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저는 국문과나 일문과 전공자가 아니고, 일본에 와 있는 교환학생입니다. 원작 소설을 읽었고 일본어는 대충 들리는 정도여서 대강의 흐름은 따라가지만, 세부적으로 놓친 부분도 많을 수 있으니 감안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워낙 유명한 소설이니 스포일러는 신경 쓰지 않고, 반대로 일일이 내용을 다 설명하는 데 치중하지도 않고 적당히 써 보겠습니다.

푸른문학(青い文学) 시리즈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 여섯 편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시리즈(2009년)입니다. '마음' 편은 그 중 일부로, 두 편으로 나뉘어 한 DVD에 들어 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자전거 타고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DVD 대여점 책장에서 이 시리즈의 ‘마음’편과 ‘인간실격’편을 찾았습니다. 마침 원작소설을 읽었고(‘마음’은 두 번 이상) 일본어도 전공수업 알아들을 정도는 되니, 보고 나서 이 게시판에 소개해 보고 싶었습니다.

나츠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는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로, 예전 천엔짜리 지폐에 나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현재 천엔 지폐에는 노구치 히데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여서 전부터 이 사람 소설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었는데, 지식이 짧아서 가만히 있다가 이번에 소개해 봅니다. 원래는 도쿄대 영문과를 나와 영어교사로 일하고, 영국으로 국비유학을 다녀온 후 대학 강사 등으로 있다가 뒤늦게 작가의 길로 들어선 사람입니다.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도련님'등의 초기작으로 시작, '산시로'-'그 후'-'문'의 전기 3부작, '피안 지날 때까지'-'행인'-'마음'의 후기 3부작 등을 거쳐 '명암'을 연재 중 사망했습니다. 쭉 읽어보면 소설들이 어느 정도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자기 소설의 제목을 대충 지었던 소설가이기도 합니다. 평이하게 시작했다가도, 삼각관계의 연애 등을 통해 심리묘사를 풀어내는 걸 읽고 있으면 어느새 빠져들곤 했습니다. 작품에 해피엔딩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몇 안되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 소설인 '풀베개'(문체), '문'(내용)을 가장 좋아합니다.

캐릭터 원안 : 오바타 타케시(小畑健) (‘데스노트’ 만화가, ‘인간실격’편의 그림 원안도 맡음)
각본 : 아베 미카(阿部美佳)

# 목소리 출연
선생 : 사카이 마사토（堺雅人)
K : 코야마 리키야(小山力也) // 소설 읽을 때는 창백하고 음울한 모습을 상상했는데, 우락부락하게 나와서 기겁함...;;
아가씨 : 쿠와시마 호우코(桑島法子)
미망인 : 츠다 쇼우코(津田匠子) // 생각보다 할머니로 그려진 듯. 딸과의 나이차를 생각하면 40대 중후반 내지 더 젊은 부인으로 생각했는데 백발이라니;;;

주인공 ‘선생’ 역의 성우 ‘사카이 마사토’가 시리즈의 다른 편에서도 주인공 역을 맡아 전체를 묶어주는 느낌이 있다고 해서 누군지 찾아봤더니, 배우로 더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장편소설 한 권을 20분짜리 애니메이션 두 편으로 만든다니, 제대로 내용을 담을 수나 있을까’하며 시큰둥하게 별 기대 않고 봤습니다. DVD 하나에 ‘여름’과 ‘겨울’ 편이 나뉘어 들어 있습니다. 그냥 보고 있으면 이어져서 재생됩니다.

원작소설은 선생과 나-양친과 나-선생의 유서를 통한 ‘선생’의 과거사의 세 부분으로 나뉘었는데, 본 DVD는 그런 건 깡그리 무시하고 다짜고짜 (원작소설에서 유서의 내용인) 선생의 과거사로 시작합니다. ‘나’는 나오지 않고, 선생의 과거의 핵심 부분만 짚은 것이 전반부 ‘여름’편이었습니다. 이어지는 ‘겨울’편에서는 세월이 흐르고 ‘나’와 대화하는 부분이려나 했는데, 예상외로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소설과는 다른 매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고 느껴서 의외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원작소설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개인적으로는 ‘선생’의 쓸데없는 오지랖 때문에 이 모든 비극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DVD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하숙집에서 잘 살고 있다가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K를 선생이 굳이 불러들여, “여자는 관심없음”하며 마법사의 길(;;;)을 걷던-‘정진하고 있다’고 나오니 비슷할지도?- K가 하숙집 아가씨를 좋아한다고 난생처음 적극적인 표현을 하니 그제야 선생이 화들짝 놀라서 절친의 뒤통수를 친 게 (대놓고 조금 거칠게 썼지만) 사건의 전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소설에서는 선생이 직접 K에게 ‘향상심’운운하며 K를 간접적으로 자극해 K가 자살하게 된 걸로 기억하는데(지금 소설이 없고 기억나는 대로 써서,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DVD에서는 선생이 먼저 말하겠다고 해 놓고 말 안하고 있는 사이에 미망인-하숙집 아가씨의 모친-이 K에게 ‘혼담’얘기를 하면서 직접적으로 자극해서 같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하숙집 아가씨의 모친인 미망인의 비중이 크게 나온 것도 소설과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후반부 ‘겨울’편을 보기 전에 위의 내용들을 급하게 쓰고 나서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여름 편이 선생의 시점이었다면, 겨울 편은 같은 사건을 K의 시점에서 따라가고 있습니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덤불 속’처럼 같은 사건을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충격을 몇 년만에 이 DVD에서 느꼈습니다. 원작소설에서도 저는 선생이 모든 일을 자초했다고 생각해서 그다지 동정하고 공감하지 못했는데, DVD의 겨울 편을 보고 소설에서도 K가 이렇게 느꼈을 수 있구나 하고 나니 주인공인 선생보다도 K를 동정하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애니메이션에서는 K는 이상한 도인이 아니고 그냥 순진한 모태 솔로였습니다. (ㅠㅠ) 오히려 선생이 대단히 싸늘하게 나왔습니다. 그럴 거면 애초에 집에 들이질 말던가, 정말 여름 편의 K 말마따나 “나 같은 놈이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하고 묻고 싶어졌습니다. 결말은 같지만, 굉장히 다른 느낌의 두 시각이었습니다. 여름 편 끝의 결혼사진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선생은 그렇다 치고, 왜 아가씨의 표정까지 어두운 걸까 했는데 겨울 편을 보고 나서 납득했습니다.

우리나라 소설을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등 다른 장르로 변용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이전부터 했었는데, 이웃 섬나라 걸 보고 나니 꽤 부러울 정도였습니다. 단순히 어린이용 학습만화 수준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동네 대여점에 시리즈 전편은 없지만, ‘마음’ 옆에 있었던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다음 ‘문학’ 카테고리에 쓰는 감상으로 하겠습니다. 당장은 아니고, ‘마음’의 여운이 가라앉을 때쯤 되면 볼까 합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4-25 03:0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