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신군부의 폭압 앞에 굴종이 아닌 저항과 희생을 선택한 광주시민들에 의해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질 수 있었다. 역사적 항쟁으로 기록된 5·18민주화운동은 불의에 저항하는 시민의 의로운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대통령이 그의 부하였던 김재규에 의해 살해되면서 18년의 유신독재가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가 도래하는 듯했다.

그러나 유신독재시기 정권의 친위세력으로 길러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계엄확대 등 철권통치를 통해 권위주의 체제의 연장을 획책했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지역의 민주화시위를 공수부대를 동원해 진압했듯이 광주지역의 민주화시위에도 공수부대를 투입해 잔혹한 진압으로 대응하면서, 161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4236명의 시민들이 연행·구금되는 역사적 비극으로 귀결되었다.

광주시민들은 불의에 적극 저항했지만 저항의 방식은 평화롭고 질서 있는 모습이었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맞서 시민들은 불가피하게 무장을 했지만 그것은 파괴를 위한 무장이 아닌 살림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불가피한 저항폭력이었을 뿐이었다. 총기를 소지한 무장투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18항쟁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저항폭력이었기 때문에 광주시민들은 분노에 갇히지 않고 분열과 파괴가 아닌 연대와 협력의 공동체를 만들어 갔다.

시민들은 식량 등 기초 생필품이 부족한 상태에서도 서로 절약하고 도움으로써 모두가 살아가는 대동의 공동체를 새롭게 구현했다. 지역사회에 초유의 고난이 닥친 상황에서 개인의 사리사욕을 추구하기보다는 이웃과 먹을 것을 나누었고 피를 나눔으로서 이른바 주먹밥 공동체와 헌혈의 공동체를 통해 대동세상을 구성했다. 약탈이 발생할 수도 있었으나 5월 광주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조건 없는 호혜의 나눔을 실천했다. 또한 항쟁의 마지막 날 시민군의 지휘부였던 도청에 남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기에 젊은이들에게는 역사의 증인이 되어줄 것을 간청하며 떠날 것을 권유함으로써 생과 사의 초월적 연대까지 구현했다.

5월 광주의 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신군부는 광주로 통하는 전화와 모든 도로를 차단시킨 상태에서 그들이 장악한 언론을 통해 광주의 진실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왜곡했다. 5월 20일 시외전화가 끊기고, 21일 외곽도로가 차단되면서 광주는 고립의 도시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군부는 광주를 불순분자의 난동으로 호도하고, 무법천지의 광주로 왜곡했다. 광주의 진실을 모르는 광주이외의 지역에서는 신군부의 일방적 언론보도를 사실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분단 상황에서 무장투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조작은 파급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으며 현재까지 5·18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5·18민주화운동은 10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저항과 대동세상의 다층적 체험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원류가 되었다. 저항을 통해 만들어낸 해방공간에서 광주시민들은 대동세상을 구현함으로써 시민들의 저항이 살림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그리고 항쟁의 마지막 날 영예로운 죽음을 선택하여 신군부에게는 국가폭력이라는 불명예의 증표를, 미래 세대에게는 민주주의와 대동세상의 부활을 위한 무한한 역사적 책무를 과제로 남겨두었다.

이러한 1980년 5월 광주의 유산으로 저항정신의 혁명적 계승을 통해 80년대 사회운동은 급진화되었으며, 87년 체제의 민주주의를 이끌어 내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최근 5·18민주화운동은 과거의 박제화된 역사로 위치지어질 것을 강요받고 있다. 5·18의 정신을 담고 있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정부로부터 배척되고,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공공연하게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 그것이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신자유주의 무한경쟁의 현 세태에서, 미래세대에게 민주주의와 호혜의 대동세상의 부활을 요청했던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있는 시대정신의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김희송 전남대 교수 5.18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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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3 04:2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