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대학강사노조의 교원지위 회복안에 관한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의 입장>>

2012년 부당해고를 겪은 이래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에서는 김영곤 강사 및 연대단체들과 꾸준히 연대해왔다. ‘고려대 시간강사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학생 대책회의’가 결성된 이래 학부총학생회, 동아리연합회 등 대표자 단체와 각종 학내단체에서 강사문제에 관한 지지의 입장을 일관되게 표명해 왔다.

한편 김영곤 강사가 소속되어 있는 전국대학강사노조(이하 전강노)는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방안에 관해서 여타 강사 및 교원단체들과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강사의 교원지위를 명시한 2011년 제정된 강사법에서 ‘단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사학연금법에서는 강사를 교원으로 보지 아니 한다’는 독소조항을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그러한 독소조항이 있는 한 강사는 무늬만 교원인 현대판 노예에 불과하다.

김영곤 강사가 소속된 전강노는 해당 독소조항을 없애고 교원으로서의 강사의 권리(시급제가 아닌 호봉제, 교수회의에의 참여 등 학사참정권 보장, 자의가 아닌 절차에 따른 임용 및 해임) 보장 및 법정정규교수 100% 충원을 실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노총 산하 한국비정규교수노조(이하 한교조) 등의 교원단체에서는 형식상으로나마 강사의 교원지위를 인정한 기존 강사법마저 폐지하고 대체입법을 마련하자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강사 및 초빙교수, 겸임교수 등 다양한 비전임 교수직을 ‘연구강의교수제’로 통합해서 2년의 계약기간 보장과 생활임금을 국가적으로 보장하자는 입장이다. 물론 이러한 안에도 진일보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전강노와 한교조의 본질적인 차이는 전임교원과 비전임교원 사이의 포괄적인 신분격차를 해소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 강사의 경제적 처우(시간강사의 경우 평균연봉이 600만원이다)부터 먼저 해소할 것인가에 놓여있다.

언뜻 보면 이것은 방법론의 차이에 불과해 보인다. 비정규교수노조 역시 '궁극적으로는' 법정정규교수를 100% 충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그들은 연구강의교수가 교원 확보율에 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각종 대학평가의 지표가 되는 전임교원 확보율을 올리기 위해 강사에게 무늬만의 교원지위를 부여한 채 일부 강사에게 강의를 몰아주고 나머지를 대량해고하는 사태를 우려해서이이다. 결국 원칙에서는 이견이 없다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제28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강사노조의 노선이 정당하고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일부 세력은 전강노가 주장하는 교원지위의 회복이 현실을 무시한 이상론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대학원생의 입장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당장의 강사시급인상뿐만이 아니라 각종 권력관계 및 신분격차에서 자유로운 상황에서 학문연구를 하는 것이다. 교원지위 회복은 단순히 강사만의 경제적 처우개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대학사회 내의 임금격차가 신분격차와 권력격차로 굳어지지 않도록 방지하는 ‘최소한’의 보루이다.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 없이는 임용비리와 논문대필관행 그리고 연구성과의 불평등한 분배도 해결될 수 없다. 교원지위 회복 없이 강사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발상은 자칫 이 모든 잘못된 관행을 용인한 채 비정규교수 자리를 확대재생산하는 사태로 이어질 수 있다.

일부 세력은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이 (대학평가지표가 되는 교원확보율을 올리기 위한 명목으로) 일부 강사에 대한 강의 몰아주기와 다수의 강사에 대한 대량해고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한다. 몇몇 대학에서는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대교협을 위시한 대학 소유자들과 교피아가 교원지위 회복이 강사 대량해고로 이어질 것이라 협박하고 있다. 하지만 소수강사에 대한 강의 몰아주기는 대학자본의 이윤 때문에 오래 전부터 획책된 것이고 교원지위 회복은 마침 그것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주장이다. 이는 문단속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둑질을 했을 뿐이라는 도둑의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이러한 궤변에 맞서 도둑에게 더욱 더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법정정규교수 100% 충원과 교원확보율에 관한 OECD 기준(인문사회계 기준 교원 1인당 학생 25명) 준수하도록 교육당국과 대학을 압박해야 한다. 그 같은 원칙을 준수한다면 대량해고도 우려할 일이 아니다.

또한 일부 세력은 국고보조를 통해 강사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강사처우개선을 포함한 교육환경개선의 재원을 대학자본으로부터 확보하지 않은 그 같은 발상은, 부자증세 없는 복지정책과 같은 임기응변책에 지나지 않는다. 막대한 적립금으로 쌓은 대학이 우선적으로 '돈'을 내놓아야 한다.

교원지위 회복은 먼 미래의 이상론이 아니다. 물론 강사들이 지금 당장 전임교원과 동일임금을 받지 않을 수 있다. 혹은 강사들이 정교수와 동등한 사학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강사들이 학생의 수업권에 관해 교수회의에서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강사들이 논문편수나 기업의 연구하청성과가 아니라 학생과 지식사회로부터 학문과 양심에 따른 평가를 받도록 하고, 시급제를 유럽의 경우처럼 호봉제로 전환하고, 방학중 연구준비와 강의준비 및 학사행정 전반에 관한 각종 불불노동을 지급하고, 강사들이 자의적으로 임용되거나 해임될 수 없도록 하는 변화가 시급하다. 그것은 먼 미래의 이상이 아니라 지금-여기서 해결될 수 있고 해결되어야 할 문제이다.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이 대학사회에 가져올 변화의 파급력은 '통장에 찍힌 숫자의 변화' 그 이상이다. 예를 들어 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은 학내 구성원들의 학사참정권 보장, 기업과 재단 친인척의 소유물로 전락한 대학에의 사회적/민주적 통제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다.

현실성에 관해 말하자면 비정년트랙 전체를 무슨 연구강의교수로 통합한다는 안이야말로 ‘비현실적’이다. 이상론에서 연구강의교수제는 비전임교원들을 ‘비정규직 공무원’으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현실에 비춰 본다면 국가와 대학자본은 온갖 예외조항을 만들어서 '연구강의교수제'를 이미 존재하는 겸임교수, 초빙교수, 특임교수 등 다양한 비정년 트랙 중 하나로 생색내면서 수용할 것이 분명하다. 한교조가 내세우는 연구강의교수제는 현실에서 일부 강사들만의 특권으로 고착화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미 존재하는 강사들 간의 의자 뺐기 경쟁, 강사를 대상으로 하는 분할 및 지배의 논리는 더욱 공고해질 뿐이다. 현실의 역관계를 어떻게 바꿀지를 생각하지 않은 채 강사처우 개선에 관한 단계론적 접근에 매몰되는 것은 차선이 아닌 최악의 결과로 귀결될 것이다.

대학은 점차 자본화되고 있고 학문적 권리와 양심이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다. 관건은 이 같은 국가와 자본의 공세에 맞서 어떻게 현실의 힘관계를 뒤바꾸고 강사와 학생 그리고 노동자 3주체의 단결을 통해 학내 민주화를 달성하느냐이다. 교원지위 회복은 학내민주화와 경제적 처우개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핵심고리이다. 한교조는 연구강의교수제가 실현된 이후에 '무엇이 올 것이냐'에 대답해야 한다. 부분적인 임금인상, 2년간의 계약보장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말하는 ‘교육공공성 실현’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교원지위의 회복 없이 어떻게 지식사회를 대학자본의 억압과 착취에 대한 대항운동에 ‘동참’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명확히 말하지 않는 한 조금이라도 식견 있는 학생과 시민들은 한교조의 입장에 결코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제 28대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하나, 국회는 강사에 대한 부당해고 및 부조리 사건에 대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라!
하나, 국회는 강사법의 독소조항을 없애고 강사 교원지위와 노동권 보장을 법제화하라!
하나, 대학은 강사의 임금을 올리고 수업 외 연구준비시간에 대한 불불노동을 지급하라!
하나, 대학은 강사의 대학평의원회 및 학내 의사결정기구에의 참여권을 보장하라!
하나, 한국비정규교수노조 및 교원단체들은 교원지위 회복운동에 동참하라!
고려대학교 제 28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새로고침’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23 01:3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