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강의의 한 주제인 ‘자유의 역설’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자유를 누리게 된 대중들이 그 자유로부터 스스로 도피하게 된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자유란 중세로부터 근대로 넘어 오면서 인류가 정치적, 경제적 및 정신적인 속박으로부터 부단한 노력의 결과로 쟁취한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는 근대역사에서 대중들이 오히려 그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아이러니를 목격하게 되었다. 외형적으로 민주정치가 건실하였던 국가에서 국민들이 강력한 권위, 즉 전체주의의 등장을 지지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포기해 버렸다. 처음에 이러한 조짐이 극소수 사람들의 광기로 인한 일시적 현상으로 여기고 곧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제 1,2 차 세계대전을 통해 나치와 파시즘의 권력에 열광적으로 복종하며 자유를 얻고자 하는 열정만큼이나 자유를 포기해 버리는 정열을 드러내고 말았다. 한 마디로 근대의 역사는 민주주의 사회에 있어 자유가 저절로 지켜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다. 자유를 얻게 되자 이제는 인간들이 자유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큰 부담으로 느껴져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아이러니가 목격된 것이다.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에서 자유의 양면성을 나치즘과 파시즘의 예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프롬은 중세사회에서 근대자본주의로 넘어오는 사회경제적 변화 과정에서 수반되는 사회심리적 메카니즘에 초점을 맞춰 ‘자유의 역설’을 설명한다. 프롬에게 있어 자유는 그 자체적인 다이내믹한 운동 법칙에 의해 자유와 상반되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잠재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봉건사회의 중세적 체제의 붕괴로부터 근대사회로 이행하면서 개인은 자유롭게 되었으나, 종전에 누렸던 안정성과 소속감을 상실하게 되었다. 근대인은 전통적 권위에서 해방되어 비로소 ‘개인’이 되었지만, 동시에 그는 고립되고 무력한 존재가 되어, 새로운 권위 혹은 외부에 자진해서 복속시키려는 성향을 보였다. 그 한 방편으로 자신을 강력한 권위에 융합시키려 성향을 나타냈다. 예를 들어 독일의 과 자신을 동일시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개인의 무력감과 고독감은 외계를 파괴함으로써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 한 형태가 유대인 대학살이다. 근대자본주의가 지나친 경쟁심의 성격을 드러내며 소수의 우월한 자들을 위한 체제의 성격을 드러내면서 중산계급은 좌절감에 빠졌다. 중산계급의 불안과 거기서 야기되는 증오심은 권위에 예속되려는 갈망과 함께 동시에 무력한 인간을 지배 내지 파괴하려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강자에 대한 사랑과 무력한 자에 대한 증오심이라는 양면성이 드러낸다.

개인들은 오히려 중세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 곳에는 근대적 의미의 자유는 없었지만 중세의 인간은 고독하거나 고립된 상태에 놓여 있지는 않았다. 그들에겐 안정감과 소속감이 주어졌고, 서로 경쟁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회는 개인을 속박하고 있었지만, 중세사회는 길드(동업자모임)와 같은 안정된 도시의 경제적 조직이 있었다. 그들 간에는 인격적이었고 친밀하였다. 중세적 사회조직이 붕괴되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사회의 모든 계급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새로운 경제 질서는 사회조직이 보장해 준 상대적인 안정성도 파괴하고 말았다. 전통적인 지위의 안정성은 사라지고 개인은 홀로 남게 되었다. 근대 자본주의에서 자본이 초인간적 힘을 행사하며 자본은 주인의 위치로 상승하고 인간은 하인으로 전락하여 자신의 운명을 지배받게 되었다.

근대 자본주의의 민주주의를 설명함에 있어 중산층에 대한 언급은 늘 학자들의 관심사가 되어 왔다. 프롬의 견해는 맑스가 근대자본주의 비판에서 중산층의 몰락을 예견한 점 등에서 맑스의 지적 영향을 받았다 할 수 있다. 단지 맑스는 노동자들의 소외감 및 그리고 그들이 겪는 착취로 인해 프롤레타리아가 역사의 주역이 될 것을 주장하였다. 반면에 에리히 프롬이 근대 자본주의에서 나치가 구 중산계급의 감정적인 에너지를 동원할 수 있게 된 배경을 밝히려고 한 점은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다.

나아가서 프롬은 이러한 자유의 역설이 단지 근대에 국한된 현상이라기보다 언제든지 역사 속에서 재현될 소지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자유를 쟁취하였다 하더라도, 소극적 의미의 자유로 내버려둘 경우에 언제든지 자유는 포기될 수 밖에 없다. 단지 적극적 형태의 자유를 신념으로 지켜나갈 때 권위주의 형태로 나타나는 자유의 ‘니힐리즘’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김두진 본교 평화와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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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고려대학교 고파스 2024-05-03 12:11:40: