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그렇게 둬도 한판의 바둑”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과 지식의 허무성에 대하여

인터뷰를 위해 연구실을 찾아간 기자들에게 김균 교수는 책을 고르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지금까지 읽어온 수많은 책들이 마치 “가랑비에 젓듯” 모두 고루고루 영향을 줘 이 연재물의 제목처럼 ‘내 인생의 책 한 권’을 딱 집어 고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그가 추천한 책은 바로 그리스의 작가 카잔차키스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이었다. 대학 시절 이 책을 처음 접했다는 김균 교수는 찬찬히 소설의 주인공 ‘조르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조르바란 인물로부터

조르바는 한 마디로 ‘무식하고 자유분방한’ 인물이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또한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는다. 특히 여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에게 있어 여자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반면 소설의 화자인 ‘나’는 나약한 지식인이다. 소설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게 상반되는 두 인물이 만나 “황당한 사업을 펼치고 종국에는 쫄딱 망해버리는” 단순한 이야기이지만 대학 시절 김균 교수에게는 이것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김균 교수는 자신이 청년기를 보낸 7,80년대를 끊임없는 사회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다고 말한다. 격동의 시기를 보낸 그들 어른 세대에게는 ‘학문’이라는 길 역시 이러한 사회 운동의 연장선이었다. 대학에서 배우고 있는 학문을 통해 사회를 바꾸어나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시기 조르바의 자유로운 그 ‘외길 터널’을 통과하는 와중에 한번쯤 곁눈질 해볼 만한 대상이었다.

조르바와 ‘나’의 교차점

또한 조르바의 시각은 사회과학 자체를 비판해볼 기회도 제공해준다. 조르바의 자유분방한 삶을 통해 자신이 하고 있는 학문을 바라보면 지금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그리고 자신이 절대적이라 믿는 ‘지식의 뿌리’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중략] 이 땅의 아무리 위대한 선지자라도 이제는 암호 이상의 예언을 들려줄 수 없다. 암호가 모호할수록 선지자는 위대한 것이다.” (※책에서 인용)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식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김균 교수는 강조한다. 다만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에는 우리가 배우는 지식만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조르바란 인물을 통해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즉 작가 카잔차키스는 겉으로는 조르바의 방탕함만을 보여주지만 이러한 조르바가 가진 열정과 자유도 삶의 한 방식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소설 속에서 조르바와 ‘나’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통해 조르바가 가진 ‘열정’과 ‘나’가 가진 ‘지식’이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균 교수는 오늘날 세상의 변화가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불확실한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배우고 있는 책에서 배운 지식만으로 세상의 변화를 예측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따라서 때로는 조르바가 가진 자유분방함이 그 열쇠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가 논리적이라고 말하지 않는 젊은 예언가의 직관이 세상을 더 잘 설명해내기도 한다.

“그렇게 둬도 한 판의 바둑”

그럼에도 우리들은 모든 것을 “딱딱 계산하고 재가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때로 우리는 조르바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을 봤을 때 ‘나쁜’ 삶을 산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균 교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이토록 불확실한 ‘지식’을 탐구하는 우리가 과연 우리들의 삶만을 좋은 삶으로 치켜세우고 조르바와 같은 삶을 나쁜 삶으로 매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바둑을 좋아한다는 김균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유로운 조르바의 삶도, 나약한 지식인인 ‘나’의 삶도 모두 “그렇게 둬도 한 판의 바둑”인 삶이라는 뜻이다.

최정호·양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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