는 '―'를 붙였습니다. 영역본에서는 모두 ';'가 붙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이 시에서는 ';'가 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 시에서는 '―' 부호가 세미콜론 부호에 해당하는 효과에 가까운 것 같았습니다.  

기타 몇몇 단어도 수정했습니다. 대부분 좀 더 나은 어감을 위해 바꾼 것입니다.)




취한 배


무심한 강물을 내려가며
나를 붙드는 밧줄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네― 소리 지르는 붉은 얼굴들은
선원들을 잡아 그들을 벗겨 못을 박았지,
손과 발뒤꿈치를, 채색된 말뚝에.

영국 목화와 플랑드르 밀을 운반했던 나는
모든 선원들에게 무관심했네.
선원들의 거슬리는 소음이 멈추었을 때,
나는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강물을 타고 거닐었네.

지난 겨울 내내, 나는 아이와 같이 합리에는 귀가 먹어 있었네―
닻과 키와 일지는 이미 오랫동안 배 밖에 있었다네.
일렁이는 거친 물결 속으로
나는 달렸네!- 나는 표류했고, 반도는 닻을 올렸지.

폭풍은 바다에서의 철야를 축복해 주었지.
나는 코르크보다도 가벼이 파도 위에서,
끝없는 무덤의 굴림대 위에서, 춤추었다네.
등대가 나를 환영하길 단 한 번도 바라지 않았다네.

어린아이에게 바람에 떨어진 사과보다도 더 달콤하게,
녹색 물은 내 소나무 선체에 차올라
나는 나의 판자를 토하고, 싸구려 와인을 토했네―
키와, 닻과, 인간의 규칙을 흩어 버리면서.

그때부터 나는 바다의 시(*1)에 잠겨 있었네.
그곳은 별들이 녹아든 우윳빛,
때때로 사색에 잠긴 창백한 익사자들이 표류하는
녹청색의 심연이었네.

푸르스름함을, 열에 들뜬 혼란을 물들이며
압생트보다도 더 독하게, 리라(*2)보다도 더 장대하게,
요동치는 한낮의 빛의 느릿한 리듬과
쓰라린 사랑의 붉은 얼룩들이 길을 동요시키네!

나는 안다네, 번개로 갈라지는 하늘을, 휘도는 물기둥을,
큰 파도와 해류들을. 나는 안다네, 밤을,
비둘기 떼처럼, 순수한 날개처럼 솟아오른 새벽을,
그리고 나는 보았네, 사람들이 보았다고 믿는 것을.

나는 보았네, 신비한 공포로 얼룩진 낮은 태양이
길고 응결된 보랏빛 구름을 비추는 것을,
먼 옛날의 배우들처럼,
베네치아 블라인드(*3)로 스며드는 빛과 같이 아득히 구르는 물결들처럼!

나는 눈부신 눈이 휘몰아치는 녹푸른 밤을 꿈꾸었네,
바다의 눈으로 느리게 올라오는 입맞춤을,
수액과 같은 해류들의 여정을,
푸른색과 금색으로 반짝이며 노래하는 형광체들을, 꿈꾸었네.

나는 큰 파도를 따라갔네, 여러 달 내내,
암초에 갑자기 들이닥친 미친 소떼처럼,
빛나는 옷을 입은 세 마리아(*4)가 다가와
헐떡이는 바다에 마개를 씌울 수 있으리라고는 희망하지 않고!

그래, 나는 믿기지 않을 이국적인 나라들과 부딪쳤지
그곳에는 사람 피부에 꽃들과 표범 눈이 뒤섞여 있었네!
바다 수평선 아래에서 녹색 가축 떼에 고삐를 채운
무지개들과도 만났네.

나는 보았네, 거대한 늪들의 들끓음을, 낮은 둑들을
썩어가는 풀에 리바이어던(*5)이 누워 있는 그곳들을!
바다의 잔잔한 곳으로 떨어지는 물과,
폭포가 균열된 골로 향하는 그 아득함을!

빙하들, 은빛 태양들, 진줏빛 파도들, 석탄같이 이글거리는 하늘들,
고동색 만 바닥의 끔찍한 잔해들,
그곳에는 큰 뱀들이 붉은 벌레에게 먹혀
비틀린 나무에서 떨어지고 검은 향기를 뿜네!

푸른 물결을 일으키는 그 돌고래들, 금빛의 그 물고기들, 노래하는 그 물고기들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네.
꽃모양 거품은 나의 항해를 감싸 안았고
형언할 수 없는 바람의 휙휙거림은 때로 내게 날개를 달아 주었네.

내가 극지방과 여러 지역에 질려 고통받았을 때
나의 뒤척임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 훌쩍이는 바다는
그의 노란색 빨판 달린 어두운 꽃들로 나를 올려 보냈고
나는 떠밀려 나아갔지, 무릎 꿇은 여인처럼 가만히…

반도에서, 나는 떠들썩한 해변에서
금색 눈의 새떼들의 소란스러움과 똥 무더기를 뒤흔들었네.
나는 나의 썩어가는 밧줄들을 가로질러,
익사자들이 뒤로 가라앉으며 잠들 때까지 나아갔네!…

작은 만들의 머리칼(*6) 속에 이제 길 잃은 배인 나는,
폭풍에 내던져져 새 없는 창공으로,
경비정들도 한자동맹(*7) 선박들도 건지지 않을
취한 시체의, 나는―

시인들에게 훌륭한 대접인
태양의 이끼와 푸른색 점액이 섞여 흐르는
붉은 하늘의 벽을 뚫은,
자유롭게, 연기 뿜으며, 보랏빛 안개로 뒤덮인, 나는―

칠월 여름의 군청색 푸르른 하늘이 타오르며
물보라를 무두질할 적에,
전기가 흐르는 초승달들로 얼룩진 채
미친 표류물처럼, 검은 해마의 호위를 받으며 달렸던 나는―

오십 리그 밖의
발정기 베헤못(*8)의 울음소리와 폭풍에 떨었던, 나는
유리 같은 푸른 색으로 영원히 실을 꿰어 왔던
나는 오래된 부두들이 있는 유럽이 그리워지네!

나는 별들이 떠 있는 군도를 보았네!
섬들과 그 섬들의 항해자에게 열린 열에 들뜬 하늘을 보았네,
―그대가 유배되어 잠자는 곳은 이 끝없는 밤인가?
수많은 황금빛 새들이여, 오 미래의 활기여―

그러나, 참으로, 나는 너무 많이 울었네! 새벽이 마음을 에네.
달은 매번 고통스럽고, 태양은 매번 쓰라리네.
쓰라린 사랑은 취한 마비 상태로 날 부풀려 놓았지.
아, 나의 선체가 부서져 이 삶을 바다에 놓아 버리기를!

유럽의 물 중에, 내가 원하는 곳은 하나라네.
검고 차가운 웅덩이 옆에, 슬픈 한 작은 아이가 웅크려,
향기로운 황혼이 다가올 무렵,
몸을 굽혀 오월의 나비처럼 약한 종이배를 띄우는 그곳.

오 파도여, 그대의 무기력에 젖어,
나는 더 이상, 긴 여행을 가는 목화 운반선들의 항적을 따를 수 없네,
커다란 배의 오만한 깃발과 신호탄을 대면하고 나아갈 수도,
감옥선들의 끔찍한 눈들 아래에서 수영할 수도 없네.



1. 바다의 시: '시'는 창조'를 암시합니다. 바다는 생명의 '어머니'로 해석될 수 있는데 이 단어는 프랑스어의 '어머니'라는 단어의 발음과 같다고 합니다. (번역본 해설 참고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저는 프랑스어를 몰라요..;)

2. 리라: 시에 대한 은유인 듯합니다. 제가 참고한 다른 번역버전에서는 '리라보다도 더 장대하게'라는 구절이 '시보다도 더 헤아릴 수 없이(more measureless than our verse)'라고 나와 있습니다.

3. 베네치아 블라인드: 인터넷 검색하시면 이미지가 나옵니다.(ㅋㅋ;;) 제가 참고한 두 번역본에서 베네치아 블라인드라는 표현이 직접적으로 나온 것은 아닌데, 번역의 설명을 보고 이렇게 적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을 그대로 이렇게 적는 게 이미지 상상에 제일 좋을 것 같았어요.

4. 세 마리아: 세 마리아가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를 건너 Camargue(프랑스 남부 지방, 말과 소로 유명)에 도착했다는 전설과 관한 구절입니다. 이 설명도 번역본의 설명을 옮긴 것입니다.

5. 리바이어던: 성경 속에(욥기) 나오는 괴물.

6. 머리칼: 해초에 대한 비유입니다.

7. 한자동맹 선박: 결말과 시의 맥락을 생각했을 때에는 동맹과 관련된 배들이 '상선'임이 중요한 듯해요. 그냥 '상선'으로 이해해도 아주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아요. (확실하지는 않지만..)

8. 베헤못: 하마를 닮은 성경(욥기) 속의 짐승.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19 23: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