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마스가 가성비로 승부하며 자리잡는 동안,
향신료의 맛에 눈을 뜬 저로서는 안암골에 그렇다할 멕시코 음식점이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며
칠리향과 살사소스향을 쫓아 홍대로 뛰고 강남으로 뛰던 나날들이었습니다.
도스마스는 날이 갈 수록 스스로의 가성비 컨셉을 이겨내지 못한 채 맛과 질에서 계속 하락세를 이어갔고,
란초스는 왠지 모르게 싱거워 멕시칸 음식 특유의 강렬한 맛이 느껴지지 않았(개인적 취향으로는 그냥 맛이 없어서)기에
결국 안암동에서 향신료 냄새를 맡겠다고 하면 인도커리 전문점을 방문해야만 했었죠.
음식이란 무릇 입에서 즐거워봐야 결국 똥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하루하루 가벼운 지갑과 마주하며 식욕이라는 원초적 욕망에 대한 회의감에 몸서리치며 살아가야 했을 저이기에
비싼 음식을 먹을 때의 결심과 각오는 무척이나 남다르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 안암골 타코의 숨겨진 강자, 피칸테타코를 당당히 소개시켜드리는데에 저는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습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긴 서문으로 여러분의 눈을 귀찮게 하고 귀중한 시간을 뺴앗은 이유는
앞으로 작성할 글이 제가 소위 말하는 알바가 아니냐는 의문이 들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는 피칸테타코와 일절 개인적인 관계가 없으며, 기타 경쟁업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없다는 점을 미리 밝혀둡니다.
안암골 타코의 숨겨진 강자! 피칸테타코!
(궁서체입니다. 저는 진지합니다)
모든 사진은 만지면 매우 커집니다.
피칸테타코 본점 위치 (제기동 1152-7번지 2층, 02-921-9758)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 ~ 오후 10시 , 브레이크 타임 오후 3시 30분 ~ 5시
네이버, 구글 검색으로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한 학기마다 한 가게씩 망해가는 위치에 가게를 내놓고도 검색엔진에 등록도 안하는 이 패기!
다행히도 다음 지도에는 잘 나옵니다. 모두들 다음 지도를 애용해주세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네이버 지도는 홈키파님의 글에서 치킨 비닐봉지에 넣어서 버리는 것으로 얘기가 되어 있습니다.
(참고자료 - http://www.koreapas.com/bbs/view.php?id=kfc&no=17023)
각설하고, 너무나도 안좋은 입지입니다.
문과캠퍼스에서는 버스를 타고 오기엔 너무 가깝고, 걸어오기엔 다소 먼 거리라 일상적인 식사를 위해서는
도저히 방문을 결심할 수 없는 거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이과캠퍼스에서도 마찬가지로 통곡의 벽과도 같은 안암오거리를 끼고 그 너머에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유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기에는 너무나도 좋지 않은 장소에 있는 가게입니다.
피칸테타코를 먹겠다는 굳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노벨 후문을 나선다고 해도,
안암오거리 김밥천국 쯤에서 포기해버릴 수도 있는 그런 거리이기 때문에 방문의사가 있으신 분들은 각별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제가 '숨겨진 강자'라고 표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피칸테타코 건물 전면으로 컨테이너를 이용한 파사드 장식이 되어 있습니다.
만약 근처에 와서 헤메시게 된다면 고개를 들어 2층의 컨테이너를 찾으시면 됩니다.
이런 분위기의 가게입니다.
앉을 때부터 기분이 좋습니다. 내가 오늘 돈을 쓰러 왔구나! 하는 느낌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그런 인테리어입니다.
유성집의 드럼통 탁자나, 진미집 좌식 테이블의 좁고 낮음, 그 외에도 여러 생활형 밥집에서는 느꼈던 후줄근함과는 전혀 다른
정돈된 식기와 은은한 조명, 느낌있는 테이블들에서 앞으로 도래할 사치와 향락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오르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게 됩니다.
또한 다른 식당들과 비교했을 때, 테이블 간격이 상당히 넉넉합니다.
애초에 이 자리에 본점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부터 사장님께서 돈을 벌 생각이 별로 없다는 건 느낄 수 있었지만,
테이블 간격을 보면서 더더욱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서비스 분위기는 무난합니다. 서버 분들은 평균적인 친절함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생각 되고요.
다만 주방장 분이 지나치게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을 주어서 다소 믿음이 덜 가는 것이 사실이기는 합니다.
주방장 분께서 멕시코 전통 의상을 입고 콧수염을 기르신다면 매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메뉴판 사진인데, 제가 아직 피칸테타코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시점이었던터라, 다소 대충 사진을 찍어서 흔들렸습니다.
대부분의 멕시칸 음식점과 별 다를 것은 없는 구성입니다.
타코, 부리또, 퀘사딜라로 이루어진 메뉴판이며 타코와 부리또는 각각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새우를 선택할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또 타코에는 스파이시 그릴 불고기라는 메뉴가 별도로 있는데, 세트로 시킬 때는 선택할 수 없어 아쉬웠습니다.
가격을 살펴보면, 역시 비쌉니다.
타코라고 해봐야 분명히 한주먹도 안되는 크기의 타코 두 덩어리가 나올텐데 6천원이고,
한 피스 더 시키면 메뉴 하나에 8천원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가격이 됩니다.
두 덩어리의 타코로는 배를 채울 수 있을리 만무하고, 결국 기본적으로 세 피스짜리 타코를 시켜야 할텐데,
세 피스라고 해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인당 만원이 넘어가는 고급 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떨리는 손을 부여잡으면서 런치 세트 4pc 버젼을 주문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식당에서 제공하는 세트 메뉴는 저와 같은 비참한 지갑의 소유자들에게 식당 사장님이 베푸는 은혜와도 같기에
제 선택은 빠르면서도 명확했습니다.
2pc 버젼을 주문하지 않은 것은, 저와 동행 모두 밥통이 작지 않은 사람들인데다가,
계산상 2pc에 4천원이 추가되는 것인데 이것을 새우로 주문할 경우 3천원의 이득이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구성은 켈리포니아 스타일 타코 닭고기/새우, 부리또는 정통부리또로 닭고기였고, 고수는 전부 빼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침식사를 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먼저 나온 나쵸가 퍽 반가웠습니다.
소스를 듬뿍 찍어 먹어보니, 그냥 보통의 나쵸 맛이었습니다.
하지만 에피타이져라고 생각하고 먹으니 역시 비싼 음식은 순서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만족감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는 새우 타코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 사진을 찍을 때까지도 아직 음식의 맛을 보지 않은 시점이었고
이걸 뭐 어디 올리겠어 하는 생각으로 대충 찍어댔기 때문에 약간 흔들렸습니다.
일단 맛의 벨런스가 무척 좋습니다.
벨런스가 좋다는게 확 와닿지 않는 표현일 수는 있겠는데, 맛이 강한 음식을 먹을 때 부담스럽지 않으려면
이 벨런스라는게 제게는 꽤 중요한 부분이어서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밍숭맹숭한 맛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멕시코 모자를 쓴 아저씨가 앞에서 마라카스를 흔들고 있는 착각이 드는 그야말로 멕시코의 맛 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은... 진짜... 적습니다.
3천 5백원짜리 음식을 세 입만에 다 먹어치우고는 다음 타코를 기다리게 됐었죠.
그리고 입 안 가득 새우 타코를 씹으면서 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교를 오래 다닌 학우 여러분들은 경험상 잘 아시겠지만 안암동은 프랜차이즈의 무덤이라고 불릴 정도로
프렌차이즈 레스토랑들이 실패를 거듭하고 사라지는 정글과도 같은 곳입니다.
당연하게도 프랜차이즈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간판을 걸고 시작하는 음식점 사장님들에게도 도전하기 쉬운 동네가 아니었죠.
오랜 시간 동안 안암골에 머물면서 맛있는 가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을 그저 지켜만 봐 온지가 어언...(후략)
이제 지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맛집들을 지켜나가야 할 때입니다.
다음은 치킨 타코입니다.
이 때부터는 각을 잡고 찍었기 때문에 나름 초점이 잘 맞은 사진이 나왔습니다.
치킨이 맛있습니다. 소스가 줄줄 흐르지 않고 적절히 각 재료들에 잘 베어들어 있어서
타코나 부리또를 빨면서 먹어야 했던 여러 멕시코 음식점들과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더할나위 없는 맛이었습니다.
이태원의 유명한 타코집에서 먹었던 치킨 타코의 맛에 비견될 정도로 - 너무 비싸서 두 번은 못갔던 탓에 이름을 잊어버렸습니다만 -
그냥 입에 가득 넣고 씹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그런 상당히 맛있는 타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리또.
존맛
네, 존맛입니다. 얼른 와서 드세요.
겉은 바삭하고 안은 부드러운 감자튀김과 함께, 더할나위 없이 맛있는 부리또의 조합입니다.
그리고 이 꽉 찬 속
이 닭고기로 꽉 찬 속이
먹어도
먹어도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동안 먹었던 고기반 양상추 반의 부리또들은 이제 안녕! 사요나라! 아디오스!!
먹어도 먹어도 닭고기, 닭고기, 닭고기로 가득 차 있는 이 부리또는
심지어 다 먹고 나서
국물 한방울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제가 호일 가져다가 구겨서 사진을 찍은게 아니라 이게 다 먹을 때까지 제 손에 들려있었던 바로 그 호일입니다.
소스를 대충 이리저리 뿌려두었기 때문에 먹다보면 아래로 줄줄 흐른 소스가 손가락에 묻고
다 먹은다음 게걸스럽게 손가락을 빨거나 휴지를 마구 뽑아 써야 했던 여러 멕시칸 음식점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었고, 그 차이점이 맛의 부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맛은 맛대로 있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소스가 완벽히 본인의 위치를 사수합니다.
그야말로
제게 생활형 밥집을 제외한 모든 밥집들은 언제나 별처럼 아름답지만 별만큼이나 먼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종종 그들이 제게 와 빛이 될 때 저는 제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또 삶의 기쁨을 느끼곤 합니다.
오늘 방문 했던 피칸테타코도 그런 곳이었습니다.
매일 같이 올 수는 없는 곳이지만, 제겐 또 하나의 지켜주고 싶은 음식점이 됐고,
이제 안암동에서 멕시코 음식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고, 지갑에 충분한 여유가 생긴다면,
저는 피칸테타코를 다시 방문하게 될겁니다.
제가 누렸던 기쁨을 모든 안암골의 고학생분들도 함꼐 느끼실 수 있길 바랍니다.
모든 분들이 안암골에서도 충분한 사치와 향락을 즐길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빌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