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반복되는 학내 성폭력의 사슬을 끊어내자!

  1993년, 서울대학교에서 한 여성 조교가 대자보를 통해 자신이 일하던 실험실 담당 교수(이하 ‘신 교수’)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었으며, 교수의 성적 괴롭힘을 거부하자 조교 직에서 부당하게 해임되었음을 알렸다. 이에 신 교수는 피해 조교 해고는 정당한 사유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피해 조교가 오히려 엉뚱하게 자신을 음해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학내 단체들로 이루어진 진상조사단에 의해 교수 가해 사실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게 되었고, 이 사건은 언론에도 보도된다. 신 교수는 피해 조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고 피해 조교는 신 교수를 비롯하여 대학 총장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결국 1심, 항소심을 거쳐 마침내 고등법원에서 6년 만에 피해 조교의 손을 들어줌으로서 승소하게 된다. 이 때 피해 조교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가 현재 서울시장인 박원순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이 사건은 성폭력 운동 역사상에서 잊히지 않을 족적을 남기게 된다. 무엇보다 이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사건이 발생한 ‘맥락’이다. 신 교수는 피해 조교의 직무상의 상사이자 실질적인 임면권자이기 때문에 피해 조교는 종속된 상황일 수밖에 없으며, 도제관계가 남아있는 대학에서 이러한 종속 관계는 더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성폭력이 어떤 ‘맥락’에서 발생했느냐에 따라 성폭력 성립과정에서 피해자의 거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점과 언어적이고 시각적인 성폭력도 문제가 된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H교수 사건을 바라보면서, 20년 전의 신 교수 사건이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지도교수가 학생의 졸업에 관련된 제반 사항, 예를 들면 졸업자격시험 응시, 논문 프로포절, 논문 심사 위원 추천, 논문 심사, 논문 심사 결과 보고서 등 모든 절차에 개입하는 상황에서 지도학생이 지도교수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란 매우 어렵다. 행여 부당한 처우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가는 졸업을 위한 절차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인지 알 수 없고, 심지어 학계에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H교수 사건은 대학원 내 지도교수와 지도학생이 어떤 권력관계 속에 놓여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하면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피해 학생을 지지하는 학내 단체들이 아무리 증거자료를 제시하고 정황을 설명한다고 하더라도 왜 즉각적으로 불쾌감을 표시하지 않았나, 어차피 교수의 요구에 다 응한 것이 아니냐, 라고 치부해버리면 이 사건의 심각성과 피해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이 사건의 본질은 무엇보다 지도학생의 졸업을 틀어쥐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 H교수와 ‘무사히’ 학위를 받기 위해서 H교수의 횡포를 참을 수밖에 없었던 지도학생들의 지극히도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있다.

  2011년 6월, 부산대학교에서는 국민윤리학과 대학원 원우회가 해당 학과의 Y교수의 성희롱, 교수 임용과정, 수업 태만, 입학시험문제 사전 유출 등을 공개적으로 문제제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공청회 등을 통해 Y교수에게 소명의 자리를 마련했지만 Y교수는 증거를 가져와라, 피해자 나오라고 하라는 등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해당 학교의 성폭력상담센터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Y교수의 성희롱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3개월 감봉 처분이라는 솜방망이식 처벌만 이루어졌으며 여전히 당당하게 해당 학교에 출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 교수 사건 이후 20년, 부산대학교에서도 고려대학교에서도 학내 성폭력 사건은 여전히 비슷한 구조로 계속 반복되고 있다. H교수 측 보도자료는 전혀 다른 맥락의 사례를 H교수 자신의 경우와 비교하며, 해당 사례에 해당하는 인물을 모독하고 있다. 지도교수라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암시적으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 한 H교수는 자신의 행위를 반성해야 하며 그에 마땅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제25대 Arbol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3 04:4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