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부전공은 국문학과 사학이다. 보통의 문과생답게 대학 입학 후 수학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너무 좋았다. 졸업 후에야 깨달은 사실 하나는 학교를 다니며 개론수준의 교양과목으로도 경제관련 수업은 수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체 무슨 배짱이었을까. 경제는 곧 수학이라는 생각에 막연히 거부감을 가졌던 것 같다. 내가 경영이나 경제 분야에 종사할 가능성은 제로라고 단정 지었다.


2008년 9월 미국 리먼 브라더스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국내에선 적립식펀드 열풍이 불었다. 정기적금처럼 소액을 다달이 모아 목돈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에다 영업력을 앞세운 은행들이 적립식펀드 판매에 뛰어들면서 매년 수십조 원의 돈이 몰렸다. 신문지면에는 일약 ‘국민 재테크’로 떠오른 적립식펀드의 수익률이 수십 퍼센트라는 이야기가 연일 오르내렸다.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대박까진 아니라도 고수익을 꿈꾸며 은행 창구를 찾았다. 친절한 은행 직원은 내게 같은 계열 증권사의 적립식펀드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앉아서 몇 번의 서명만 하면 됐으니 가입은 순조로웠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열심히 쏟아 부은 지 몇 개월, 세계 증시가 폭락했고 우리나라 코스피지수도 반토막 났다. 놀라서 확인한 펀드 계좌에선 이미 60만원이 날아갔다. 중도해지를 고민하며 우물쭈물하던 일주일. 마이너스 150만원을 끝으로 잔금을 찾았다.


5개월 치 과외비에 해당하는, 피 같은 내 돈 150만원은 2008년 국내 증시에서 사라진 375조원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나에게 펀드를 2개나 팔아먹은 은행 직원이 원망스러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은행에 출입하는 금융부 기자가 되었다. 지금은 8년 전과 달리 화가 났다. 약간의 아는체를 보태, 순진한 금융소비자를 기만한 직원이 불완전판매를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수익률이 높으면 리스크도 높다는 재테크의 기본 원칙도 몰랐던 금융문맹이었다. 펀드에 가입만하면 다달이 높은 이자가 들어올 줄 알았던 것이다.


법적 성인에 접어드는 대학생 때부터 우리는 급격히 많은 금융거래를 경험하게 된다. 내 연봉을 위협하는 규모의 학자금대출은 다달이 갚아야할 빚이다. 대학졸업 전후엔 각종 금융사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로부터 금융상품가입 권유를 받을 것이다.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노후준비를 위해 국민·퇴직·개인연금 3층탑을 쌓아야 한다는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결혼을 하려해도 웬만한 금수저가 아닌 이상 전세자금이나 주택구입을 위한 대출은 필수가 됐다. 생애주기를 지날수록 금융은 더욱 밀접해진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 가구의소득증가율이 사상 첫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부모세대 보다 못사는 첫 번째 세대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업들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대졸 초임을 삭감하고 채용을 확대하겠고 한다. 말이 길어진 것 같은데 결론은 소박하다. 나처럼 돈을 잃고 후회하는 후배가 한 명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 벌이는 점점 쪼그라든다는데 그나마도 지켜야하지 않겠는가.

<키요>

* 냉전(冷箭)은 숨어서 쏘는 화살이란 뜻으로, 고대신문 동인이 쓰는 칼럼 코너입니다.
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5 09:5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