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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지금, 우리가 무협을 읽어야 하는 네 가지 이유
글쓴이 : 대학원신문 | 등록일 : 2018-05-16 14:06:12 | 글번호 : 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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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무협을 읽어야 하는 네 가지 이유

 

-서원득(연세대학교)

 

매달 나오는 무협 신작을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한국 무협소설의 인기는 저물어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무협 읽기’는 필요하다. 무협은 장르문학사상 언제나 가장 중요한 국제적 문화체계 중 하나였고, 지금도 우리 시야 밖에서 왕성하게 살아있으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중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무협의 중요성은 크게 네 가지 면에서 논해질 수 있다.

첫째, 무협을 통해 한국 남성 독자들의 의식구조를 살펴볼 수 있다. 사실 무협은 오랜 시간 동안 ‘아저씨나 보는 삼류소설’ 취급을 받아왔다. 현대 무협은 남성독자 위주로 굴러갔고, 그 남성독자의 나이대 또한 다소 높은 편이다. 게다가 무협은 김용과 같은 소수를 제외하면 대개 사회 내에서 삼류 소설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그러니 무협에 대한 편견 자체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무협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한국에서 무협은 그렇게 50년간 읽혔다.

중국의 ‘근대’무협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소개 된 것은, 김광주가 대만의 무협지를 번역, 번안하기 시작한 1960년대 초다. 그렇게 번역된 무협지들은 당대에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다. 수요가 생기면 공급이 따르는 법. 60년대 중후반부터 화교들은 대만 무협소설가 와룡생의 작품을 중심으로 막대한 양의 무협지를 한국에 들여왔다. 나아가 197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독자적인 무협지가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대 현재에 이르기까지 흥하고 쇠함의 차이는 있지만, 무협은 지속적으로 남성 독자들 사이에서 창작-소비되어 왔다.

이와 같이 무협지는 남성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창작되고 소비되었기 때문에, 한국 남성 독자의 의식구조와 감정을 드러내는 자료로 볼 수 있다. 1960년대 이래 각 시대의 무협은 전반적으로 어떤 주인공 상을 상상했는가? 그리고 어떤 ‘구조’의 무림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했는가? 그 집단적인 생각의 의미는 무엇인가? 물론 의식과 감정에 대한 연구는 무협 소설의 출판 맥락 연구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무협지의 유통구조는 지속적으로 변해왔다. 60년대에는 주로 박스에 무협지를 담아 파는 형식이었다. 80년대에는 주로 대본소가, 90년대부터는 대여점이 흥성했다. 2010년대부터는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한 웹소설 체제가 성립되었다. 시기마다 독자층이나 요구하는 형식은 달랐으며, 유통 체제의 변환기마다 무협의 서사구조 또한 어느 정도 바뀌었다. 그럼에도 무협은 언제나 독자들의 소망을 담고 있기에, 무협을 통해 당대 남성의 의식과 감정을 보는 일 자체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둘째, 무협은 스스로 깊은 전통을 만들어냈다. 무협(武俠)이라는 용어가 근대적으로 쓰인 것은 1917년 린수(林紓)의 <부미사>(傅眉史) 때부터로, 굉장히 짧은 역사를 가진 듯 보인다. 무협이라는 장르명을 달고 창작된 본격적인 무협소설은 1923년도 평강불초생(平江不肖生)의 <강호기협전>(江湖奇俠傳)이 최초인 정도다. 명청(明淸) 시기만 해도 무협소설(武俠小說)이라는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협소설에는 무협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보다 더 깊은 전통이 있다. 현재 무협소설의 정의를 둘러싼 논의는 분분한 상태지만, 사람들이 무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과 생각하지 않는 작품의 경계는 의외로 명확하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무협소설가 좌백이 내린 무협의 정의는 그 핵심을 제대로 집어낸다. 그에 따르면 “무협이란 중원에서 펼쳐지는 무와 협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이다.” 여기서 무(武)는 장르의 소재를, 협(俠)은 장르의 정신을 상징한다. 중국에는 협(俠)을 과대평가하는 연구가 많은데, 실제로 무협에서 중요한 것은 무(武)이다. 무협에 협의 정신이 없을 수도 있다. 무협의 주인공이 꼭 협객이라는 법은 없으니까. 허나 무술이 안 나오는 무협은 존재할 수 없다. ‘중원’은 무협의 배경을 지정한다. ‘과장된 이야기’는 장르의 범위를 지정한다. 중원에서 무와 협을 다루는 이야기로는 삼국지와 같은 역사소설과 봉신연의 같은 선협소설도 있다. 허나 전통적으로 역사소설과 선협소설은 무협소설과 분리된다. 이는 무협소설의 과장된 이야기에 어떤 범위가 있기 때문이다. 무릇 무협소설이라면 역사소설이라고 느껴질 만큼 리얼하지는 않으면서도, 신선이 나올 만큼 허황되어서는 안 된다.

중국의 연구자들은 각기 다른 무협의 정의를 가지고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좌백의 정의 안에서 무협 텍스트들을 추출해냈다. 요컨대, 문학사에서 무와 협에 대해 다룬 텍스트들을 모아낸 것이다. 그 결과 한(漢)대의 <사기>(史記) 유협열전(遊俠列傳)과 자객열전(刺客列傳)에서 시작하여 당(唐) 대의 전기소설(傳奇小說), 그리고 명청(明淸) 시기의 장회소설(章回小說)을 잇는 역사가 구성되었다. 필자는 이 소급이 한국 문학사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최소한 조선 시대의 영웅소설과 근대 시기 역사소설 일부를 한국 무협소설사로 재편할 수 있다. 새로이 만들어진 전통이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해낸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연구해볼만한 분야이다.

셋째, 무협은 중화권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문화 체계이다. 무협은 태어날 때부터 무(武)에 관한 국제적인 담론을 등에 업고 태어났다. 근대 시기에 상무 정신을 가진 중국의 전통을 상상하는 일은, 문약한 중국의 과거를 비난하는 제국의 지나학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니토베 이나조의 <무사도> 같이, 근대 일본은 스스로 근대화를 이룬 이유를 무사도를 비롯한 상무 정신에서 찾았다. 그리고 조선과 중국의 지식인은 자국 역사 내에서 상무 정신을 찾아 일본의 주장에 응전하고자 하였다. 안자산의 <조선무사영웅전>이나, 량치차오의 <중국의 무사도>는 그 예시이다. 평강불초생 또한 이런 국제적 담론 배경 하에 1923년 <강호기협전>을 써냈다. 이때 무협을 쓴다는 건, 협(俠)이라는 상무정신을 가진 중국을 상상하는 일이었고, 또 그것을 대중문학을 통해 선전하는 일이었다.

1949년 신중국이 건립되었다. 신중국은 무협이 민중의 공상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무협 자체를 금지했다. 결국 무협 작가들은 무협소설 쓰기를 포기하거나, 대만-홍콩 등 화교권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이 1950~60년대 무협을 홍콩-대만 신무협(港臺新武俠)이라 부르는데, 실로 무협의 황금기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김용, 고룡, 와룡생 같은 작가들이 모두 이때 사람들이다. 홍콩-대만 신무협은 남한과 동남아 등지에서 열정적으로 소비되었는데, 그 중에서 영화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1970년대 이소룡 열풍은 그 정점이다. 후에 대만의 무협소설은 쇠퇴했지만, 홍콩의 무협 영화는 90년대 말까지 세계 영화의 중요한 한 축이었다.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온 곳에서 볼 수 있다. 제다이는 포스로 우주선을 들어올리고, 검으로 총알을 쳐낸다. 마치 기를 써 이기어검을 시전하는 무협 고수들처럼. 게다가 1990년대에는 무협풍 건담이 홀연히 나타나기까지 했다. “보라! 동방은 붉게 타오르고 있다!” (看招!東方正鮮紅地燃燒起來! <기동무투전 G건담>) 이 거대한 국제적 문화체계의 역사와 정치성은 깊게 탐구될 필요가 있다.

넷째, 무협은 다시 부상하고 있다. 1990년대 개혁개방 이래 중국은 다시금 무협 소설을 열광적으로 받아들였다. 비록 이 무협열(武俠熱)이 오래 간 것은 아니지만, 이후 중국 문화산업이 성장하면서 소위 중국신무협(中國新武俠)이 등장한다. 사실, 옛날부터 중국은 다양한 중국 무협소설 원작의 무협게임을 지속적으로 한국에 수출했다. 근래의 <천애명월도>만 해도 홍콩-대만 신무협의 거두인 고룡 작가의 작품들을 이은 것이고, <완미세계>는 중국에서 가장 히트한 중국신무협 중 하나이다. 비록 중국 무협게임은 한국에 진출하여 매번 고배를 마시기는 했지만, 이번의 <천애명월도>는 상당한 실적을 올리며 시대가 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또한 중국을 타겟으로 무협게임을 만들었다. NC 소프트의 게임 <블레이드&소울>은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2016년 한해, <블레이드&소울>은 540억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드라마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다. 현재 중국은 가상의 역사를 배경으로 다양한 드라마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 2015년 방영된 <랑야방: 권력의 기록>은 한국에서 상당한 호응을 일으켰는데, 이는 중국 드라마의 질적 성장을 보여준다. 또한 이 뒤에는 <운중가>, <보보경심>, <삼생삼세십리도화>, <택천기> 등 다양한 작품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 이들 작품 중 많은 수가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사실 이 작품들을 기존의 무협 체계에 단순히 포함시키기는 힘들다. 무협은 신선이 나오는 선협(仙俠)과는 상당히 구별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허나 중국의 문화시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들 드라마 또한 이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협의 지평에서 드라마들을 이해하는 일도 담론이 없는 현재로서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중국의 문화산업이 성장하면서 무협게임, 드라마, 소설 등이 지속적으로 한국에 유입되고 있다. 한국 또한 중국 문화시장을 대상으로 무협 게임을 만들기도 하고 있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무협을 바탕에 둔 교류는 시간이 지날수록 증대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다양한 무협을 이해하고, 또 중국과는 차별되는 무협을 생산하기 위해 여러 담론을 만들어내는 일은 실로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쇠하는 듯 보이나, 앞으로 점차 흥하게 될 것이라 점쳐본다. 그러한 미래를 생각할 때 무협의 과거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일 또한 소중하다. 연구해야할 것이 아득히 많지만, 어쩌겠는가,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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