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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SF는 새로운 문학의 꿈을 꾸는가
[문화비평] SF는 새로운 문학의 꿈을 꾸는가
글쓴이 : 대학원신문 | 등록일 : 2018-06-19 23:11:20 | 글번호 : 9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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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새로운 문학의 꿈을 꾸는가

     

이지용(SF연구자, 인문학협동조합)

     

SF라는 장르의 이해

     

SF(Science Fiction)라는 단어는 언제 처음 등장했을까, 현재까지는 윌리엄 윌슨(William Wilson)이 그의 책, 󰡔A Little Earnest Book upon a Great Old Subject󰡕(1851)에서 처음으로 언급한 것으로 밝혀져 있다. 그는 과학으로 인해 드러난 진리들이 본래 시적이고 진실하며 즐거운 이야기와 얽히고 설킨 것이라고 SF를 정의하고 있다. 이후로 메리 셸리(Mary Shelly)󰡔프랑켄슈타인(Frankestein)󰡕(1818)이나 쥘 베른(Jule Verne)󰡔해저 2만리(Vingt mille lieues sous les mers)󰡕(1869), H.G 웰스(H.G Wells)󰡔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1898)과 같은 작품들이 등장했고, 이들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음과 동시에 SF라는 장르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준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SF가 장르적인 특징을 정형화하게 된 것은 20세기 이후 미국의 SF 작가이자 편집자인 휴고 건즈백(Hugo Gernsback)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건즈백은 1923년 잡지 과학과 발명(Science and Invention)에서 ‘scientifiction’ 특집을 마련하여 SF과학적 사실과 예언적 비전이 뒤섞인 멋진 로맨스라고 정의하고 이에 부합하는 작품들을 소개했다. 이후에 SF 전문잡지인 어메이징 스토리즈(Amazing Stories)를 창간해 장르로서의 특징을 정형화하기 시작하면서 SF는 장르로서의 본격적인 발전을 시작했다. 이후 SF는 미국을 중심으로 발전을 거듭해 영미권에서는 교과과정에 작품들이 수록되고, 독자참여 비평과 같은 형식들과 전문 비평을 거치면서 다양한 담론들을 섭렵해 장르의 외연을 넓혀가며 성장했다. 잡지시대의 이후로 영상매체와의 결합으로 인해 새로운 의미들을 파생하기 시작한 SF는 현재 다양하게 발달한 매체의 중심 서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전 세계적인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드라마 <스타트랙(Star Track)> 시리즈나, <닥터 후(Doctor Who)> 시리즈 그리고 영화 <스타워즈(Star Wars)> 시리즈를 비롯해, 최근 한국에서도 흥행을 거듭하고 있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영화들을 비롯한 헐리우드 영화의 상당 부분이 SF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필립 K. (Philip K. Dick)이나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들까지 열거하면 특히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영상예술에서 SF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영미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앞서 밝힌 영화나 드라마들은 한국에서도 개봉과 동시에 흥행지표의 상단을 장식하는 영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마블의 영화들이 한국을 의식하여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영화의 배경으로 한국을 의식해 삽입하는 것은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SF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1907년에 쥘 베른의 󰡔해저 2만리󰡕를 번안한 해저여행기담(海低旅行埼譚)이 일본 유학생들의 소식지였던 태극학보(太極學報)에 실리면서부터 시작된 한국의 SF지만, 헐리우드 SF 콘텐츠에 대한 관심이나 영미권 SF 장르에 대한 관심에 비해 한국의 SF에 대한 이해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1907년이라는 시기에서 확인할 수 있듯, SF는 한국 근대문학 형성기부터 있어왔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속문학, 혹은 대중문학으로 분류되거나 아동·청소년에게 꿈과 희망, 혹은 과학기술 계몽을 위한 문학이라는 프레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채 백 여년의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대중적인 관심과 함께 제도권의 담론에서조차 관심에서 멀어져 한국에서 SF는 잃어버린 장르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이야기라는 허상

     

이렇게 한국에서 SF는 인식의 주변부로 유리되어 망각되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SF를 소개할 때 새로운 이야기로 인식시키려는 경향이 존재한다. 실제 201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인 상식의 속도SF 장르의 자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작품이다. 작품 내에서 사용된 세계관이나 소재, 이야기의 구성 방식 등은 SF 장르가 누적해 온 요소들을 활용한 것이었다. 장르의 자장 안에 있는 작품은 장르의 코드(code)와 관습(convention)을 유용하는 것을 창작방법론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의 익숙함은 작품의 가치를 논하는 판단기준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심사평은 한국이 SF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인지를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장르를 넘나든다는 언급이 되긴 하였으나 누구도 가보지 못한 소설 문학이라는 수사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러한 언급을 통해 SF는 한국의 소설 문학의 범주 내에 여전히 편입되지 않았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도입 된지 백여 년이 지났고, 그 사이에 꾸준히 그것도 여러 가지 형태들로 발전을 거듭해 온 장르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새로운 이야기라고 소개하는 것도 기만적인 일이다. 누구도 가보지 못한 소설 문학의 지평에는 이미 백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터를 잡고 터전을 일구던 존재들이 있었다. 영미권에서 일본이나 중국을 거쳐, 한반도 테라포밍(Terraforming)에 성공한 SF라는 장르는 다양한 시도들을 거치며 발전하고 있었다. 쥘 베른의 작품이 들어온 뒤에도 SF는 다양한 의미들로 한국 문학의 범주 내에 머무르고 있었다. 신소설 작가이자 민중계몽운동가 였던 이해조가 쥘 베른의 󰡔인도 왕비의 유산(Les Cinq cents millions de la Bégum)󰡕(1879)을 번안한 󰡔철세계(鐵世界󰡕(1908)를 발표했다가 금서처리가 되는 역사와 한글 문학의 질곡과 함께 했으며, 카프(KAPF) 소속 작가였던 박영희는 체코의 SF 작가인 카렐 차페크(Karel Čapak)의 희곡 󰡔Rossum’s Universal Robots󰡕(1920)를 번안해 인조노동자(人造勞動者)(1925)라는 제목으로 소개하며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형태로 의미부여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robot’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김동인은 K박사의 연구(1929)는 이전까지의 번역과 번안 작품에서 벗어나 한국 최초의 순수창작 SF였다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해방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전후, 문학담론에서 개인과 새로운 형식들에 대한 실험적인 시도들이 이루어지던 시기인 1965, 주간한국에서 주최한 추리소설 공모전에서 당선된 문윤성의 󰡔완전사회󰡕라는 첫 장편 창작 SF가 등장했다. 이를 장르적인 해석을 통해 의미부여 하려는 시도는 눈에 띠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순수 창작 장편 SF라고 할 수 있는 문윤성의 󰡔완전시대󰡕1980년대 절판 된 뒤, 20185월에 복간되었다.) 뿐만 아니라 방정환이 발간한 잡지들에서 소개되었던 SF 장르의 동화들이나 노양근의 날아다니는 사람(1936)이나 한낙원의 󰡔잃어버린 소년󰡕(1964), 󰡔금성탐험대󰡕(1967)와 같은 작품들이 아동·청소년 문학으로 소개되면서도 장르적인 해석은 요원한 것이었다. 장르에 대한 인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던 소위 주류문단은 이와 같은 작품들을 독특한 이야기 형식등으로 치부하며 주변부로 밀어내는 것으로 일관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SF는 계속해서 그 외연을 넓혀왔다. 복거일은 문단에 소속된 작가로서 1987SF의 하위장르인 대체역사소설(alternative history fiction) 󰡔비명을 찾아서󰡕를 발표했다. 그는 소설의 서두에서 이와 같은 장르적 특징에 대해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관련 정보들을 통해 나타난 것은 역시 독특하고 새로운 발상이나 이제는 문화예술의 마스터키처럼 되어버린 포스트모더니즘적인 방식의 상상력으로 정의되고 만다. 이러한 해석들에 대한 당위성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장르의 특성을 그대로 차용했고 작가가 그것을 밝히고 있음에도 장르적 의미에 대한 해석과 의미부여를 굳이 우회하는 현재 한국의 모습은 쉽기 이해하기 힘들다. 이러한 것들은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문학이 스스로 자신들의 범주가 협소하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라는 허상은 어쩌면 우리의 무지(無知)가 투영된 부끄러운 모습일지도 모른다.

     

SF는 새로운 세상의 꿈을 꾼다

     

그러기 때문에 SF는 더 이상 한국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외부로부터 유입되었지만, 오랜 시간 동안 현지화를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족적을 남기며 발전해 왔음을 인식하고 이러한 인식들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의 SFPC 통신 이후로 생겨난 사이버스페이스 내에서는 본격적인 성과들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인 듀나(DJUNA) 미메시스(1994), 시간을 거슬러간 나비(1994), 시간여행자의 허무한 종말(1994)과 같은 작품들을 하이텔에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또한 이 시기 활동 하던 맴버들이 주축이 되어 20185월에는 한국SF협회가 출범했다.) 또한 2004년에 재정되어 3회 만에 종료된 과학기술 창작문예를 통해 데뷔한 김보영, 박성환, 배명훈, 김창규, 정소연과 같은 작가들은 현재 한국 SF를 지탱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현재 한국과학소설작가연대의 임원을 역임하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그동안의 한국의 열악한 환경에서 웹진 등을 통해 꾸준하고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하지만 꾸준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단행본을 갖는데 10여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한국에서 SF가 얼마나 척박한 환경을 버텨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버텨내는 사이, 가능성들은 싹은 틔웠다. 현재 한국에는 한 해 동안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는 ‘SF어워드’, 신인들의 등용문이 되는 한국과학문학상’, 그리고 아동문학의 영역에서 한낙원문학상과 같은 구조들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구조들은 작가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하고, 좋은 작품들을 큐레이션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제까지 한국에 SF 작가와 작품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에 대해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졌던 문제들을 완화할 수 있는 구조들이 마련된 것이다. 이 역시 그동안 한국 SF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달할 수 있었던 지점이다.

SF는 시대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산업혁명 이후 시대의 변화는 과학기술에 의해 추동되었지만, 한국은 그것이 대중적인 인지의 영역으로 넘어오는데 다소 지연된 감이 있었다. 현재 우리는 과학기술에 의해 촘촘하게 짜인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활하고 있다. 과학기술에 의해 그려지는 미래는 더 이상 공상(空想)도 아니고 허황된 것이 아니다. 과학기술은 실재이며, SF는 그것을 통찰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론이다. 더욱이 SF는 독자들을 자극하여 현재 상황과 기존의 생각들을 뒤집을 수 있는 사고 실험을 제시하여 지적 반응을 보이고 실제 움직이게 한다. SF 작품을 통해 구축하고 제시하는 상상력은 문화적·이데올로기적 환경 내의 변형들에 대해 대응하면서 만들어지는 장르적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들은 SF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인공지능이 인간과의 바둑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고, 첨단기술로 추동될 새로운 혁명이 도래했다는 이야기들이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블록체인은 우리의 생태계를 바꿀 것이라 예견되고 있으며, 쥘 베른이나 웰즈가 상상했던 심해와 우주는 머잖아 일상의 공간으로 편입될 수도 있다. 이러한 세상의 변혁 속에서 SF는 새로운 문학의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백여 년 동안 이 땅에서 문학이었고, 다양한 의미들을 내포하면서 발전해 왔기 때문에 그 땅에 발을 딛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우리는 SF가 이야기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즐기고, 그것들을 통해 발현되는 사고실험들을 사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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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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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불완전연소 2018-06-23 02:18:01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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